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인공이 살던 고향마을이 만약 처음에 평화롭고 외딴 곳이었다면, 보통 게임의 시작은 주인공 어머니가 주인공 깨우면서 오늘은 친구들하고 놀러간다고 하고 늦잠질이니 하는 정도일 것이다. 물론 마을은 나갔다 돌아와보면 불타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주인공과 그 친구들은 시골마을에 어울리지 않게도 상당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마을 사람을 구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한편 만약 뼈대있는 가문 출신이라면, 아마 파산하거나 누명을 써서 풍비박산났을 것이다.


 3. 주인공은 그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여자라도 일단 위기에 처해 있다면 무조건 믿어준다. 이야기 전개 따라 보답받을 수도 있고 속아넘어간 것일 수도 있지만, 어디 남자가 예쁜 여자에게 넘어간 게 한두 번이어야지.


 4. 부모님이 물려주신 장신구는 주로 세계를 멸망시키거나 구원하는 데 쓰인다. 사실, 일찍 얻은 용도 없는 아이템이야말로 게임 끝날 때까지 갖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물건이 된다.


 5. 주인공은 이미 유명하거나 전투로 단련된 전사가 아닌 한 20세 이하가 대부분이다. 실전 경험도 없는 주제에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에서 살아남고 마왕 때려잡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6. 주인공은 부모가 아예 없거나, 그 중 한 사람이 없거나 곧 없어진다. 그 원인은 비극적 사고에서부터 게임 인트로에서 불타던 고향 마을이라던가 의문의 실종까지 다양하다.


 7. 착한 편은 이름만 쓰인다. 나쁜 편은 성만 쓰인다. 이름을 주로 쓰는 나쁜 편은 곧 아군으로 들어온다.


 8. 이름이 있는 NPC는 중요하다. 이름이 있는 NPC의 부모라던가 친구 정도로만 뜨는 NPC는 5초 이상 대화할 일이 없다.


 9. 용암, 빙하지대, 하수구, 숲, 광산, 고대 신전은 ‘배경의 다양성을 위해’반드시 등장한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신비한 수정이 구석구석 박혀있어 무척 환한, 하지만 길찾기는 아주 짜증나는 미로와 같은 동굴하고 로봇이나 외계인이나 이상한 것들이 살지 인간은 하나도 살지 않는 마을, 아주 외딴 곳에 있지만 주인공이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길거리 아이 한 명까지 빠짐없이 아는 조용한 동네, 마법에 걸려 죽도록 헤매야 하는 안개투성이 숲, 최첨단 과학기술이나 마법으로 하늘에 떠다니는 성, 이야기 배경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대재난으로 인해 다 박살나고 불타서 폐허만 남은 도시 등이 있다. 어차피 어떤 곳에 가서 어떤 옷을 입고 있건 주인공의 일행은 추위나 더위를 느끼지 못하니 무슨 상관일까.


 10. 과학기술은 악당들이 사용하는 것이므로 사악하다. 착한 쪽은 숲속에 작은 마을 지어서 평화롭게 먹고 산다.


 11. 헤어스타일이 특이할수록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13. 언제나 컷씬에서 묘사되는 건 더 강력하다. 싸구려 파이어볼이라도 컷씬에서 보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고 총알을 피해도 벽을 짚고 텀블링을 할 것이며 잡몹 체력 100도 못 깎는 칼질 한 번에 주인공 동료가 나가떨어질 것이다.


 14. 문이 열린 집은 들어가서 뭐든 훔쳐도 좋다는 뜻이다. 안에 사는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문이 잠겨 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점에선 이게 안 된다!


 15. 주요 아군 멤버

 * 부모님하고 싸우고 뛰쳐나온 왕자나 공주

 * 주인공하고 애정관계가 있는 여자 법사.

 * 주인공하고 애정관계가 없는 여자 전사. 애정관계가 없으므로 주로 한쪽 눈이 없거나 근육질에 얼굴은 상처투성이거나 해도 상관없고 보통 그렇게 나온다.

 * 실제로 속은 부드러운, 슬픈 과거를 지닌 말없는 전사.

 * 주인공의 친구. 보통 주인공을 위해 죽는다.

 * 신의고 뭐고 없는 황금만능주의의 이기주의자. 게임 끝나기 전에 우정과 사랑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 나쁜 편 첩자. 주인공이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미 주인공의 숭고함에 감동 먹고 아군이 된 후거나 얻을 거 다 얻고 사라졌다 나쁜 편에서 모습을 보인 후일 것이다.

 * 주로 쓰잘데없는 사이드퀘스트와 연관되어서만 존재하는 이상한 캐릭터. 게임 플레이 시간을 과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사실 귀찮아서 다들 일행에서 빼버린다.

 * 아무 쓸모는 없지만 귀여워서 쓰는 여자애.


 16. 주요 적군 멤버

 * 아주 사악한 악당. 하지만 남자 주제에 여자만큼 예쁘다. 최종보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그 악당의 오른팔. 보통 무척 질기거나, 무척 무능하거나 중 하나며 드물게 둘 다일 경우도 있다.

 * 그나마 가장 유능한 여자 부하. 물론 주인공이 잘생겼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함정에 빠졌을 때 구해줄 것이다.

 * 죽은 줄 알았는데 배신 혹은 세뇌로 인해 결말쯤 되어 악당편에서 보게 되는 주인공의 동료.

 * 명예와 헌신을 소중히 여기며 그만큼 폼나게 등장해서 폼나게 싸우다 주인공이 회유해도 맹세 운운하다 폼나게 죽는 훌륭한 부하. 능력치 보면 회유가 먹히지 않은 게 무척 아쉽지만, 먹힌다 쳐도 악당에게 한 방에 죽는 게 보통이다.

 * 가정교육을 매우 잘못 받은 듯한 사악한 어린아이. 의외로 강하다.


 17. 마을 주민

 * 목적지 없이 떠도는 수많은 사람들.

 * 혼자서 중얼대다가 주인공이 말 걸면 놀라는 외톨이.

 * 같은 마을의 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도무지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주인공에게 도와달라고 귀찮게 퀘스트를 맡기는 남자.

 * 하루 24시간 숨바꼭질을 즐기는 아이들과 역시 24시간 장사하는 질긴 상인들.

 * 촌장, 현자, 국왕, 시장, 아무튼 뭔가 지도자.


 19. 주인공은 칼을 써야 한다. 그래야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마법지팡이를 들 수 있으니까! 사실 중기관총과 레이저포와 폭탄과 온갖 첨단 무기가 존재하는 세상이라도 칼은 그보다 월등히 강력하고 쓸모 있다. 참고로 주인공과 싸우게 될 악당조차도 당연히 칼을 들고 나오므로, 칼을 들고 다니는 수상쩍은 인물은 일단 최종 보스 예상 명단에 올려두자.


 20. 악마 소환해서 이리저리 써먹어야겠다고 나서는 마법사 치고 성공해서 계획대로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얻고 싶더라도 그런 짓 함부로 하지 말자.


 21.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대문짝만한 검을 든 험악한 주인공 일행이 돌아다니며 보이는 사람마다 말을 건다 하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22. 언제나 다음 마을에선 더 좋은 무기를 판다. 주인공 일행이 뭐 요요나 클로나 빗자루나 얼마나 기괴한 무기를 쓰는 요상한 사람들로 이뤄져 있건 간에 다음 마을에선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24. 상인이 사지 않는 물건은 없다. 희한하게도, 상인은 주인공이 한 번 판 물건은 결코 되팔지 않는다.


 25. 언제나 건물 외부는 건물 내부보다 작다.


 26. 게임의 첫 마을에서 골치를 썩이고 있는 산적들은 주인공이 레벨업을 한 게임 후반부 마을에서는 경비가 어렵잖게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지만, 첫 마을 사람들은 후반부 마을에서 경비를 수입해올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물론 마을에서 마을로 여행하는 것은 무척 힘들긴 하다. 사방에 미로와 퍼즐이 널려있고 심심하면 길이 막혀있어 퀘스트를 풀어야 하며 몇 걸음 걸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수없는 몬스터들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 이외의 사람들은 아무도 여행에 곤란을 겪지 않으니까...


 27. 게임이 시작할 무렵 마을 노인이 주인공에게 쿨럭대며 명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이야기해준 모든 전설은 다 사실이다. 길거리 지나다니다 듣는 모든 소문 또한 사실이다. 아무 점집에나 들어가서 듣는 모든 예언은 이루어진다. 모든 기억상실증은 회복된다. 잠겼다고 메시지가 나오는 모든 문은 열린다. 무조건 게임이 끝나기 전에.


 28. 같은 이유에서 모든 꿈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의 정확한 재현이거나, 어딘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거나, 혹은 미래의 아주 정확한 예언이다.


 29. 무기는 결코 부서지거나 탄약이 떨어지지 않는다. 스토리에 꼭 필요하지 않는 한.


 30. 주인공은 플레이어가 아무리 패드를 내리쳐도 절벽을 기어오르거나 난간을 넘어가거나 길을 가로막고 있는 표지판을 돌아가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 해도 나중에 달리는 열차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주인공을 컷씬에서 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32. 악당은 언제나 전투에 불리하면 도망쳐서 살아남는다. 졸개라면 불쌍하다고 주인공이 살려서 보내준다. 정말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면, 엔딩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33. 물론 악당도 주인공을 죽이지 않는다. 죽도록 때린 다음 믿을 수 없을만치 허술한 함정에 내버려두고 죽으리라 기대하며 그 자리를 떠날 것이다. 주인공이 살아서 좋다고 돌아다니다 다시 악당을 만나면 사실은 널 살려준 건 내 거대한 계획의 일환이었어 운운하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가 이용당했다니 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34. 악당은 언제나 주인공보다 빠르다. 아무리 주인공이 빨리 던전을 달려지나가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언제나 악당이 미리 와서 보물을 가로채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주인공이 고생하며 때려잡은 수많은 잡몹들과 퍼즐들을 건너뛰고 지나온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는지는 알 게 뭔가.


 35. 전투에서 악당과 싸워서 이겼다고 해서 결코 이긴 게 아니다. 사실, 모든 악당은 아무리 주인공이 죽도록 때려도 전투가 끝난 후 연막탄 하나 터뜨리고 도망치거나 오히려 더 파워업해서 주인공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


 37. 분위기는 잔뜩 엔딩 직전인 척 하지만 누가 봐도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아직 두 번째 디스크는 넣지도 않았는데 누가 속을 줄 알고. 아무튼 그 엔딩인 척 하는 부분에서 악당을 때려잡으면 갑자기 더 사악한 진짜 악당이 나타나더니 자신이 더 사악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원래 악당을 한방에 죽일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원래 악당을 죽이지 못한다.


 39. 주인공의 당장의 목표가 예쁜 여자친구를 꼬시는 것이건, 빚을 갚거나 광대한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건 간에 어쨌건 그걸 위해선 주인공은 악당을 때려잡고 그가 세계 정복을 위해 꾸민 계획을 파멸시킬 필요가 있다. 주인공의 꿈은 언제 이뤄주냐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만 끝내고 나면 나머지 일은 알아서 해결되니까.


 40. 마을의 NPC가 지나가는 말로 고대의 5개의 유물이나 전설의 수정 조각 13개에 대한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고 하면 긴장하자. 어차피 게임 진행하면서 하나도 빠짐없이 다 찾아야 할 물건이다. 혹은 뭐 이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거나 무투대회가 있다거나 할 경우도 마찬가지. 다 참가해야만 한다.


 45. 언제나 세계지도는 직사각형으로 빠진 곳 하나 없이 표현할 수 있다. 가장자리에 바다가 있으니까 뭐 어렵진 않겠지.


 47. 주인공이 위기에 처해있고 무능하다면 정부나 교회, 기타 대규모 단체에게 결코 도와달라고 하지 말자. 보통 사악한 용병 떼거리가 몰려와서 가진 거 다 뺏고 집을 불태운 다음 주인공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린 뒤 비웃고 떠날 것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이 레벨 좀 올린 후에야 ‘동맹’이니 ‘조력’이니 하는 걸 구할 수 있다.


 49. 이 도시는 절대 안전해, 혹은 우리의 무슨무슨 방어부대는 무적이야 같은 대사를 말하는 NPC가 있는 도시는 반드시 악당측 군대가 방금 개발한 최첨단 신무기의 제1선 표적이 되어 즉각 멸망한다.


 50. 모든 책장엔 책이 한 권만 꽂혀 있다. 또한 그 책에 든 모든 텍스트는 한 화면에 표현할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을 그만 하고 책을 좀 읽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51. 고대문명은 항상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멸망한다.


 52. 공짜로 재워주겠다는 여관이 있다면 결코 공짜가 아니다. 아무리 플레이어가 원하지 않아도 강제로 ‘그럼 여기서 잘까’하는 대사 이후 강제 이벤트로서 주인공이 밤중에 깨어 한무더기의 암살자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 물론 운 좋으면 여주인공과 발코니에서 달을 올려다보며 시덥잖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55. 감옥에 갇힌 악당은 반드시 탈출한다. 물론 주인공도 반드시 탈출하니 다를 게 없다. 주인공이 스스로 문을 따거나 탈출할 능력이 안 된다면 아까 마을에서 만나서 귀엽다고 사과 하나를 쥐어준 꼬마애라던가 갑작스럽게 감옥 밖에 나타난 떼거리 몬스터들의 공격 등이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다.


 56. NPC가 독특하게 생겼다고 꼭 중요 인물이란 건 아니다.


 57. 모든 마을에는 각 종류의 상점이 하나씩만 있다. 게다가, 다른 화폐체계를 쓸 게 뻔할 다른 국가거나 고대로부터 수천 년간 고립되어 숨겨져 있던 마을이나 심지어는 언어가 통하지 않거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종족이 운영하는 상점조차도 주인공이 처음부터 쓰던 돈을 쓴다.


 59. 악당의 계획이 아주 유명해졌을 때조차 주인공 일행 이외에 세계를 구하려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려는 사람은 이미 주인공 일행에 있거나 유명하지만 사실은 겁쟁이이거나 악당인 기존의 영웅뿐이다.


 60. 못생긴 등장인물은 엄청난 악당이거나, 엄청난 성인이거나 둘 중 하나다. 한편 얼굴에 폼나는 흉터가 난 남자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흉터는 무진장 폼나는 건데 주인공보다 폼나는 조연은 존재할 수가 없지 않은가.


 61. 악당에게는 언제나 주인공을 매우 귀찮게 만들 무능한, 항상 두세 명 단위로 몰려다니는 부하들이 있다. 일 꾸며서 성공하는 경우는 결코 없으며 오직 가장 마지막에 나와서 악당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주려고 시도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성공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죽지도 않으며 좀 있다가 진짜 악당이 폼나게 등장하며 이전 악당을 죽여버렸을 때 이 부하들은 주인공이 설득해서 아군으로 만들 수 있다. 별 도움은 안 되지만 보통 게임을 진행시켜줄 정보 하나 정도 알려주거나 한다.


 62. 고대에 봉인된 사악한 악마는 항상 1천 년마다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부활하며 게임이 시작할 때는 마지막으로 봉인된지 정확히 999년 11개월 1일쯤 지났을 시점이다. 언제나 풀려나고 때려잡고가 반복될 바에야 뭐하러 봉인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주인공은 길고 지루한 마지막 전투에서 깨어난 악마를 완전히 박살내놓을 것이긴 하다. 후속작이 나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긴 하는데...


 63. 만약 악당이 머잖은 과거에도 누군가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 부활한 것이라면 그건 이미 죽고 없는 주인공 아빠가 한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주인공 일행에 별 의미 없이 끼어있던 할아버지 한 명이 갑자기 자신이 전설의 용사임을 밝힐 것이다.


 65. 모든 것은 날 수 있다. 지금 와 있는 고대의 신전이나 난파된 범선이 갑자기 덜덜 떨더니 화면이 어두워졌다고 해서 너무 놀라진 말자. 컷씬 좀 보고 나면 월드맵 돌아다닐 수 있는 탈것이 하나 추가되었을 것이다.


 66. 특이한 탈것은 딱 하나만 존재한다. 이를테면 유일하게 대양을 건널 수 있는 증기선이라던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대의 비공정이라던가.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신기하게도 바다 건너편엔 항구가 건설되어 있고 비공정 착륙장도 마을마다 마련되어 있으니까.


 67.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선 아무도 넘을 수 없는 험준한 산맥 한가운데 유일하게 위치한 좁은 길을 건너야 한다. 보통은 그 한가운데 대사관이나 궁전이 지어져 있어서 대륙간 여행을 하려면 계단을 올라가서 병영과 도서관과 왕좌를 지나 숨겨진 비밀 동굴로 들어가야지만 반대편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대륙간에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68. 플레이어가 컨트롤 할 수 없지만 타게 되는 탈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하거나, 불타거나, 철로에서 탈선하거나 괴물의 습격을 받을 것이다.


 71. 배를 타고 여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주인공이 그 배 안의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갑판으로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76. 침묵이니 즉사니 석화니 하는 멋진 이름의 스킬을 얻었다고 기뻐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잡몹들은 대충 때리면 죽고 보스들에겐 써봐야 Miss만 뜬다. 스킬 콤보가 뭐 몇백 가지 된다고 해 봐야 어차피 쓸만한 기술은 소환수 큰 거라던가 메테오라던가 몇 가지 안 된다. 다만 열 받는 건 적들이 주인공 일행에 쓰는 건 결코 빗나가지 않는다는 거다.


 79. 판타지 세계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포식자로는 거대 거미, 거대 전갈, 거대 독사, 거대 풍뎅이, 거대 늑대, 지상 오징어, 나는 물고기, 가고일, 골렘, 식인식물, 미노타우르스, 그리폰, 짜증나게 슬립스킬 쓰는 키메라, 짜증나게 마비스킬 쓰는 코카트리스, 짜증나게 석화스킬 쓰는 히드라, 뭔지는 몰라도 땅 파고 다니는 것들, 뭔지는 몰라도 촉수 잔뜩 달린 것들, 뭔지는 몰라도 슬라임처럼 물렁거리는 것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드래곤이 있다.


 81. 폭포 뒤에는 언제나 숨겨진 방이 있다.


 82. 던전에서 가까운 문과 먼 문이 하나씩 있다면, 바로 앞에 있는 문은 잠겨 있을 테고 수많은 몬스터와 미로를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맵 반대편 끝의 문은 안 잠겨 있으며 그 문의 열쇠가 들어 있을 것이다.


 83. 던전에서 다음 층으로 내려왔다는 증거는 벽 색깔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84. 모든 던전에 숨겨진 비밀 통로는 플레이어가 보는 시점에선 결코 보이지 않지만, 사실 게임상의 주인공이라면 어렵잖게 볼 수 있을 것이다.


 85. 던전의 퍼즐들은 다음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열쇠 찾기. 혹은 뭔가 수상쩍은 조각 찾아서 문의 수상쩍은 문양에 쑤셔넣기.

 * 상자 밀기. 혹은 석상 밀기. 아무튼 뭐든 밀어서 위치 맞추기.

 * 계단에서 죽도록 헤매기.

 * 엘리베이터나 시계 조작하기.

 * 죽 늘어선 문들은 순서대로 들어가기.

 * 레버나 스위치를 순서대로 올리기.

 * 기타 일본어 모르면 15달러 내고 공략집 사지 않고선 절대 풀 수 없는 말장난들.


 86. 던전의 보스를 잡았다는 걸 알려면 잡고 나서 동굴이 무너지는가 보면 된다. 뭐, 보통은 그 이전에 유용한 아이템을 드랍함으로서 그 가치를 증명하겠지만.


 87. 강력한 적을 힘겹게 잡으면 그 적을 힘겹게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법한 아이템을 얻는다. 그리고 나면 그보다 더 강력한 적이 등장하고 그 녀석을 힘겹게 잡아서 그 적을 힘겹게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법한 아이템을 얻...


 90. 목격자가 없어도 주인공이 한 일의 소문은 퍼진다.


 92. NPC가 주인공에게 선택을 요구한다면, 사실 그건 그냥 예의를 차리느라고 한 소리일 뿐이다. 잘못된 답을 고르면 정답 고를 때까지 무한 반복이니까.


 102.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옆을 지나는 NPC를 붙잡고 물어보자. 뭔가를 하라고 시키면 하면 되고, 뭔가를 하지 말라고 말려도 하면 된다.


 104. 어떤 시대 어떤 세계관이 배경이건 항상 돌아다니다 보면 일본풍 건물에 다들 하카마와 기모노 입고 다니는 동네가 나온다. 필드에서 항상 마주치는 닌자와 사무라이 잡몹들은 죄다 여기서 수출한 것이다.


 105. 사악한 제국의 병사들은 항상 무능하다. 하지만 어차피 그들에 맞서는 반군들도 열의는 불타지만 형편없이 약하기 때문에 대충 밸런스는 맞다. 만렙을 찍은 주인공 일행이 나타나기 전까진...


 106. 뻔히 보이는 함정은 오히려 진행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결코 피해갈 수 없다. 이를테면 악당의 최종 던전에 쳐들어가 수많은 괴물들을 다 살육하고 마지막 큰 방에 들어갔더니 악당이 폼잡고 서 있다고 치자. 말 걸기 싫어서 멀리서 활로 헤드샷 날린다던가 하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다. 주인공이 말 걸려고 다가가면 갑자기 방바닥이 열리면서 구덩이로 빠지고...


 111. 1만 년 전에 박살나서 조각조각으로 부서져 심해로 가라앉아 흙속에 파묻혀있던 고대 기계라 해도 부품 몇 개만 찾으면 아무 문제없이 작동시켜 써먹을 수 있다. 좋긴 한데 1만 년 전에 같이 가라앉았던 고대의 함정하고 수호자로 넣어둔 고대의 괴물도 똑같이 멀쩡하다는 건 단점이다.


 112. 한편 아득한 고대 기술제국의 문명을 다 잃어버리고 간신히 재건한 현대 과학 문명은 그닥 우수하지 못해서, 마동포가 거대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한 발만 더 쏘면 되는 상황에서 고장나거나 한다. 주인공 일행 출동해야지 뭐.


 113. 무슨 이유에서건 여장한 남자 주인공은 무조건 그럴듯하고 예쁘다. 한편 모종의 이유로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남장하고 돌아다니는 여자 주인공 또한 무조건 그럴듯하며 잘생겼다. 완벽한 커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4. 마을의 대부분은 보통 상점, 술집, 여관, 비밀통로, 뒷동산의 던전, 유명한 부자가 사는 호화 맨션 등으로 이뤄져 있다. 언제 가건 항상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방황하는 건 자기들이 살 집이 없어서인 것이다.


 115. 중요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하다면, 보통 몬스터가 드글대는 던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아이템 하나만 찾으면 자신이 평생을 바쳐 노력해온 꿈의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는 과학자가 등장할 것이다.


 117.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평화협정에선 항상 뒤통수를 맞을 것이며 말로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NPC는 악당의 배신에 비참하게 최후를 맞을 것이다. 주인공 일행 출동해야지 뭐.


 119. 이름이 있거나 좀 특이하게 차려입은 마을사람은 보통 곧 주인공 일행에 합류하거나, 사실 악당의 끄나풀이거나, 주인공하고 갑자기 말 몇 마디 나누고 친해진 뒤 악당에게 납치되어 끌려갈 것이다.


 123. 보통 주인공 일행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배운 사부들은 죽거나 사라졌거나 악당편이 된 후다. 아니라면 갑자기 게임 중에 나타나 대련을 요청하곤 ‘허허, 많이 컸구나!’ 멘트 하나 날린 뒤 여태껏 숨겨왔던 최종필살기 하나를 알려줄 것이다.


 126. 악당이 주인공 편을 누구든 조작할 능력을 갖게 된다면, 갑자기 손짓 하나로도 플레이어 일행을 전멸시킬 만큼의 괴력을 갖게 된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조종장치 몇 개 부수거나 막 때리면서 설득만 좀 하면 알아서 돌아온다.


 128. 옷을 갈아입는 캐릭터는 없다. 변장이 필요할 때거나, 공주일 경우를 제외하고. 심지어는 국왕을 알현하러 갈 때도 하수구에서 몬스터들과 굴렀던 옷을 그대로 입고 간다. 뭐 그 옷 만드는 데 들였을 정성 생각해보면 애착을 가질 법도 하다 싶지만.


 131. 보통 국왕의 조언가는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고 있는 최종 악당이거나, 국가를 너무 사랑하는 좋은 인물이다. 후자가 더 좋은 것 같지만 별 그렇지도 않은 게 좀 있으면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며 주인공을 되도 않은 죄명을 씌워 지하 감방에 집어던질 것이다. 전자라면 죽일 수라도 있지 후자라면 탈출해서 칼 들고 찾아가도 사과 한 번 하고 끝이다.


 133. 왕국은 좋은 거다. 제국은 사악한 거다.


 134. 지금 막 부활하려는 악마를 23세대 전에 죽도록 싸워서 봉인했던 주인공의 조상은 주인공하고 똑같이 생겼다.


 135. 주인공의 일행원 중 유용한 탱커나 힐러가 스토리상 죽어서 못 쓰게 되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음 마을에서 처음 보는 적절한 직업의 NPC가 난데없이 일행에 합류할 것이다.


 136. 주인공의 일행원이 아닌 모든 미소녀는 주인공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성격이 더럽거나 츤츤대거나 악당 편이라 해도 상관없다. 한편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지만 여전히 매력적일 경우는 무조건 음모를 꾸며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존재한다.


 140. 컷씬의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한손으로 보스급 몬스터를 때려잡는 강력한 NPC가 나오더라도, 주인공 일행에 합류한 뒤에도 동일한 활약을 하리라 기대하진 말자. 방금 죽도록 고생해 네 명이서 간신히 때려잡은 악당의 수하가 아군 편으로 들어온다 해도 마찬가지다.


 141. 수도에는 모든 장소에 경비병이 있다. 문 앞에도, 다리 위에도, 길거리 모퉁이마다. 하지만 암살자들이 칼 갈고 있는 중요 정치적 인물의 침실이라던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고대의 유물이 보관된 지하실에는 보통 한두 명 있을까 말까다.


 143. 절벽에서 떨어져선 거의 죽지 않는다. 사실 칼에 찔려서 절벽에서 내던져도 다 나아 흉터도 없이 살아돌아오는 걸 보면 치료의 효능도 있는 듯 하다.


 144. 금이나 은으로 뭔가를 만들면 철로 만든 것보다 훨씬 강력해진다.


 146. 힐러는 죽은 동료를 전투에서 되살릴 만큼 강력하지만 주인공이 중대한 부상을 입었을 때는 항상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148. 악당이 여주인공을 잡을 때는 항상 뒤에서 양손으로 여주인공의 양 팔을 잡아 무력화시킨다. 이때 여주인공의 클래스가 법사인지 전사인지 레벨이 얼마인지 방금 전까지 몬스터 한 무더기를 쓸어버렸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149. 남주인공에게 너 따위 필요 없다고 말하고 떠나는 여주인공은 어차피 남주인공이 구해줘야 할 상황에 처한다.


 150. 특정 인물이 맘에 들어서 레벨노가다 해서 만렙 채우고 장비 사주었더니 악당에게 잡혀가거나 배신하거나 갑자기 죽어버리는 일이 꼭 생긴다.


 154. 전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보통 초코보 레이스를 하면 상품으로 얻거나 한다. 모든 악의 원흉인 최종보스보다 강력한 몬스터는 어디 구석 동굴에 가면 튀어나와서 별 쓸모없는 잡템이나 준다.


 155. 1천 년 전에 악마를 등장했을 때는 전세계적인 연합군이 만들어져 거대한 악의 군대와 맞서 싸우고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왕들이 나서고 위대한 일곱 현자가 목숨을 바쳐 간신히 봉인했는데, 1천 년 후에는 어디 시골 마을 출신의 일행원 네 명이서 대충 때려잡는다. 악마도 나이가 들면 힘들긴 한가 보다.


 156. 악당이 마을 몇 개 불태우고 민간인 학살 좀 해도 잘생겼으면 주인공은 용서하고 절벽에 매달려있을 때 손을 내밀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악당이 그 손을 잡는다는 건 아니다.


 157. 겉보기에 이상적인 마을은 언제나 문제가 있다. 촌장이 뭔가 꾸미고 있다거나, 악당과 몰래 거래를 하고 있다거나...


 171. 만약 운석이 떨어지거나 거대 마법병기가 발동되어서 대도시가 박살나고 수만명이 죽고 폐허가 된 배경에 주인공 혼자 나온다고 해서 걱정하진 말자. 일행원 중 아무도 안 죽는 건 당연하고 좀 돌아다니다 보면 구석진 곳에서 나머지 일행원도 찾을 수 있다. 심지어 HP조차 깎이지 않았다.


 176. 악당이 주인공 여자친구를 인질로 삼고 뭔가를 달라고 할 경우, 주인공은 설령 그게 세계 멸망의 열쇠라고 해도 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악당이 여자친구를 돌려준다는 건 아니다.


 180. 주인공 일행이 간신히 장비 맞추고 편지 배달 같은 쓸모없는 퀘스트 해결하고 레벨 올려서 드디어 악당의 사악한 계획을 막을 수 있게 되었을 쯤에는 사실 하늘엔 온통 먹구름이고 악당의 군대가 사방을 뒤덮고 세계의 절반 정도는 이미 날아간 후일 것이다. 그래도 나머지 절반까지 날려먹을 수는 없잖은가.

 182. 보통 최종 보스전에 접근해 갈수록 이상한 이벤트나 대사가 튀어나오곤 한다. 마치 이 세계를 만든 창조신이 출시일자를 맞추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했던 것처럼...


 183. 전세계를 돌며 수많은 사람을 돕고 마왕도 때려잡을 만큼 장비와 레벨을 갖추고 악의 무리들을 수도 없이 무찌르고 마을 NPC들이 주인공이 말 걸 때마다 우와 영웅이다 하고 깜짝 놀라더라도 여전히 상점 주인들은 한 푼도 깎아주지 않는다. 하긴, 최종보스전이 이뤄질 마왕성 다리 바로 앞에서도 장사를 하는 양반들이니 뭘 신경쓰겠냐마는.


 187. 사람같이 생긴 최종보스는 죽이면 한 50미터쯤 되는 월등히 더 강력한 괴물로 부활해서 또 싸워야 한다. 사실 사람같이 생기지 않았더라도 변신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 녀석을 열심히 패면서 이젠 마지막이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배경음악을 들어보자. 합창과 파이프 오르간이 나오고 있지 않다면 그 녀석 잡아도 아마 날개 달린 거대한 괴물에 배경은 이상한 별들이 흘러다니는 공간으로 바뀌어서 또 한 번 더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