***

 

“……으음.”

“오, 정신이 드냐?”

 

로지가 깨어난 것은 대략 두 시간쯤 뒤, 아침식사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아침식사 준비 거의 다 돼 가니까 좀 기다려 봐. 아이솔! 로지 깨어났다, 나와봐!”

“……여긴 어디지? 동맹원들은…….”

“다 죽었더라, 너네 동맹원들. 재키 팀은 우리가 처리했어.”

“…….”

 

마침 임시로 설치된 천막에서 아이솔이 걸어 나왔다.

 

“로지. 일어났군.”

“……아이솔?”

“당신의 팀과 재키 팀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 가 보니 당신 빼고는 이미 죽어 있고, 당신도 곧 별 다르지 않게 되겠더군. 그래서 재키와 자히르를 처리하고 당신을 구출해 왔어.”

“목적은…… 동맹인가?”

“맞아. 당신은 가치가 큰 전력이니까.”

“좋아. 받아들이지.”

“깔끔하군.”

 

엥?

이렇게 간단하게?

 

“……야, 아이솔.”

“왜.”

“저 사람, 동맹 제안을 왜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냐?”

“동맹을 맺지 않겠다고 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살려둘 수 없잖아. 그걸 아는 거지.”

“……음.”

 

냄비에서 끓던 마늘라면은 금세 익었다.

나는 냄비를 모닥불 위에서 끌어내 바닥에 내려놓고는, 그릇을 꺼내 나누어 담기 시작했다.

 

“일단 먹고 하자. 아까 싸웠더니 배고파.”

“난 먹지 않아도 돼.”

“뭐? 당신 것도 이미 끓였는데.”

“나는 이걸로 충분해.”

 

로지는 어디서 꺼낸 것인지 모를 초콜릿을 입에 물고 있었다.

순간 어이가 없어진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릇에 라면을 덜었다.

 

“먹어 둬. 이제 동맹인데, 전력 손실은 피해야지.”

“……일리가 있는 주장이군.”

 

로지의 앞에 라면 한 그릇을 놔둔 나는 나머지 분량도 덜어서 아이솔과 혜진에게 각각 나눠주었다. 그리고 나는 냄비를 통째로 든 채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라면 그릇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로지는 젓가락을 집어 들어 살펴보더니 내게 말했다.

 

“……포크는 없나?”

“아.”

 

***

 

엄마의 의견에 따르면,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꽤 많이 닮은 모양이다. 나의 이 얼굴이 살인자의 관상이라는 뜻일지도 모르지.

사실 지금의 나는 반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루미아 섬에 끌려온 후로는 몇 번이고 사람을, 심지어 어떨 때는 똑같은 사람을 두 번, 세 번씩 죽여야 하게 되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잖은가.

하여튼 그런 이유로, 엄마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엄마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제 엄마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은 주로 아빠를 닮은 나였다. 엄마는 나를 볼 때면 발작을 일으키고는 했다.

어렸던 나날이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라 했던가. 내 세상은 사람에게 배신당했고, 사람을 배신했고, 사람을 죽였고, 나는 세상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렸던 나는 성장하고자 발버둥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아온 날이 미처 채워지지 않은 탓에.

고작 살아온 시간 때문에 성장을 인정받지 못한 나는 결국 그 세상에 갇힌 채 자라고 말았다.

 

***

 

[새 금지구역이 지정되었습니다. 번화가, 연못.]

[다음 금지구역은 숲, 성당입니다.]

 

식사를 마칠 때쯤 정오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있는 곳은 숲 지역이었다.

 

“여기가 다음 금지구역이군. 예비 금지구역을 나가려면 성당을 지나쳐야 하니, 서두르자.”

 

이후,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이동하는 내내, 출반 전에 주워 모아 두었던 대나무와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엮어 쓸 만한 무기를 만드려 시도했다.

그렇게 대략 다섯 시간 정도를 걸으며 어느 정도 형태가 잡혔을 때는 마침 성당 지역을 지나친 참이었다.

 

“일단 금지구역은 벗어났군.”

“이것도 도움이 되겠지?”

 

대나무를 붕붕 휘둘러 보고 있으려니 아이솔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어차피 게임도 막바지인데, 이제 와서 무기를 만들면 뭐 하냐? 멍청하긴.”

“뭐? 싸울래, 이 새끼야?”

“그런 데 낭비할 체력이 있나 보지?”

 

……하, 내가 참는다.

 

“됐고. 체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쯤에서 간단하게 점심이나 해결하자. 거의 저녁이기는 하지만. 우리 벌써 다섯 시간이나 걸었다고.”

“그래. 마침 그러려 했는데, 말하는 수고를 덜어주는군.”

 

이번 식사 담당은 혜진의 몫이었고, 나는 옆에서 자잘구레한 것들을 도우며 대나무를 계속 칼로 깎았다.

아이솔은 로지와 대화하는 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레녹스와 리 다이린, 실비아, 쇼이치 팀이 항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다만 문제는 리 다이린과 레녹스야. 심지어 내 권총은 두 정이 전부 고장났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건 승산이 낮아.”

“권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한 정 있어. 네게 빌려주지. 그리고 이곳, 이곳, 이곳. 크레모어를 일렬로 설치해 유인하면 한 명을 먼저 제하고 싸울 수 있다.”

“이왕이면 그게 둘 중 한 명이면 좋겠군. 혜진이라고 했던가, 저 녀석은…….”

“총보다는 활을 잘 써. 유인책이나 후방 지원 포지션으로 두는 것이 이상적일 거야.”

 

로지는 자신의 동맹이 가지고 있던 정보를 우리 쪽에 넘겼다. 그리고는 쭉 아이솔과 저렇게 전략을 의논 중이다. 항구 쪽이라고 했나? 거기 금지구역 아냐?

 

“불안하네요.”

“응. ……응? 갑자기 왜?”

 

갑작스레 들려온 것은, 가만히 냄비를 휘젓던 혜진의 목소리였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기분이에요.”

“……어쩐지 아까부터 생존자가 몇 명 남았는지 안 알려주고 있기는 한데.”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불안한 느낌이 드는군요.”

“…….”

 

방금과 더불어 아까 전 우리 팀이 재키와 자히르, 더해서 매그너스를 처치했을 때에도 안내방송은 없었다.

무언가 이상하긴 하지만…… 당장 무언가를 알아낼 방법도 없고, 무엇보다 복잡한 생각은 질색이다.

 

“그나저나 수프 다 끓은 것 같은데.”

“아, 그러네요. 접시가…….”

“자, 여기 있어. 덜어서 나한테 줘, 서빙할게.”

“감사합니다.”

 

아이솔과 로지에게 수프 그릇을 들려 준 나는 혜진에게 세 번째 그릇을 받아서는 먹기 시작했다. 야채 수프. 간단한 음식이라, 내가 혜진에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었었다.

아이솔과 로지의 대화는 식사 도중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릇을 빠르게 비운 나는 잠시 멍하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기 위해 아이솔을 불렀다.

 

“……어이, 아이솔.”

 

아이솔은 로지와의 대화를 멈추고 내 쪽을 돌아봤다.

 

“왜?”

“아까, 술고래 어쩌고 팀이 항구 쪽이라 하지 않았어? 거긴 금지구역이잖아?”

“항구가 금지구역으로 지정되기 직전의 일이야. 아마 금지구역으로 아지트를 옮긴 거면 항구 근처겠지. 유사시 도주로도 필요할 테니, 아마 공장 쪽에 새 아지트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어떻게 찾게? 습격하려는 거 아냐?”

“그야 당연히 내가 수색해서 찾아내야지. 로지, 일단 늦기 전에 나는 먼저 출발할게. 둘에게 작전 설명 부탁해.”

“알았다.”

 

그릇을 턱 내려놓은 아이솔은 곧장 어딘가로 사라졌고, 로지는 나와 혜진을 향해 돌아서서는 지도를 폈다.

 

“이쪽으로 와서 보도록 하지.”

“어? 어, 응.”

“알겠어요.”

 

나와 혜진은 로지의 양쪽 옆으로 달라붙었다.

아이솔이 그린 루미아 섬의 지도였다.

 

“이곳이 현재 우리의 위치. 예상되는 거점 포인트는 총 세 곳. 여기, 여기, 여기다. 각각 1, 2, 3번 포인트로 칭하도록 하지. 아이솔은 이 동선을 타고 수색한 후 우리와 합류할 거야.”

 

로지는 세 점을 손가락으로 짚은 후 그 주변으로 빙 둘러치는 선을 죽 그으며 말하더니, 동선 끝에서 손가락을 다시 한번 짚었다.

 

“합류 지점은 여기. 우리는 아이솔이 돌아오기 전까지 이곳으로 이동해서 임시 거점을 마련할 거다.”

“왜 임시야? 어차피 거점을 만들 거라면, 그냥 제대로 만드는 게 낫지 않아?”

“현재 생존자 수를 알려주고 있지 않지만, 시간상으로 봤을 때 남은 생존자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실제로 금지구역도 거의 끝까지 정해졌고. 그런 상황에서, 시간을 들여 기습을 준비하는 만큼 위험부담이 커. 우리의 위치를 특정당하기 쉬우니까. 따라서 유사시 그대로 버리고 도주할 수 있는 임시 거처를 설치한다.”

“흐음.”

“알겠습니다.”

“일단 이동하자. 나머지 전략은 수색 결과에 따라 달라질 테니, 아이솔이 돌아오면 이야기해 주지.”

 

우리는 식사를 위해 설치한 도구들을 철거하고 흔적을 지운 후, 한동안 걷기만 했다. 정신적 피로가 어마어마한 탓에 서로 간의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그렇게 대충 세 시간 정도를 걸어가던 중 로지가 잠시 멈춰 섰다.

 

“…….”

“왜?”

“이건…….”

 

로지가 보고 있는 것은 전봇대를 칼로 긁어 만든 화살표 자국이었다.

 

“아이솔의 표식이야. 분명 이쪽 동선이 아니었을 텐데?”

“뭔가 문제라도 생겼어?”

“……여기서 기다려. 3분 내로 돌아오지.”

 

로지는 그 말을 끝으로 화살표 방향으로 달려갔다.

 

“……어.”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혜진은 로지가 남기고 간 지도를 펼쳐 들고는 주변을 빙빙 둘러보았다.

 

“현우 님, 이것 좀 보세요.”

“왜?”

 

혜진은 아까 전 로지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짚으며 말했다.

 

“여기가 저희가 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음…… 그런 것 같네.”

“그리고 저 화살표가 그려진 전봇대는, 지도상에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쪽 벽인 것 같구요.”

“그렇겠지?”

“아까 로지 님이 설명하신 아이솔 님의 동선은…… 이쪽이에요. 여기를 거칠 이유가 없어요.”

“어…… 그래? 그렇네?”

 

혜진의 말대로, 로지가 설명했던 아이솔의 동선은 이곳을 거칠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때였다.

 

-콰앙…….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로지 님이 벌써 저기까지 가신 건 아닐 텐데요?”

“아냐, 폭탄 소리잖아. 이건 트랩이야.”

“그럼……?”

 

아이솔 쪽이다.

무언가 잘못된 건가.

 

“아이솔이 남긴 흔적을 찾았어.”

“윽, 깜짝이야. 생각보다 일찍 왔네?”

 

문득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지도를 접은 우리는 곧 로지임을 깨닫고 안심했다.

 

“레녹스 팀의 거점은 2번 포인트 부근이다. 아이솔이 기록을 남겼어.”

“이쪽 동선이 아니잖아? 어떻게 된 거야?”

“방금의 폭음은 너희도 들었겠지. 아마…… 트랩 설치가 들통난 것 같군.”

“그럼……?”

“접선 장소가 바뀌었다. 1번 포인트 부근이야. 따라오도록.”

 

로지는 곧장 뒤돌아 걷기 시작했고, 나와 혜진은 그 뒤를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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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M-RFT37(로지)가 구상한 작전은 모두가 지시를 잘 따랐을 경우 대부분 성공했고, 그걸 경험한 실험체들은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며 동맹을 유지했습니다."


아빠겜 실험일지에 적힌 내용임.

전략 짜는거 구상한다고 ㅈㄴ 머리아팠음.

결론적으로 어찌저찌 하긴 했는데 잘 된건지 몰겄다.

만약 글에서 뭔가 이상한게 발견된다면 추후 내 발전에 도움이 ㅈㄴ많이 되므로 아낌없이 씹새끼야 질러주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