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CQYDgu9nKjY


지금으로부터 3세기 전에, 조선 땅에는 작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새로운 나라, 변화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실학자들에 의해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천주교가 처음 이 땅에 알려진 것입니다. 누구도 갈아보려 하지 않는, 황무지 같은 땅에, 작은 씨앗 하나가 떨어져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습니다. 각박한 세상에 치여 괴로워하는 조선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앞으로 올 세상에 대한 희망은 가뭄 중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천주교를 믿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의 물결을 누구나 반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곧 천주교인들에게는 서슬퍼런 박해의 칼날이 떨어졌고, 천주교를 믿는다는 것이 들통나면 그것이 왕족일지라도 죽음과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죽음 아니면 배교라는 두 선택지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은, 형장의 형리들에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이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를 당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 말씀을 믿고, 목숨을 마다하고 자랑스럽게 고난의 잔을 들이켰습니다.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 잠들지라도, 그들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맡기신 십자가를 지고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변의 관심과 눈초리가 부담스러워서, 십자가를 지고는 세상에서 뒤처질까 봐 두려워서, 그것을 숨기고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선조들이 그랬듯 천주교인인 것을 들킨다고 해서 목숨을 잃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을 부끄럽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군가가 미사에 참례하고, 길거리에서 성호를 그으며 묵주기도를 하는 우리에게 "당신은 천주교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자랑스럽게 그에게 말해줍시다. "그렇습니다, 나는 천주교인입니다. 살아도 죽어도 하느님의 품 안에서 살고 죽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