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밤이 다 되어 로지가 안내한 접선 장소에는 아이솔이 먼저 와 있었다.

다만 상태가 심상찮았다.

 

“……너 팔 한 짝 어디갔냐?”

“…….”

 

아이솔은 말없이 한 손으로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야, 뭐라도 말을 좀 해 봐.”

“상황이 골치 아프게 됐어. 트랩 설치를 발각당했거든. 실비아를 처리하는 데 성공했지만, 폭발이 근거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보다시피 왼팔이 날아갔어.”

 

빠르게 쏟아내다시피 말한 아이솔은 이제 아예 돌아앉아 버렸다.

말문이 막혀버린 나를 대신해 로지가 말을 이었다.

 

“그럼 아까의 폭음은 역시 네 트랩이었나? 소리로 봐선 MOK제 폭탄인 것 같던데.”

“그래.”

“트랩 설치 지점은 어디지?”

“지도 어딨어?”

“여기 있어요.”

 

혜진이 잽싸게 지도를 가져다 주자, 아이솔은 로지와 대화를 마저 이어갔다.

그나저나 지도는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언제 혜진이 가져간 거지?

 

“여기, 그리고 여기에 MOK제 폭탄을 추가로 설치했어. 그리고 이쪽에 리모트 마인 하나. 남서측 포인트 크레모어 설치는 미처 못 했다.”

“리모트 마인이 있었나?”

“보급에서 얻은 거야.”

“하나를 설치한 거면 두 개가 남았을 텐데.”

“그건 이제 이 근처에, 폭발 반경에 미치지 않도록 방비용으로 설치를…….”

 

그때였다.

 

삐이이이이이이이-!

 

“무슨 소리야?”

“이건…….”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봤고, 아이솔이 중얼거렸다.

이어서, 바로 옆에서 들었다면 귀가 멀지 않았을까 싶은 강렬한 폭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리모트 마인! 생각보다 추격이 빨라, 흔적을 추적당한건가?”

“작전 브리핑 시작한다, 잘 들어. 옆길로 돌아가서 저들의 뒤를 칠 거야. 아이솔, 저격은 한 팔로도 가능하겠지? 후위를 맡아. 이혜진은 아이솔의 지시에 따르면서 보조하도록 해.”

“권총은 네게 줘야 하니, 소총으로 저격을 해야겠군…… 하, 좋아.”

“네, 알겠습니다.”

“장현우, 너는 나와 함께 전위를 맡는다. 내가 나머지 둘을 견제하는 동안, 너는 쇼이치를 먼저 노려.”

“뭐?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건데?”

 

로지는 한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쪽에 아이솔이 설치한 리모트…… 트랩이 발동했어. 정면에서 저들과 부딪히면 승산이 없으니, 무리를 하더라도 트랩에 당한 지금 기습하는 게 나아. 그리고 권총이 있다고 들었는데.”

“장현우, 네 배낭에 권총 한 정이랑 흰 색 탄약 상자 두 개가 있을 거야. 로지에게 줘.”

“권총? 아, 이거?”

 

탄약 상자와 함께 권총을 꺼내 로지에게 건네자, 로지가 받아들고는 중얼거렸다.

 

“톰슨 센터 컨텐더? 구식이군.”

“네가 아는 그 단발 권총은 아냐. 클립식으로 6발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개조했어.”

“확실히 그렇군. 차라리 리볼버처럼 쓰는 게 낫겠어. 탄약은…… .22LR, 할로포인트인가?”

“맞아. 내가 저격용으로 쓸 때 쓰는 건 따로 있지만, 중거리에서 싸우는 네게는 그게 더 적합하겠지.”

“쓸만하군. 장현우, 나와 나란한 위치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이동하도록 해. 출발하지.”

 

그와 동시에 달리기 시작한 로지를 따라 우리는 움직였다.

 

***

 

언젠가, 루미아 섬에 납치되고 난 후 시간이 조금 흐른 후의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언가를 기도하던 혜진은, 문득 그 자세 그대로 입을 열어 옆에 있던 내게 말했었다.

 

“현우 님.”

“응?”

“필생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필생? ……그게 뭐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문구를 떠올렸다.

 

“어…… 필생즉사, 필사즉생?”

“……난중일기에 쓰인 문구로군요. 순서가 틀렸습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입니다.”

“어…… 그래?”

“네.”

“뭐, 그래도 뜻은 안다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맞습니다. 원본은 오자병법(吳子兵法)에 쓰인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卽生, 幸生卽死)입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요행히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뜻이죠.”

“뭐, 어려운 말은 됐고. 그럼 ‘살고자 한다’가 답이야?”

“필생(必生), 네. 그 뜻이 맞습니다. 다만 제가 말한 단어와는 다른 뜻입니다.”

“다른 뜻?”

“현우 님이 말씀하신 필생(必生)은 반드시 필 자에 날 생을 쓰고, 제가 말한 필생(畢生)은 마칠 필 자에 날 생을 씁니다. 한 인간이 살면서 짊어지고, 다해야 하는 일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흔히들 필생(畢生)의 업(業)이란 말을 쓰죠.”

“……어려운데. 갑자기 그런 말은 왜?”

 

쭉 곧은 자세로 앞을 보며 말하던 혜진은, 갑자기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작게 미소를 띄운 채였다.

 

“이곳에서 저희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지요.”

“……그렇지.”

“삶의 끝이라는 것이 의미를 잃은 이곳에서, 살아가며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

 

공장 건물 안쪽으로 돌아서 몇 분간을 달렸을까.

앞장서 움직이던 로지가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릴 멈춰 세웠다.

 

“갑자기 왜 멈추……”

“조용.”

“……는.”

“목표 확인.”

 

로지의 말대로, 앞쪽에 세 명이 보였다. 레녹스, 리 다이린, 쇼이치. 세 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이솔. 혜진을 데리고 북측 트랩 포인트로 가서 저격 준비해. 최우넌 타겟은 레녹스. 2분 뒤 돌입한다, 시계 맞춰.”

“알았어.”

 

-삑, 삑, 삑.

 

로지와 아이솔이 각자 손목시계로 타이머를 맞추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몇 초 후 로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됐나?”

“그래.”

“셋에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삑.

-삑.

 

두 명의 타이머가 동시에 돌아가기 시작하고, 아이솔은 즉시 혜진을 데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장현우. 잘 들어.”

 

로지는 그 사이 권총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피고, 허리춤에 고정된 탄약 상자에서 총알들을 꺼내 장전하는 동작을 한꺼번에 하는 동시에 내게 작전 지시까지 했다.

나는 저런 멀티태스킹 못 하는데.

 

“내가 먼저 돌입해서 시선을 끌 거야. 리 다이린과 레녹스는 신체능력을 주로 삼아 전투하는 타입이니, 대략 5분간은 시선을 끌 수 있다. 네가 아즈마 쇼이치를 처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겠지.”

“그 일본 아저씨? 좋은 사람인 것 같던데…….”

“……하아. 네가 최대한 빨리 그를 처리하고 이쪽으로 합류해줘야 한다. 아무리 상성상 유리하다 해도, 혼자 5분 이상 버티기는 아마도 힘들 테니.”

“그래? 읏차.”

 

권총을 점검하는 로지를 보던 나는 가방 위쪽에 묶어두었던 대나무를 꺼냈다. 아까 전 걸으면서 계속 무기로 만들어보려 시도하던 바로 그 대나무였다. 대나무에는 직각으로 손잡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톤파였다.

나는 양 손에 각각 하나씩 손잡이를 쥐고 붕붕 휘둘러 본 후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아마 아이솔이라면, 자신이 저격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이혜진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제외한 주변을 돌아다니며 활로 지원사격을 하라고 지시했을 거다. 즉 이혜진의 화살이 날아오지 않는 방향이 있을 테고, 그곳이 아이솔의 저격 포인트니까 유념해 두도록. 밤이라서 기습하는 쪽이 유리하기는 하지만, 우리도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복잡하네. 너희는 그런 전략같은 걸 다 어떻게 알고 다니냐?”

“경험이야. 집중해. 이제 시작이니까.”

“좋아. 이제부터 팍팍 치고 나가자고!”

“카운트…… 5, 4, 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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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는 사실 아이솔이 몸담았던 테러 단체인 MOK 소속이었다는 스토리 다들 알 거라 생각함.

그래서 둘이 통하는 부분이 은근히 많다는 걸 어필하려고 로지가 대충 말하는데 아이솔이 알아듣는 장면도 좀 있었음. 몇몇 장면은 가독성떄문에 날려버렸지만.


참고로 현우vs쇼이치, 로지vs리다&레녹스는 인게임 상성관계 구현한거임.

로지 너프먹고 나락간거 절대 아닌거같은데

여전히 근딜분쇄기던데

로지 너프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