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소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최근 마음에 드는 모바일 게임을 찾아 소개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교양도 쌓을 겸 관련된 사람들 이야기도 풀어볼겁니다.

제목에 분명히 나쁜 철학 책이라 적어놨는데도 클릭하신 것을 보면 흥미가 있다는 의미겠지요? 

이 나쁜 철학책들을 자세하게 소개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세히 알아봤자 하등 도움될 것도 없습니다. 이런 것이 있구나 정도의 내용입니다. 그래도 보면 어디가서 한 10초 정도 아는 척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들통나면 쪽팔리니까 재빠르게 주제를 돌리시길 바랍니다.





Alter ego,  Caramel Column Inc.에서 제작한 모바일 게임입니다.

가격은 무료입니다. 돈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사실 이 글은 리뷰가 아니라 야매 해설에 가까운 글입니다.


플레이 타임도 그렇게 길지 않으니 먼저 게임의 엔딩을 보시고 난 후 이 글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Alter ego. 한글로 바꿔보자면 다른 자아입니다. 


에고(Ego), 슈퍼에고(Superego), 이드(Id). 


프로이트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인문학 서적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이것에 대해서 다루지 않을 겁니다. 저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가시면 됩니다.



본격적인 나쁜 책 설명에 앞서 이 게임에 대한 설명을 먼저하겠습니다.

간단합니다. 그냥 흔하디 흔한 클리커 게임입니다. 클릭 말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말풍선을 눌러 당신의 에고를 모으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낯선 공간에서 깨어나 자신이 누군지 알아갑니다.


화면의 말풍선들은 전부 하단에 등장하는 책에서 나온 구절입니다. 연출 부분을 상당히 칭찬하고 싶습니다.

천천히 다가오는 말들을 누르고 있으면 정말 나와 대화하고 있다는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그저 시간 죽이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클리커 게임을 이런 식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처음 대면하는 것은 알 수 없는 벽입니다. 이 벽은 여러분에게 규율을 강요합니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규범에 대해 끊임 없이 이야기합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그것을 잊지말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에고는 모아서 어디에 쓸까요? 벽은 에스라는 여자를 조심하라고 합니다.



또 한 명의 인물 에스입니다. 그녀의 정체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이곳에 아주 오랜 시간 홀로 여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모은 에고로 그녀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질문합니다. 이곳은 어디인지, 당신은 누구인지. 

그리고 당신을 분석합니다. 간단한 테스트로 말이죠. 당신의 잠재된 고민, 당신의 방어기재 같은 것들을 알려줍니다. 


정신분석?


   


위키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왼쪽이 프로이트고 오른쪽은 라캉이라는 아저씨입니다. 둘 다 골때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 책을 읽어봤자 인생에 단 1도 도움이 안 됩니다. 괜히 읽으려는 시도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두 인간에 대해 자세하게 배워봤자 득될 것이 하나도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냥 이 인간 둘이 정신분석이라는 것을 했다는 것만 기억하십쇼.


정신분석은 무엇일까요. 에스가 여러분에게 해주는 심리 테스트가 정신 분석일까요? 

분석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것을 의미하니 그럴싸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두 아저씨가 말하는 정신분석에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두 개의 방과 문지기




프로이트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면서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걸 '억압'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방이 있는데 하나는 무의식의 방이고, 하나는 의식의 방입니다.

무의식의 방은 야갤 같은 곳입니다. 혼란 그 자체죠. 거기서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내뱉어버리면 우리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겁니다.


그래서 문지기가 존재합니다. 이 문지기는 미친 집단 독백의 장에서 자신의 기준에 맞는 것만 선별하여 의식의 방으로 보냅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의식의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뻑킹 문제가 존재합니다. 이 문지기는 3N의 불통 같은 운영과 비슷합니다. 무슨 기준으로 검열하는지도 가르쳐주지 않고, 왜 검열하는지도 안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비슷한 2D 야짤을 올렸는데 난 삭제 당하고, 쟤는 그대로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심지어 항의해도 왜 삭제했는지, 무슨 기준으로 삭제했는지도 안 알려줍니다. 빡치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무엇을 검열 당한지도 모른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이게 사실이라면 생각이라는 것이 정말 당신의 생각일까요. 물론 모두 여러분의 뇌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정말 내 의지가 작용한 것이 맞을까요? 이런 정신을 분석한다고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까요?


언어도 날 통제한다



이 아저씨는 소쉬르라는 사람입니다. 프로이트와 라캉보다 더 악질입니다.

이 새끼는 안 끼는 곳이 없거든요. 자세히 알면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으니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근대 언어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입니다.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간단한 예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여기 귀여운 양이 있습니다. 양은 왜 양일까요? 왜 굳이 양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라도 양을 보고 양이라고 부르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소쉬르 아저씨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양처럼 생긴 동물을 보고 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니랍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요.

이 아저씨는 우리의 뚝배기 속에 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개념이 먼저 있고, 그 뒤에 양이라는 말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일까요.  


영어로 양은 sheep입니다. 근데 양을 뜻하는 mutton이라는 단어가 또 있습니다. 

이것도 양이긴 한데 이건 살아있는 양이 아니라 양고기를 뜻합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기다려보세요.

프랑스어로 양은 mouton입니다. 근데 양고기는 뭘까요? 똑같이 mouton입니다.


만약 양이라는 동물을 보고 양이라고 이름지었다면 왜 영어는 살아있는 양과 양고기를 구별하고, 프랑스어는 구별하지 않을까요?

간단합니다. 프랑스인은 이 둘의 개념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양고기를 뜻하는 단어가 없는겁니다.  다시 말해서 개념이 없으면 말도 없는겁니다. 자유롭게 말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어떤 틀 안에 갇혀있는 겁니다. 개념 밖에는 말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주체적인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요? 그럼 외우는 수밖에요. 개념이 말보다 앞선다. 이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니 놈이 한 게 아니라도 넌 리폿이다



이 사팔뜨기 아저씨는 그 유명한 사르트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사르트르 하면 실존주의입니다. 

실존주의란 뭘까요? 아니 그보다 정신분석 이야기한다면서 왜 지랄 맞은 사람들 이야기만 하고 있을까요?

그래도 보면 좋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시면 제가 장담하는데 어디가서 아는 척을 가장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 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남들에게 휘말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 내가 누구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주체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주체적인 것일까요?


라틴어로 실존하다는 Exsistere입니다. Ex는 바깥이라는 의미고, sistere는 서다는 의미입니다. 

즉 실존은 바깥에 서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내면이 아니라 나의 바깥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겁니다.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면 무엇이 보일까요. 아마 내가 무엇을 하는지만 보이지 않겠습니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게 핵심입니다. 메모하세요. 지적인 모습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사르트르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내가 누구인지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흔히 만화에서 악당을 죽이며 마음은 착한 녀석이었어... 라는 말이 나오죠?

사르트르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간 뺨때기를 후려맞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행동이 결정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나왔죠.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두 번째 핵심입니다. 메모하세요. 이건 사르트르가 한 말은 아닙니다.

근데 실존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인 것입니다.

실존주의가 멋지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존나 고통스럽습니다. 왜냐고요? 이것도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롤을 하려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다리우스로 적 머리통에다가 시원하게 아우토반을 깔아주고 싶은데 뭔가 이상합니다.

난 오늘 처음 롤을 켰는데 접속하자마자 로딩 화면이 뜹니다. 그리고 우물에 왠 티모가 서 있네요.

당신이 들어오자 마자 사람들은 미친 듯이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알고보니 남동생이 몰래 접속했다가 여러분이 집에 오니 급하게 컴을 꺼버린 것입니다.

팀원들에게 설명해보지만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게임도 지고 리폿까지 당합니다.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욕도 쳐먹고 리폿까지 당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은 탈주한 이유에 대해서 ㅈ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실존주의에서 앙가주망(Engagement)이라고 합니다.

 

   


그녀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플레이어인 당신은 이 게임에서 영문도 모른채 이곳에 등장했습니다. 원하지도 않았고, 예측할 수도 없었습니다.

롤에 로그인만 했을 뿐인데 우물에 서 있는 티모를 발견한 것 처럼요. 우리의 삶은 앙가주망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무엇이 해답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롤이야 뭐 기다리거나, 새로 만들거나, 안 하면 그만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지옥에서 우리는 매번 선택을 해야합니다. 죽을 때까지요. 그게 실존주의입니다.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제 능력이 딸리나봅니다. 

나머지 부분은 다음 기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