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사쿠나히메는 무신 타케리비노미코토와 풍양신 토요하나히메 사이의 여식으로 태어난 '꼭대기의 세상'의 신이다. 무신과 풍양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쿠나히메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의 일부를 주기적으로 주신 카무히츠키에게 봉물으로서 바치는 것만으로도 풍족한 생활과 안락한 지위를 언제까지고 보장받을 수가 있었다. '꼭대기의 세상'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기슭의 세상'에서 굶주림과 목숨을 겨누는 추격을 피해 흘러들어온 5명의 인간들을 취흥에 겨워 몸소 자신의 눈으로 구경을 나서기 전까지는.


평범한 인간들은 신들의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법, 가장 가까이에서 인간의 존재들을 확인한 사쿠나히메는 신으로서 이들을 강제로 돌려보내야할 의무가 있었으나 이들이 한도에 달은 굶주림으로 인하여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다는 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저 막연히 알아서 돌아갈 것이라는 오판을 벌여 제자리로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도읍에 인간의 침입을 허용하게 되어버린다. 사쿠나히메는 뒤늦게 이를 깨닫고 5명의 인간들을 급히 뒤쫓고 저지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마찰로 창고에 불씨가 점화, 크나큰 폭발로 이어져 주신 카무히츠키에게 바칠 봉물들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참사를 겪게 된다.


주신 카무히츠키는 이로 인하여 사쿠나히메에게 책임을 엄히 문책한다. 한편 5명의 인간들은 도로 돌려보내고 싶어도 '꼭대기의 세상'과 '기슭의 세상'을 연결하는 천부교가 사라져 언제 다시 나타날지 주신 카무히츠키조차 알 수가 없는 까닭에 사쿠나히메가 이 5명의 인간들을 이끌도록 하고 이번 사고에 대한 처벌과 오명을 씻을 기회로서 히노에 섬으로 사쿠나히메를 추방하는 한편, 히노에 섬에서 들끓는 오니들을 토벌할 것을 사쿠나히메에게 명한다. 이로서 히노에 섬에서 오니를 토벌하면서 벼 농사를 직접 짓게 된 사쿠나히메의 고난과 역경의 길은 뜻밖의 일로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과거 횡스크롤과 종스크롤을 넘나드는 구성 변경과 완성도 높은 3D 그래픽, 연출로 호평을 받은 에테르베이퍼, 아스테브리드의 제작 동인 써클인 에델바이스에서 만들어졌다. 


에델바이스는 얼마 되지 않는 작품들의 대부분이 현대에서는 메이저에서 도태된지 오래인 슈팅 장르 게임이었기에 천수의 사쿠나히메가 에델바이스의 작품이었다는 것은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되어 상당히 놀랐는데 자신들이 특정 장르에 가장 자신 있고 관록이 붙었을다 싶을때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것부터 상당한 모험심을 동반하는 일임에도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코미케 판매를 위한 동인 게임의 영역에서 벗어나 대기업의 투자를 받으면서 메이저의 영역으로 발을 처음으로 발걸음을 딛었다. 소규모 동인 써클으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진보와 결단인 것은 분명하다.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횡스크롤 액션에 벼 농사를 접목한, 수많은 횡스크롤 액션 변종 게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장르의 게임이다.


특히 벼 농사야말로 사쿠나히메의 알파이자 오메가요, 시작이자 끝이다. 모내기를 몇 간격을 두고 싶을 것인지, 논에 물을 어느 높이까지 줄 것인지, 볏단을 어디까지 말릴 것인지부터 시작하여 비료의 구성, 육모의 육성 방침, 중간낙수 유무, 모 육성 단계에 따른 물 높이의 변경 등 벼 농사에 상당히 심도 있고 구체적인 농사법을 구현해놓았다.


현재와 과거에도 농사를 짓는 컨셉의 게임들은 존재해왔지만 대다수는 타일에 씨앗 아이템을 심고 하루에 한번 물을 주고 다 자라기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쿠나히메에 이처럼 심도가 있는 농사는 정말 특별하다. 사쿠나히메의 벼 농사가 타 게임과 같이 고작 분재 키우기 시스템 정도에 그쳤다면 농촌진흥청 서버가 마비될 일 따윈 일어나지가 않았을 것이다.


특기할만한 점은 여기까지 벼 농사를 심도 있게 재현했음에도 제작진이 게임 플레이를 결코 잊지 않았다는 점으로,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타협할 부분은 타협하고 의도적으로 일부 현실성을 배제하여 플레이어가 한도 이상으로 불편한 부분을 잘라내어 적절히 고생한 만큼의 보람을 느끼게 시스템 내외적으로 밸런스를 조정하는데 성공하였다.


초반부에서는 히노에 섬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식량 사정이 빈곤하기에 그래서 벼 농사도 시작하는 스토리 흐름이어서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사실 벼 농사를 하지 않거나 망친다고 해서 사쿠나 일행이 굶어죽는 것은 아니다. 벼 농사는 기아를 벗어나기 위한 하드코어한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주인공 사쿠나히메의 능력치와 아이템을 위한 파밍이다.


농사의 결실은 풍양신의 혈통을 이어받기도 한 주인공 사쿠나히메의 힘의 원천으로 전환된다는 설정이기에 벼 농사의 진척도, 성과는 게임 상에서 곧 사쿠나의 능력치, 기술의 해금으로 이어진다. 또한 사쿠나히메는 하루마다 꾸릴 수 있는 식사로 반나절 동안 유지되는 버프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인데 이 식사에서 벼 농사로 얻은 쌀이 유용하다. 중반부부터 해금되는 도읍과의 거래로 식재아 재료들을 구매할 수가 있는데 여기서 수확한 쌀이 주요한 화폐로 작용한다.


사쿠나히메에서 벼 농사는 얼핏 들으면 복잡해보이지만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며 결과적으로 고생한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선사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기반이다. 여기서 쌀을 더 얼마나 수확할 수가 있을지, 쌀의 맛과 품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지 플레이어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제작진이 벼 농사 시스템을 어떻게 게임 플레이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닦아낸 노력을 엿볼 수가 있고 이 결과물에 극찬의 묘사를 정리해서 다 이뤄 말하기가 힘들다.


이처럼 완성도 있는 벼 농사에 가려지기 쉽지만 횡스크롤 액션도 사쿠나히메의 장점으로, 주인공 사쿠나히메가 부모로부터 무신의 혈통 또한 이어받았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인지 벼 농사 게임이란 것만 들으면 상상하기가 좀처럼 힘든 스타일리쉬하고 호쾌한 타격감이 일품. 직관적이면서 쉬운 조작설계로 이루어져있어 복잡한 커맨드 하나 없이도 콤보를 넣고 연구할 수가 있다. 여기에 날개옷이란 요소가 추가되어 회피와 기동을 구사하여 필드, 보스전에서 활로를 찾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횡스크롤 액션 파트는 벼 농사로 해금되는 기술들을 사용하는 곳이기에 그만큼 벼 농사가 얼마만큼 값졌는지를 체감할 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액션 파트는 아쉽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기술들은 생각보다 많지만 그 기술들을 제각각 다르게 적용해야할 게임 몬스터들의 종류가 빈말로라도 많다고 할 수가 없다. 대부분은 종류가 많지 않은 동일한 몬스터들을 맵마다 구성만 바꾸는 식으로 돌려서 땜빵하는 식이기 때문에 중반부만 지나면 갈수록 단조로워지기 쉽다.


또 사쿠나히메는 일종의 간이 메트로베니아 형식으로 맵의 갈래가 나뉘어져있고 어떤 맵은 미로처럼 꼬아놨는데 이 발상 자체는 나쁘지가 않다. 문제는 메트로베니아면서 미니 맵을 지원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맵에는 고유한 특수 아이템들과 숨겨진 장비가 존재하는데 그 얻지 못한 아이템들을 다시 얻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거기까지 가는 길을 정확히 일일히 기억해야하고 어떤 맵들은 미니 맵이 존재하지가 않으므로 가본 적이 없는 공간을 파악할 수가 없어 수 차례 영문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악마성드라큐라, 현 메트로베니아 게임들이 미니 맵의 파훼되지 않는 공간으로 이동하여 숨겨진 아이템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고 사쿠나히메와 비교하면 미니 맵을 지원하지 않은 것은 꽤 큰 실수다.


스토리에서도 살짝 아쉬운데 사쿠나히메를 제외한 5명의 인간 캐릭터들에게 몰입이 쉽지가 않고 자칫 같은 일행이라기보다는 사쿠나히메를 얽매는 짐덩어리들처럼 느껴지기 쉽상이라는 것도 문제다. 본래는 제작진의 의도상 철덕서니가 없이 자란 신인 사쿠나히메와 그에 반해 현실의 고난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들로 대비가 되야할 터인데 실상은 대부분 인간 캐릭터들이 멋대로 쳐들어와서 사고친걸 사쿠나히메가 혼자 덤터기 쓰고 개고생한다는 인식이다.


이는 벼 농사와 횡스크롤 액션에서 인간 캐릭터들이 채집과 제작을 제외하면 사쿠나의 노동과 전투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모습을 시스템적으로 볼 수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착안해야한다고 본다. 이같은 요소들로 인간 캐릭터들은 시작부터 플레이어가 몰입하기가 힘들게 선입견이 못박혀 그 인상이 엔딩까지 해소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제작진도 이를 인식하였는지 이들을 변호할만한 스토리 배경과 설정을 깔아놓은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인간 캐릭터들이 매력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풍부하다. 중도마다 볼 수 있는 이벤트들과 식사 대화는 캐릭터성이 십분 발휘되는 부분이다. 처음 첫인상으로 엔딩까지 내내 선입견으로 몰입하지 못했더라면 되려 아쉽지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사쿠나히메의 스토리는 부모의 유산으로 부족함 하나 없이 방탕하게 자란 사쿠나히메가 밑바닥에 추락하고 다시 일어나 스스로 벼를 일구어 싸우고 일행들과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되며 비로소 진정한 신으로서 성장하며 각성해나가는 것이다. 너무나 알기 쉬운 메시지다. 허나 그렇기에 간결하면서 호소성이 있지 않을까?


결론은 추천작! 필자는 총 플레이 타임 50시간이 소요되었는데 50시간 동안 이 게임을 구매한 것이 후회스러운 적이 없었다. 여름 세일 막바지에 천수의 사쿠나히메를 구매하기를 잘 했다.


부디 다른 사람들도 히노에 섬에서 이 추억을 안고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