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명으론 Record of Lodoss War -Deedlit in Wonder Labyrinth- 풀네임으로 일일히 부르기는 힘들어 필자는 로도스도베니아로 별명을 붙혀 부르고 있지만 마땅히 입에 붙기 쉬운 별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게임은 로도스도 전기 시리즈 30주년 기념으로 레이디버그에서 2020년 3월 13일부터 얼리억세스로 출시했다가 약 1년 이후인 2021년 3월 27일에 풀 릴리즈로 정식판으로 발매되었다.


레이디버그는 편의상 제작사로 지칭하기는 하지만 극소규모의 인디 제작팀으로 주로 외주를 받아 각종 게임, 애니메이션의 특전게임 혹은 팬게임을 개발해온 곳이다. 레이디버그의 작품들로는 <동방 루나 나이츠>,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부활의 베르디아>, <진 여신전생 SYNCHRONICITY PROLOGUE> 정도가 있는데 주로 2D 횡스크롤 베이스의 유려한 도트그래픽이 장점으로 장르적으로는 메트로베니아를 즐겨 제작했다. 마찬가지로 도 메트로베니아로 만들어졌다.


레이디버그의 게임들은 원작이 되는 작품의 이미지를 결코 손상시키지 않는 퀄리티로 실망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이건 레이디버그 게임들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는데 게임이 '실망시키지 않는 팬게임'의 범주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실망시키지 않는 퀄리티지만, 그렇다고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반드시 뽑아낸다는 의미까지 연결되진 않는 것이다.


이제 스토리로 넘어가면 로도스도 전기 시리즈와 디드리트부터 간략하게 언급할 필요성이 있다.


서양의 중세 판타지의 근본에 톨킨이 있다면 한국 중국에도 여러 영향을 끼친 일본 중세 판타지의 근본에는 로도스도 전기가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특히나 로도스도 전기의 히로인 캐릭터 중 하나인 디드리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여성 엘프 캐릭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하며 여성 엘프 캐릭터의 계보를 올라가면 반드시 디드리트에게 도달할 수밖에 없는 여성 엘프 캐릭터의 정점이기에 마치 영원에 가까운 수명을 사는 작중 하이 엘프의 설정처럼 무려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 현재 시점에서도 불멸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캐릭터다.


인기에 힘입어서 디드리트는 로도스도 전기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는데 때문인지 주인공인 판을 제치고 <로도스도 전기 : 디드리트 인 원더 라비린스>의 단독 주인공이 되었다.


<로도스도 전기 : 디드리트 인 원더 라비린스>의 시작은 디드리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디드리트는 동료들과의 모험 끝에 로도스에 전란의 시대가 끝나자 인간의 연인인 자유기사 판과 여행을 떠났는데 어느 날 의식을 차리고 보니 판은 곁에 없고 자신은 숲인지 계곡 안인지 제단인지도 불분명한 차가운 구조물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 것인지 알기 위해 디드리트는 미로 속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미로를 헤매면 헤맬수록 알 수가 없는 일들을 더 조우하게 되는데 이미 분명 타도했을 터인 로도스의 전란을 배후에서 조종한 회색마녀 카라와의 만남, 모험을 끝내고 헤어진지 오래였을 텐데 수수께끼만 같은 말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동료들과의 재회, 분명 과거 모험에서 죽었을 터인 드워프 김리와의 재회. 도대체 이 미로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디드리트는 수수께끼에서 수수께끼를 낳는 의문점들을 안고 다만 헤맬 뿐이다.


시놉시스는 여기까지 소개하고 이제 장르로 논점을 옮기면 는 전형적인 2D 횡스크롤 메트로베니아 장르 게임이다.


특히 메트로베니아 장르의 양대 효시인 악마성 시리즈와 구성이 같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디드리트의 도트 그래픽은 <월하의 야상곡> 알카드의 움직임하고 동일하다시피 똑같다. 단순히 달리면서 팔을 움직이는 모션이 비슷하면 그냥 그럴 수도 있는데 알카드 특유의 잔영 효과까지 있으면 무엇을 오마쥬 했는지 못 알아차리는게 더 힘들다.


단순히 악마성에서 디드리트만 주인공으로 바꾼건 아니고 <로도스도 전기 : 디드리트 인 원더 라비린스>의 오리지널 시스템으로는 속성 정령 시스템이 있는데 게임 내에서는 두 가지의 정령이 있으며 어떤 정령을 동반시키고 있는지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실프하고 샐러맨더로 대기의 정령인 실프는 점프 키를 꾹 누르면 공중 부양할 수가 있어서 가시와 용암과 같은 장애물을 넘어갈 수가 있고 일부 구간에선 높낮이를 세밀조정해서 통과해야하는 곳도 있다. 불의 정령은 샐러맨더는 실프하곤 다르게 이동에서 특화된 기능은 없는데 샐러맨더로 전환하고 있으면 불 공격에 면역이 되고 용암 안에서도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는다. 이는 실프도 마찬가지인데 두 정령 모두 공통적으로 해당 속성의 공격을 받으면 면역이 될 수가 있다. 


이러한 면역은 일부 몬스터들도 같은데 몬스터들도 속성이 다른 몬스터들이 있어 해당 속성의 정령으로 해당 속성의 몬스터를 공격하면 몬스터가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반드시 반대 속성의 정령으로 전환하고 잡아야 몬스터에게 데미지가 들어가고 그 몬스터를 잡을 수가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실프하고 샐러맨더는 정기를 받는 것으로 최대 3레벨까지 단계가 올라가는데 1레벨, 2레벨, 3레벨마다 미세한 퍼센트로 데미지가 상승한다. 해당 속성 정기는 반대 속성의 정령으로만 잡아야만 나오는데 실프로 전환하고 몬스터를 잡아야 샐러맨더의 화속성 정기가 나오는 식이다. 이렇게 정기를 얻어서 반대 속성의 정령이 3레벨까지 도달했을 때 전환하면 HP가 점진적으로 회복되는데 이게 사기적으로 성능이 좋아 회복 물약 없이도 전투의 지속력이 붙는다. 두 정령을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서 전환시키며 싸우는 것이 이 게임의 주 플레이 방식인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 트리거의 슈팅 게임이었던 <이카루가>를 떠오르게 한다.


또 한 가지 오리지널 시스템으로는 활이 있는데 화살은 MP로 대신하며 활로 화살을 쏘는 것으로 몬스터를 공격하는건 물론이고 활로 통과해야하는 퍼즐 구간이 있다. 퍼즐하니 공포를 느낄 수도 있지만 퍼즐 난이도는 화살을 난사해도 깰 수 있을 만한 난이도라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조작감이 부드럽고 사운드 효과가 매우 세련되어 타격감이 좋다. 사운드가 간결하면서 강렬하여 분위기를 좋은 의미에서 올려준다. 덕분에 레이디버그의 수려한 도트 그래픽을 눈으로 즐기면서 맵을 전전하고 헤매는 것이 지루하지가 않은 것이 장점,


난이도는 대부분의 메트로베니아 게임들과 같이 특별히 어렵다고는 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너무 쉬워서 문제라고 느낄 수 있다. 몬스터들은 대부분 예상 가능한 공격 궤도와 단순한 패턴을 지녔고 그냥 지나가는데 거치적스럽게 방해 정도가 될 뿐이다.


보스전은 한층 더 해서 저 정령 레벨 업에 의한 자동 회복 시스템이 지나치리만큼 좋은 데다 실프와 샐러맨더를 전환하는 플레이 방식만 익히면 큰 어려움 없이 데미지로 보스를 압살하는게 가능한데 필자는 게임을 하면서 회복 물약을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이쯤해서 단점을 짚으면 게임의 컨텐츠가 너무 적은 것도 문제. 이 게임의 평균 플레이 타임은 5시간 내외인데 필자는 6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왜 이 정도나 걸렸냐면 1시간 가량은 지난 얼리억세스 분량(1, 2스테이지)를 먼저 하고 정식판이 나온 뒤 처음부터 다시 했기 때문이다.


무기하고 마법도 풍부하다고 할 수가 없고 무기는 간헐적으로 몬스터에게서 드랍되는 무기와 맵 탐색 도중 얻을 수 있는 무기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게임은 일단 상인 NPC가 있고 돈을 불릴 수 있는 도박 컨텐츠도 있는데 꼭 사고 싶은 무기의 부재와 돈을 불려야할 의미가 없으니 바래지는 부분이다.


악마성으로 대표되는 메트로베니아 장르가 또 다른 메트로베니아의 원류인 메트로이드하고 차별화되는 점은 메트로이드하고 비교가 안 될 만큼 넘쳐나는 무기와 마법, 아이템에 있다. 이 게임은 그 중요한 아이템 파트가 빈약하기 때문에 메트로베니아로서의 재미가 덜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으로 <월하의 야상곡> 같은 악마성, <블러드스테인드>의 게임성에 못 미친다는건 실망할 수가 있는 부분이다. 게임은 깔끔한 도트 그래픽이나 타격감, 사운드로 보완되어지는 부분이지만 필자는 이 게임에서 악마성의 정수가 느껴진다기보다 그냥 평범한 2D 횡스크롤의 팬게임을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초반 단락에서 레이디버그 게임은 팬게임의 범주에서만 실망시켜주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이다. 하지만 이게 게임이 수준 이하라는 것은 아니다. 팬게임 이상은 아니지만 역으로 팬게임에 충실히 부합하다는 의미에서 로도스도 전기 팬이라면 부담없이 충분하게 즐길 수가 있다.


스토리는 조금만 눈치가 빨라도 진상을 파악할 수가 있다. 스토리에 관해서도 뭔가 말해보자면 이 게임은 로도스도 전기 시리즈 또는 로도스도 전기 시리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로도스도 전기 OVA를 못 본 사람이라면 스토리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입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단 왜 주인공 디드리트가 카라를 만나고 카라가 아직 있다는 것에 왜 경악하는지, 왜 드워프 김리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격하는지, 이걸 모르면 얘기가 안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게임은 로도스도 전기 30주년 기념으로 나왔고 로도스도 전기의 팬층을 노리고 나온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긴 하겠다.


그런데 왜 하필 30년이 지나고 나서야, 30주년 기념작으로 이 게임이 나왔을까.


그 답은 아마 로도스도 전기의 매니아가 이 게임의 엔딩에 도달한다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로도스도 전기의 팬이자 매니아라면.




결론은 과거 로도스도 전기를 사랑했던 매니아라면 추천.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하이엘프와 하이엘프에 비해 짧은 생애로 단명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약속하고 있는 지는 너무나도 뻔한 것이다. 기억 속에서 헤매고 고뇌하는 디드리트와 같이 시리즈의 수명이 사실상 끝나 같은 인물들의 새로운 모험이 더 나올 수는 없지만 그것을 인정하기가 힘든 팬층과 같이. 


하지만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별은 추억을 지운다는 의미가 아니며 당신의 추억은 누구나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며 이별은 또 하나의 모험을 떠나기 위한 시작이다. 이 게임은 그리 위로해주기 위해 나왔다.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