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셧다운제 폐지됐다고 모두가 좋아하는 광경을 보았으나, 관련 기사들을 읽다 보니 굉장한 위화감이 들어서 다시한번 쭉 읽어보던 중에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필자의 글 실력이 부족하므로 적절히 엉망진창인 글 개요들과 마지막의 요약으로 마치겠다.


1. 여가부는 왜 그렇게 쉽게 셧다운제를 포기했는가?


10년동안 온갖 개소리를 하면서 셧다운제를 목숨걸고 지키려했던 여가부가 왜 갑자기 그렇게 쉽게 꼬리를 내렸을까? 드디어 여가부가 정신을 차린걸까? 아니다.


https://www.korea.kr/news/policyBriefingView.do?newsId=156467712


정부 브리핑 내용이다. 


" 게임제공시간 제한제도 중 강제적 셧다운제는 폐지하고 게임시간선택제로 제도를 일원화하고자 합니다. "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셧다운제는 폐지하기는 하겠지만, 게임 시간 제한제도는 게임시간 선택제라는 제도로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중간에 들어있다. 토픽만 보고 셧다운제 박살! 와우!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즉 여가부는 게임시간을 법적으로 강제하는것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여가부는 다음 패를 준비해둔 것이다.


셧다운제가 이미 너무 욕을 많이 먹고있어서 버림패로 쓰고, 게임시간 선택제를 다음 패로 선택했다고 봐도 좋다.


2. 셧다운제 MK II, 게임시간선택제


그래서 게임시간 선택제가 무엇이냐? 이 내용도 정부 브리핑을 보면 알 수 있다.


"게임산업법의 게임시간선택제는 청소년과 보호자가 원할 시 요청하는 시간대에 게임이용 제한시간을 정하는 제도입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이탤릭 볼드는 필자 강조)


게임시간 선택의 주체는 청소년도 될 수 있지만, 보호자가 원할때도 게임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것이 핵심이다. 청소년과 보호자가 둘다 게임시간 강제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누구의 입김대로 움직이겠는가?


애초에, 게임시간을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게끔 한다면, 그냥 이따위 제도 다 없애버리고 개인이 하게끔 내버려두면 된다.


잘 이해가 안된다면 야간자율학습 을 생각하면 된다. "자율"의 주체와 "강제"당하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다.


어쨌든 위 글만 읽으면 청소년도 선택 권한이 있으면 보호자가 아무리 시간 조져놔도 다시 고치면 되는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다.


https://www.mcst.go.kr/kor/s_policy/game/game01.jsp


문체부 게임과몰입 예방제도 홈페이지다. (셧다운제를 주구장창 주장하는건 여가부지만, 실제 수행 주체는 문체부기 때문에 문체부에서 관련안내를 하는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엄밀히말하면 월권인데 별로 태클거는 사람은 없는것같다.)


Q.7. 부모가 설정한 시간을 자녀가 변경할 수 있는지?


A. 게임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법정대리인 및 청소년 본인 양자에게 부여된 권리임

따라서 부모가 설정한 시간을 자녀가 변경할 수 없음. 

다만, 부모 및 청소년의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 이 제도의 취지가 청소년 보호에 있는 만큼 부모의 권리가 우선함


대놓고 부모가 설정한 시간을 자녀가 변경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정부(의 권한을 받은 여가부가 어차피 주체이므로 앞으로 나올 정부 라는 단어는 전부 여가부로 봐도 좋다)가 고정된 시간에 시행되던 셧다운제를, 보호자의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게임이용 제한시간을 정하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이다.


게임 시간 제한의 주체를 정부가 아니라 개별 보호자로 이관하고, 이에 맞춰서 게임사들이 해당 제도를 수행하게끔 제도를 고치겠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개인화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웃소싱이다.


발퀄 ㅈㅅ...


게임시간 선택제로 인해 게이머와 여가부의 싸움을 게이머와 개별 보호자의 싸움으로 바꾸어 책임 회피에도 성공하고, 그렇게 아이들을 통제하고싶어 안달난 학부모들도 진정시킬수 있게 되었다. 손 안대고 코푼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거다.


보호자가 청소년 게이머의 게임시간을 통제한다는 본래 취지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분명 이 제도 시행때도 잡음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때가 됐을때 과연 비난의 화살이 이 머저리같은 정책을 정한 정부에게로 항할까? 대부분은 통제하는, 혹은 통제당하는 개인에게로 화살이 돌아갈 것이고, 잘해봐야 게임탓하고 끝나버릴 것이다.(이것은 오히려 여가부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가부는 각종 비난과 책임까지 동시에 회피하면서, 기존의 스탠스는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 게임시간 선택제라는것은, 셧다운제가 폐지되면 실시되는가? 아니다. 게임시간 선택제는 이미 2011년에 제정된 셧다운제에 버금갈 만큼 오래된 제도이다. 셧다운제의 그늘에 가려서 아무도 신경 안썼던거지. 후술하겠지만 이 제도는 내용만 보면 셧다운제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도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밀고나갈 가능성이 높다.


3. 바뀐건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여가부는 손도 안대고 코푸는데 성공했다. 여전히 게임시간을 빌미로 학부모들은 청소년들을 통제할 수 있다.


그래도 여태까지는 정부가 정한 시간에만 셧다운이 내려졌기 때문에, 어쨌든 해가 떠있는 동안에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얼마든지 청소년들도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게임시간 선택제에는 명시적인 상한선 및 하한선이 없다. 실제로 제도 따라서 시간 설정을 해본적이 없어서 확실하진 않으나 정책설명 어디에도 최소한의 게임 플레이 시간을 보장해준다거나하는 내용따위는 없다. 즉 보호자가 원한다면 이론상으로 청소년의 게임을 원천적으로 금지(물론 온라인에 한해서지만)하는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게 가능한지는 나중에 자식 생기면 한번 테스트해보겠다.


게임시간 선택제를 보면 왜 여태 여가부가 셧다운제를 고집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아마도 셧다운제에서 꼬리를 내리면 패배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여태까지 이 악물고 버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청소년이 아닌 게임유저 입장에선 뭐가 바뀌었을까?


당연히 없다.


변하지 않는 것중에 아마 가장 크게 느껴질 부분은 실명인증일 것이다. 게임을 하려면 어쨌든 니가 성인인지 아닌지 구별이 돼야 셧다운제 MK II의 적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므로, 여전히 게임을 하려면 실명인증이 반드시 동반되어야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성인등급인 게임은 당연히 실명인증을 해야하고, 성인등급이 아닌 게임을 하려면 니가 성인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실명인증을 해야한다.



역대급 실명인증 연출 장면.

제도때문에 어쩔수 없다는건 아는데 이렇게 엿같이 넣어두는 것도 흔하지 않다.

사실 미호요는 정부를 디스하려고 이따위 방법으로 넣어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어쨌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장면을 보아야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실명인증을 진행하고 있다는것은 강한 정부의 통제성향과도 맞물려있다. 모두가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실명인증이 필요한 곳이고, 이는 국민을 사사건건 통제하고 싶어하는 정부가 매우 좋아하는 그림이다.


이해가 안간다면, 카페나 공원같은 연령제한을 넣을 필요가 없는 열린 공간까지도 제도때문에 실명인증을 해야한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지금이야 코시국때문에 어쩔수없이 출입체크등을 하고 있지만. 앞의 예시 공간들이 예전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지역이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아니었던 것이고, 앞으로도 아닐것이라는 거다.


결국 정부의 스탠스는 여전히 게임을 통제의 대상이자 통제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컴퓨터게임이 보편화된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꼰대 정부는 여전히 꼰대 정부고, 그들이 제도를 휘두르며 타인들을 통제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지는 않고 있다. 이건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 성향이 바뀌어도 똑같다. 대 선비 민족이 갈길은 앞으로도 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교묘하게 밑장을 빼면서 여전히 잘 해먹고 잘 살고있는 중이다.



이 엉망진창인 글을 읽기 귀찮은 분들을 위한 두줄요약


여가부는 셧다운제 폐지라고 해놓고 게임시간 선택제로 밑장빼고있음

여가부 폐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