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채널

실상 문이과 차이를 수학으로 한정하면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이과가 미적분II도 배우고 기하와벡터도 배우는데 왜 차이가 크지 않냐고? 미적분II 과목은 이전 세대에서는 문과도 배웠던 내용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17학번인데 16학번 선배에게 미적분II를 물어보면 곧잘 대답해준다. 반대로 17학번인 나는 16학번 선배에게 그 선배가 배우지 않았던 부분을 가르쳐줄 수 있고. 우리가 서로가 배우지 않은 부분을 배운다고 했을 때 과연 못 배울까? 충분히 배우고도 남는다. 기하와벡터는 기하는 잘 모르겠는데 선형대수학에서 벡터 부분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선형대수학 지식은 사회과학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배워야 하는 내용들이고. 선형대수학을 못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그래봤자 학부 2학년 과목일 뿐인데. 나도 공부를 더 잘 하기 위해 선형대수학을 배우는 입장인데 말이다.


탐구 과목을 살펴보자. 사탐이 과탐보다 난이도가 낮다고 한다. 사실 내가 문과를 온 간접적인 이유 중 하나도 과탐 과목에 신물이 나서였다. 지금도 나한테 물리나 생물에 대해 물어보면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 한다. 근데 그 이유는 과탐은 과학이고 사탐은 찌그레기 박물학이여서가 아니다. 솔직히 고등학생들 태반이, 아니 일부 학부생 이공학도들 조차도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문과인 나보다도 이해하고 있지 못 한 경우가 많다. 간단히 이야기해 직관성이다. 솔직히 예를 들어 세계지리 과목은 우리가 이게 뭘 의미하고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고 있기때문에, 즉 우리 삶에서 얻는 직관성에서 도출해낼 수 있게 하는 방법론이 뻔해보이기 때문에 쉬워 보인다. 제 아무리 어렵다는 경제라도 마찬가지. 반면 이과 과목들은 실생활에서 도출할 수 없다. 물리 법칙을 혹은 예를 들어 광합성을 어떻게 아냐, 그냥 닥치고 외우는 거지.


사실 고등학생 수준에서 내가 더 대단하니 어쩌니 하는 것도 웃기는 거다. 중학교때 공부 잘 한다고 뻐기고 실제로도 그랬던 어떤 애는 자기는 이과에 들어갈 거라고 하면서 문과를 대놓고 무시하곤 했다. 이과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두고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적어도 고교 과정 2회독 정도는 해야지 들어갈 수 있다고. 돌이켜보니 걔가 어디까지 배웠을까? 딱 로그 연산 할 줄 아는 정도였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학원 선생도 이과 들어가려면 지금보다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지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솔직히 생각해보자. 수능 문제는 고교 3년 열심히 배우면 풀 수 있게 출제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과 과외를 병행해야지만 겨우 따라갈 수 있는 교육 과정이 고등학교에 존재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물론 해석학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수학도들도 어렵다고 하는데. 그런데 나는 언젠가 한 번 미적분학을 수강신청을 해본 적이 있다. 처음에 배울 때는 정말 하나도 이해가 안 되더라. 엡실론-델타를 가르치는 중이었는데 대체 저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저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고 잔뜩 겁에 질려 나왔다. 교수가 '문과 공부 하는 식으로 하면 안 돼~' 라고 핀잔을 주더라. 화가 나서 스튜어트 미적분학 교과서를 미리 예습을 하고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결과가 어땠을까? 하나도 남김 없이 이해했다. 그 교수는 정말 쉬운 내용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좋은 사람일 뿐이었다. 문제는 학생들에게 겁을 준다는 거였지. 결국 겁의 문제였던 거다. 예습을 하던 복습을 하던 겁을 한 번 걷고 시작하면 문제를 더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사회학과니까 사회학과 기준으로 이야기하겠다. 자연과학의 특성은 실험을 통해 재현성을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거꾸로 이야기해서, 이과들 중에 회귀분석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과 사람들이 문과 과목 조금만 공부하면 곧잘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철학을 예를 들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객관적인 정의를 논하는 자유주의만 알지, 정의를 의심하는 구조주의 아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요컨대 문과 과목들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고 풍부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거다. 모든 학문에 우열은 없다. 어떤 학문이든 각자의 어려움이 존재하고 각자의 가치가 존재한다.


원래는 일부 이공계 우월론자들의 '이과는 생산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고 문과는 어줍잖은 유한활동이다'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귀찮으니 다음 기회에...


※ 주의를 하며 쓰려고 했는데, 이공계에 대한 비하처럼 보였으면 미안할 따름이다. 나는 모든 학문에 우열이 없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