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프 포트리스에는 유명한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

그것은 바로 고양이 집단 사망 사건에 대한 전설이다.


드워프를 조작해서 요새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게임에 난데없이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그 고양이들이 어느순간 단체로 떼죽음을 당하기까지 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고양이 기생충이 유행했던 걸까?



고양이를 잡아먹는 천적이라도 나타났던 걸까?



아니면 드워프들 질병 목록에 고양이 혐오증이 추가되었던 걸까?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면 이게 전설처럼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상은 훨씬 복잡하고도 기묘했기 때문에...

전설은 하나의 버그 리포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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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0009195 : 고양이가 아무 이유 없이 사망함 - 설마 알코올 중독이 원인인가?


USER : FORTUNADRAKEN



"최근 내 요새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진짜 아무 이유도 없이 죽어버렸음. 전투 관련 기록도 없는데 말이지.


게다가 둘 다 토사물에 뒤덮인 상태였어. 포럼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요즘 비슷한 문제를 겪는 거 같은데,



혹시 이거 알코올 중독이 원인일까?



하지만 고양이는 술 안 마시잖아. 이런 일이 왜 자꾸 생기는지 알 수가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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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이 떼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의 버그 리포트.

그런데 동시다발적으로 세상을 등지는 고양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죽기 직전의 마지막 모습이 온 몸이 토사물에 뒤덮인 상태였다는 것.


그리고 예리한 플레이어들은 이것으로 보아 해당 죽음이 알코올 중독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면 드워프 포트리스의 고양이들은 술을 안 마시려 한다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지도 않고 마셔서도 안되는 고양이들이 알코올 중독에 걸려서 죽어나간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 괴상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선 눈꺼풀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낼 필요가 있다.



그렇다.



눈꺼풀 말이다.

드워프 포트리스는 정말 지나치다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구현된 게임이고

이곳의 드워프들은 작업 중에, 전투 중에, 별 괴상한 짓을 벌이는 중에 당연하리만치 오염을 당하곤 한다.


오염의 원인도 다양하지만 아마 대부분은 물이나 진흙 같은 것들일 테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전투 중에 흩뿌려진 피일 것이다.


그니까... 고블린 대갈통을 도끼로 쪼갠 드워프 병사가 피칠갑인 채로 돌아다니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 나오지 않겠는가?

여기까지만 보면 아주 좋은 시스템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흩뿌려진 피들이 눈알까지 침범하는 경우가 잦았다는 것이다.

전투 중에 눈 속으로 피가 들어가면 상식적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칼부림 내는 일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비누를 사용한 목욕으로 오염을 지워버리는 기능은 이미 있었지만,

한참 싸우는 와중에 비누로 눈알을 씼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개발팀은 시스템 하나를 더 추가했는데 그게 바로

눈꺼풀이었다.



손, 발, 팔, 다리, 몸통, 머리, 눈알, 기타 등등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턴 눈꺼풀 또한 신체의 일부로서 구현된 것이었다.


그리고 눈꺼풀은 스스로 작동하여 (깜빡여서) 눈알의 오염을 지우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개발팀은 드워프들에게 눈꺼풀을 추가해준 것에 그치지 않고

눈꺼풀이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눈꺼풀과 눈알 오염 제거 기능을 추가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꺼풀 추가는 여러 생명체를 거쳐 마침내 고양이에게까지 오게 되는데

여기서 변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개발자가 고양이를 아주 사모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개발자는 눈꺼풀의 오염 제거 기능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은 기능을 고양이에게 추가한다.

다름 아닌 그루밍 기능을 말이다.

고양이 애호가인 그는 고양이들이 이 짓거리를 하루종일 하는 걸 꾸준히 지켜봐왔고

오염 제거 기능을 넣는 겸 해서 기어코 이걸 게임에 집어넣고야 만 것이었다.


"질량 보존 법칙을 따르는 게 항상 가능한 건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따르려고 시도는 해보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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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다...

고양이가 혓바닥으로 핥아서 처리한 이 오염 물질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생각해보자, 어디로 사라질까?

뱃속으로 사라진다.


고양이 집단 사망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고양이들은 정확히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사망했다.




1.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드워프가 명령을 받아 급하게 자리를 뜨는 경우,

들고 있던 술잔을 대충 바닥에 던져버리고 가버린다.

2. 술집 주인은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술잔을 회수하지만 바닥에 엎질러진 술에 대해선 딱히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왜냐면... 글쎄... 드워프니까?

3. 앗! 술집에 고양이가 들어왔다!

고양이는 하늘에서 자신의 별이 지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로 엎질러진 술 위를 당당히 지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그루밍을 시작한다.

4. 그리고 여기서 "버그"가 발생한다.  <---- 이 부분 만큼은 버그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드워프 포트리스는 액체 물질의 최소 부피를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존재한다.

아무리 미량의 액체라도 게임 시스템상 어떤 최소 부피 단위 이하로는 값이 절대로 내려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의 몸에 묻은 술의 부피는 (보다 적은 양을 가져야 이치에 맞겠지만) 무조건 1 최소 단위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건... 고양이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값이다.

고양이는 그루밍을 해서 술에 의한 오염을 처리할 때마다 이 1 단위 만큼의 술을 꾸준히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5. 웃기는 건 다른 부분들은 또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드워프 포트리스는 음주한 개체의 몸무게와 뱃속으로 들어간 술의 양을 비교하여 혈중 알코올 농도를 계산해낸다.

그리고 얼떨결에 1 단위 만큼의 술을 들이마신 초경량 고양이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요새의 지붕을 뚫고 하늘 너머로 날아가버린다.

고양이들은 짧은 순간 내에 알코올이 생물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나쁜 점만을

모조리 경험하고 무지개 다리 저 너머로 사출되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구토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으로 "토사물에 범벅인 고양이 시체"가 보였던 것.

이것이 고양이 집단 사망 사건의 전말이다.

이 기묘한 사건은 버그가 난 부분의 수치를 적당히 고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너무 유명하고 전설적인 사건이라서 게임 잡지 사이트에 기사까지 올라올 정도였고

가장 압권인 점은 고양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음주하고 파멸을 맞이하는 일이 사라졌을 뿐이지,

그루밍 하다가 술 들이키는 일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출처:[로그라이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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