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비빅-.

 

타닷!

타이머가 끝나는 소리와 동시에 달려나간 로지는 냅다 총을 난사했다.

로지가 제자리에서 반 바퀴를 회전하자, 장전되어 있던 총알들이 한꺼번에 쓸려 나가며 전방 부채꼴 범위를 포화했다.

 

타다다당-!

 

총알을 싹 비워낸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다시 총을 난사하는 로지를 보며 잠시 멍하던 차에, 서류 가방을 든 남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쇼이치, 내가 처치해야 할 대상이다. 풀숲 사이에 숨어 있기에 아직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모를 것이다.

가까이 왔을 때를 노려야 한다. 조금 더, ……지금.

 

“선빵필승!”

“윽?”

 

풀숲에 숨어 있다가 기습적으로 튀어나간 내가 몸으로 들이받자, 쇼이치가 서류 가방을 떨어뜨리며 뒤로 넘어졌다.

 

“자, 장현우 군?”

“…….”

 

젠장, 나는 여기서 이 남자를 죽여야 한다.

흔들리면 안 된다.

 

“……제가 졌습니다.”

“시끄러워.”

“봐주시겠습니까.”

 

멈칫-.

 

‘……아, 망할. 장현우 이 호구 새끼야.’

 

쇼이치는 이미 내게 단검을 휘두르며 내 사거리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쇼이치에게 몸을 날렸다. 쇼이치는 두 번째 단검을 던지며 한 발 뒤로 물러남으로써 또다시 멀어졌다. 앞으로 달리느라 미처 피하지 못한 단검이 내 어깻죽지를 스치고 반대편 바닥에 떨어졌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어느새 그쪽으로 이동한 쇼이치는 바닥의 단검을 주워 내게 던지고 있었다. 피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칫, 맷집엔 자신 있다고!”

 

팔로 단검을 받아낸 나는 다시금 돌격하려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에 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경악했다.

 

쐐애액-.

 

화살 비가 내리고 있었다.

톤파를 반사적으로 휘둘러 겨우 내 쪽으로 쏟아지는 화살들을 걷어낸 나는 로지의 말을 상기하고는 혜진의 위치를 파악했다. 3시 방향.

 

‘오케이, 저쪽은 저격 지점이 아니라 이거지.’

 

그나저나…… 쇼이치는 어디 갔지? 놓쳤나?

 

-휘이익.

 

웬 망토 소리가, 하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쇼이치가 내 등 뒤에서 나타나 발리송을 펼치고 있었다.

곧이어 칼날이 목을 파고드는 느낌이 났다.

 

“컥……!”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만, 하아.”

 

목에 박힌 단검을 잡아 빼며 뒤를 돌자, 쇼이치의 서류 가방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열리더니 안쪽에서 단검들의 끝부분이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뭐야 시발. 저거 그냥 서류가방이 아니라 단검 가방이었어?

 

“죽어 주시죠!”

 

쇼이치가 가방을 휘두르자, 단검들이 무더기로 날아왔다.

저걸 다 맞으면 위험하다, 라고 본능이 경고했다.

 

“큿……!”

 

피하기에는 너무 많다.

그렇다면…… 막아내야지.

 

-후우우웅.

 

톤파가 공기를 가르며 바람 소리가 났다. 손잡이를 잡고 빠르게 돌려서 날아오는 단검들을 마구잡이로 튕겨 냈다. 방금 던 들었던, 공기가 다발로 찢어지

그리고…… 혜진의 화살비가 또 한 번 날아왔다. 6시 방향.

나는 어차피 톤파로 전부 막아내고 있으니 상관이 딱히 없지만, 쇼이치 쪽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

 

“끄윽……!”

 

아니나다를까, 쇼이치는 팔과 등에 화살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닐 텐데.

내가 튕겨낸 단검들 중 일부는 자신의 주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팍, 파박.

 

“윽…… 흐…….”

 

쇼이치는 날아오는 단검들을 뒤늦게 인지한 듯 했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정통으로 맞고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곳으로 빠르게 다가가 발을 들어 올렸다.

 

“간다!”

 

쿵-.

쇼이치가 빈사 상태에 돌입했음을 확인한 나는 곧장 몸을 돌렸다.

로지가 뒤로 물러나며 탄약을 장전하는 중이었고, 마침 또 다른 방향에서 나타나 화살비를 준비하는 혜진이 보이고 있었다. 방금 전 화살비가 날아온 곳과는 정반대, 12시 방향의 건물 위쪽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 거지?

 

“로지! 쇼이치는 처리했어!”

“좋아. 아이솔의 저격 포인트는 파악했겠지.”

“그래.”

 

찰칵-.

약실을 가볍게 흔들며 전방을 겨눈 로지는 또 한 발을 쏘며 탄약 상자를 바닥에 버렸다.

그새 총알 한 세트를 다 쓴 거야?

전방을 견제하며 새 탄약 상자를 뜯은 로지는 허리춤에 그것을 끼우고는 말을 이었다.

 

“리 다이린은 저격이 까다로운 상대야. 기본적으로 기동력을 주력으로 삼아 싸우는 타입이니. 그러니 우리는 아이솔이 레녹스를 저격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젠 레녹스와 리 다이린도 혜진 쪽을 의식하고 있었다.

활로 어떻게 서포트를 하나 싶었는데, 화살비가 확실히 위력적이기는 했다. 무서운 건 저게 겨우 시선 끌기 용도라는 거지. 방금 쇼이치와 싸울 때도 확실히 도움받았었는데.

저격 포인트에 아이솔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저격 기회를 어떻게 만들라는 거지?

저격에 필요한 조건이 뭔질 모르니 감이 안 온다.

묶어 두기라도 해야 하나……?

 

-타다다당!

 

로지의 스핀샷이 이어지며 상념을 깼다. 그녀가 재장전하는 찰나의 틈에 리 다이린이 파고들어 쌍절곤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달려가 톤파를 휘둘렀다.

 

터엉-.

 

쌍절곤을 막은 대나무가 부서질 듯 울렸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이곳 나무들은 우리 힘을 어떻게 감당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16살짜리 저체중 난치병 환자가 콘크리트를 부수는 곳인데. 이 대나무도 VF로 강화되기라도 한 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리 다이린과 격투를 벌이던 나는 복부에 쌍절곤을 얻어맞고 뒤로 튕겨났다.

 

“커억.”

 

사실 애초부터 맞다이라기 보다는 리 다이린이 나를 공격하고 나는 겨우겨우 막는 모양새이긴 했지만…… 뭐 이렇게 잘 싸워?

뒤에서 로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여.”

 

-탕!

 

“으응? 귀찮게…….”

‘미친, 그걸 피했다고?’

 

내가 고개를 냅다 숙이자마자 로지가 쏜 총알을 리 다이린은 고개를 틀어 피해버렸다.

이러니 로지가 탄약 한 통을 다 쓸 때까지 총상이 없지.

……그럼 레녹스 쪽은?

 

“동작 그만!”

“시발 잠깐만.”

 

레녹스 쪽을 흘깃 돌아보자, 레녹스는 왼팔에서 피를 꽤 흘리고 있었다. 총상인 듯 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레녹스의 두꺼운 낚싯줄이 어느새 내 왼손에 쥔 톤파를 휘감고 있던 것이었다. 당황하는 사이 그대로 톤파를 빼앗겼다. 로지의 견제를 받아내기도 버거울 텐데, 그 와중에 나를 노렸다고? 로지를 잡기 버거우니 나를 먼저 집중적으로 노린다는 심산인가?

다만 다행인 것은, 톤파 한 쪽을 빼앗긴 것으로 내 전투력이 크게 깎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무기를 써서 싸우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나마 만든 무기도 방어에 치중된 톤파였고.

나는 오른손의 톤파를 왼손으로 옮겨 잡았다. 오른손에는 이미 장갑이 끼워져 있었으니까, 한 쪽밖에 남지 않은 이상은 왼손에 쥐는 것이 나았다.

로지의 총소리가 문득 가까워진 듯해 힐끗 보니, 여전히 내 톤파 한 쪽을 끝에 휘감은 채 채찍처럼 묵직하게 휘둘러지는 레녹스의 낚싯줄을 피해 물러난 로지가 리 다이린을 지근거리에서 압박하고 있었다.

레녹스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충돌하는 순간 반격하기 위해 준비하는데, 북쪽에서 세 번째 화살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엥?”

 

그러나 화살비가 떨어지는 목표 지점은 레녹스도, 리 다이린도 아닌 정확히 그 사이였다.

왜 저기다 곡사를 쏜 것인가, 의아한 찰나 레녹스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이질적이고 강렬한 총성이 울렸다.

 

타다당-!

 

총성이 들려온 방향은 혜진이 마지막 곡사를 날린 건물의 오른쪽 앞에 있는 수풀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발사된 그 총알들의 목표 지점은, 정확히 레녹스의 미간이었다.

 

“어…… 어라?”

 

리 다이린이 멍청한 소리를 내고, 레녹스가 쓰러짐과 동시에 아이솔이 모습을 드러냈다.

 

“3연발 돌격소총으로 저격을 하는 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군. 안 그래도 부족하던 총알이 두 발이나 낭비됐지만 말이야.”

 

뒤이어 혜진도 화살을 활에 매긴 채 건물에서 내려왔다.

 

“운명을 받아들이세요, 리 다이린 님.”

 

리 다이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더니, 잽싸게 뒤를 돌았다.

 

후웅-.

 

그리고는 바람 소리가 날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아이솔이 소총을 들어올리고는 리 다이린의 방향으로 난사했지만, 리 다이린은 총을 맞은 듯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달렸다.

일순, 바닥에 총을 연사해 약실을 한 번에 비운 로지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총에 넣고 장전했다.

그리고는 리 다이린이 도망치는 쪽을 신중히 겨누더니, 

 

“아디오스.”

 

방아쇠를 당겨 격발했다.

 

투웅-.

 

총을 쏘는 소리라기보다는, 무언가 강하게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

저 멀리, 병원 쪽으로 도망치던 리 다이린이 주춤하더니 다시 달리는 것이 보였다. 주춤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맞은 것 같지만 죽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로지가 은근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의아하던 차에 저 멀리서 작게 폭음이 들렸다.

 

-펑.

 

글쎄, 사람이 옆구리에서부터 폭발하는 장면을 설명하자면 비위가 상하니 이 부분은 생략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로지, 그거 폭탄 총알이었어?”

“셈텍스탄 Mk-II다. 폭발성 탄환이지.”

“뭐…… 어쨌든 끝난 거지?”

“그래. 슬슬 생존자도 얼마 안 남았을테니, 동맹은 이쯤에서 해산하는 편이 좋겠다. 다들 그동안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장현우, 배낭 풀어 봐. 일단 남은 물품 분배부터…….”

 

[새 금지구역이 지정되었습니다. 숲, 성당.]

 

갑작스레 들려온 방송에 잠시 말을 멈춘 아이솔은 헛웃음을 흘렸다.

 

“벌써 자정인가. 그러고 보니 한나절 조금 넘는 동안 두 번이나 전투했군.”

 

트랩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막 해가 완전히 떨어진 참이었는데,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로지가 말을 이어 갔다.

 

“금지구역은 세 군데 남았다. 아까부터 어째서인지 남은 생존자 수를 알려주고 있지 않지만, 조금 늦긴 했지만 해산하기에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라고 생각…….”

 

그때, 로지의 말을 끊고 방송이 이어졌다. 물론 방송이 덜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분명,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금지구역을 예고하는 내용이어야 할 텐데.

방송의 내용은 예상하던 것과 사뭇 달랐다.

 

[생존자 숫자가 적어서 금지구역이 가속됩니다.]

[새 금지구역이 지정되었습니다. 병원, 성당.]

[곧 공장 지역이 마지막 금지구역으로 지정됩니다.]

 

“……뭐? 뭔 개소리야?”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이솔과 혜진, 그리고 로지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여지껏 이런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방송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최종 생존자가 네 명 남았습니다.]

 

“…….”

 

아나운서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혼란스러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그 정적을 깬 것은,

 

-철컥.

 

하고 울려 퍼지는 권총의 장전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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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전에 금지구역 멋대로 지정되는 버그 있었던거 기억하는 사람 있을지 모르겠음

나도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안나서(10~11월쯤 버그 대량으로 터졌을 떄일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기는 한데 여튼) 유튜브에서 영상 본 거 같기도 하고 해서 찾아봤는데 안 나옴.

하여간 그것도 소재로 써볼까 해서 쓰다보니 이렇게 막판 분위기 급반전 소재로 바뀌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