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대로 라오어2, 스펙 옵스, 니어 레플리칸트 ver.1.22


위의 세 가지 게임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미 짐작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위의 세 작품은 플레이어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불편함, 또는 죄악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설계된 작품이다.


하지만 셋의 평가는 매우 갈린다. 두 개는 명작 또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지만(적어도 평작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동의할 것이다) 하나는 모두의 트라우마 스위치가 되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첫째로는 필연성이다.


일단 비극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자. 비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로 별로 없다. 일반적인 사람이 비극을 접한다면, 결말에 찝찝해하다가 "이러면 괜찮았을 텐데," 라는 식의 대체적 줄거리를 다들 한번씩은 생각해 보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경우에 사람들은 희극에는 별 토를 달지 않지만, 비극의 경우에는 가능한 모든 회피 방법을 본능적으로 모색한다. 따라서 비극에는 일반적으로 희극보다 더 정교한 설정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희극에서 주인공이 싸움에서 이길려면 "강하다" 라는 한 단어로 끝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주인공이 패배하는 비극에서는 "약하다, 약한 이유는 근력이 어떻고, 컨디션이 어떻고..." 이런 식으로 추가적인 필연성을 나열하는 정교함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단 소리다.


그럼 이 부분을 어떻게 세 가지 게임에서 다뤘을까?

스펙 옵스와 니어 레플리칸트는 진실을 숨기고, 플레이어를 비극으로 유도하는 게임 목표를 설정하였다. 그 과정은 합리적으로 보였고, 플레이어가 게임 목표를 따르는 것이 비극의 초석이 되도록 하여,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한 것처럼 착각하게 해 대부분을 납득시켰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동기가 있었고, 플레이어가 거기에 몰입하였으며, 따라서 결과도 플레이어가 (최소한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라스트 어브 어스 2는 어땠는가? 도입부에서 비극의 시작은 우연히 일어난, 심지어 전작에서 묘사된 캐릭터성을 버리면서 제공되었다. 플레이어는 선택을 할 수도 없었고 당연히 개연성에 의문을 품는다. 몰입할 대상이라고는 조엘이 죽은 것에 분노한 엘리일텐데, 여기서 제작사는 그치지 않고 자충수를 하나 더 둔다. 엘리의 원수의 시점을 플레이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이미 플레이어는 몰입할 수 없는데 상대의 시점의 이해를 강요한다. 될 리가 없다.


비극은 정교해야 한다. 특히나 이전부터 등장한, 플레이어를 대변하는 인물을 죽이기 위해서는 아주 정교한 배경이 필요하다. 그럼 라오어2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개인적으로는 필연성을 위한 배경 조정은 당연히 전제로 깔고, 연출 방법도 바꿔야 한다고 본다. 차라리 니어 오토마타처럼 1부 A시점 - 1부 B시점 - 2부 복합 시점으로 갔다면 그나마 나은 표현 방법이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예 2편을 애비 전용 편으로 만들어서 큰 그림을 그린 후, 3편에서 결합하는 것도 나은 방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거듭 강조하지만, 비극은 정교해야 한다. 이전 작의 주인공이 죽으려면 더더욱.


둘째는 교조적 태도이다.

이 경우 스펙옵스는 플레이어를 조롱하기 때문에 솔직히 교조적이지 않다고 보기는 힘들다. 근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이유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게임 주제와 상관이 있고, 플레이어가 몰입하는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니어 레플리칸트의 경우에는 그런 의도를 느끼기 힘들다. 게임 내에는 수많은 비극이 있지만 게임은 옳고 그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원인과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무언가를 알려주기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두고, 넌 어떻게 생각하냐, 이런 느낌에 가깝다. 심지어 규모 큰 개발사라면 환장하는 pc 적 요소조차도 그냥 배경 세팅을 위한 요소일 뿐이다.


라오어2는 기분이 나쁘도록 많다. 일단 게임이 몰입 유도에 실패한 시점에서 기분이 나쁜데, 필연성과 개연성 없는, pc를 주입하려는 교조주의가 매우 잘 느껴진다. 이 게임을 산 사람은 이쯤 되면 자기가 몇만원 돈 주고 pc 홍보물을 샀나,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라오어2는 그냥 못 만든 게임이다. 자칭 게임 평론가들이 잘만들었다고는 하는데, 이미 비슷한 주제를 성공적으로 다룬 스펙 옵스를 보면 이게 얼마나 헛소리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니어 레플리칸트조차도 스토리 구성 부분에서는 이미 10년도 전에 라오어 2를 뛰어넘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