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전세계에서 중요한 첫 민주주의 시험대 될 것.”

13일 대만이 민주화 이후 8번째 총통 선거를 맞습니다. 중국 시진핑 3기 대만 침공 단행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번 선거에는 어느때보다 전세계 이목이 집중돼 있습니다.

특히 양안 전쟁은 한국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최근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양안 전쟁 발발 시 한국이 GDP가 20%넘게 감소하면서 대만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경제 피해 규모가 큰 나라가 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양안관계에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될 대만의 최대 정치 이벤트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한국에서도 특히 눈여겨 볼만한 대목 몇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4년전 보다 덜한 ‘반중·친중’ 대립구도...“샤이층이 관건”

이번 대만선거를 두고 미국과 중국은 어느때보다 첨예한 신경전을 벌여 왔습니다.

이에 따라 해외 유력 언론들을 중심으로 이번 선거를 ‘미중 대리전’ 성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어느때보다 강하지만, 이는 현상의 일부일 뿐 전체라고 볼 순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4년 전 홍콩 민주화 사태 직후 선거를 치렀을 당시 만큼 현재 대만인들의 표심은 반중·친중으로 뚜렷히 갈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국 전문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김진호 교수는 매일경제에 “대만인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에 대해 말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샤이 국민당’ 과 ‘샤이 민진당’이 결과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만 정부는 지난 3일 이후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한 상태인데, 직전까지의 모든 조사에서는 민진당 라이칭더-샤오메이친 후보가 국민당 허우유이-자오샤오캉 후보에 근소하게 앞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3% 포인트 오차범위내 접전으로 계속 나타났고 국민당이 막판 뒤집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누구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김교수는 “제 3당인 민중당의 표가 어디로 기우는지, 청년층과 무당층의 표가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짚었습니다. 대만연합보도 “유례 없을 만큼 치열한 선거전으로 마지막까지 향방을 알 수 없다”며 “여론조사에서 침묵했던 중도층의 선택에 달렸다”고 내다봤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는 지난 9일 “당선된다면 연립정부를 구성해 함께 통치할 것” 이라며 민중당 커윈저 후보에게 야당끼리의 연합을 끈질기게 제안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입법위원선거도 실시...행정·입법 지배권 엇갈릴 가능성 커

대만선거는 총통선거와 한국 총선에 해당하는 입법원(의회)선거가 동시에 실시됩니다. 대만의회는 행정부와 똑같이 임기 4년에 정족수 113명의 일원제 입니다. 선거날 결과가 향후 4년간의 대만 정국을 완전히 좌우한다고 볼 수 있죠. 선거 두개가 동시에 치러지다보니 상호 영향도 밀접합니다. 총통선거와 함께 입법위원선거 결과도 눈여겨봐야하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입법원에서 여당인 민진당이 113석 중 61석(제1야당 국민당은 38석)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며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진당이 고전하고 있어 61석 보다 줄어들 것이란 건 기정사실이며, 국민당 보다 적은 의석수를 확보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행정부와 입법부 지배세력은 엇갈리게 되고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등 정권 운영에 지장이 발생할 것이란건 쉽게 예측됩니다. 블룸버그도 “미국에 우호적인 민진당이 총통 선거에서 이기고 의회에서는 통제력을 잃으면 4년간 주요 이슈를 놓고 힘겨운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내달 1일 소집되는 11대 입법원 인사문제도 관심사 입니다. 새로 선출된 입법위원들은 이날 투표를 통해 입법부 수장인 입법원장과 부원장을 결정하는데, 행정부와 입법부 지배세력이 다를 경우 그 결과를 둘러싼 잡음도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총통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입법위원 과반 확보에 실패하게 되면 제 3당과의 협력이 주요 과제로 떠오를 것입니다. 현재 민중당 커원저 후보가 국민당과의 단일화에 실패했는데도 마지막까지 완주하려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지적됩니다. 김진호 교수는 “적어도 총통 선거와 입법위원 선거에 최선을 다해 적절한 정부지원금을 받고 향후 국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커원저 후보의 목적” 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 관심도’ 반영하는 투표율은 어떻게 될까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들의 정치 관심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는 투표율 입니다. 지난 1996년 총통 직선제 도입 이후 대만 총통선거에서 투표율은 66%~83%(한국은 63%~89%)를 기록해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여왔습니다.

2016년 66%로 곤두박질 쳤던 총통선거 투표율은 ‘홍콩 민주화 사태’ 여파로 2020년에는 75%로 급등했습니다.

당시 대만인들은 홍콩 반환 후 ‘국가안전유지법’을 내세운 중국이 일국양제 약속을 어기고 홍콩시민들의 자유를 어떻게 탄압하는지 분명히 목도했습니다. 홍콩에서 양안 통일의 미래를 보게 된 대만 시민들의 위기감은 고조됐고 이는 곧 투표율 상승으로 연결됐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이 어떻게 나올지 예단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고 어느때 보다 불안정해진 대만 주변 정세로 고조된 불안 심리가 지난 총통선거 이상으로 많은 대만 시민들을 투표장으로 향하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中 선거개입 어느때보다 심각”...AI 통한 가짜뉴스 확산

친미·독립성향 민진당은 재집권시 독립노선을 더 뚜렷히 가져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만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대만을 자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중국은 당연히 민진당의 패배를 원합니다. 이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중국의 개입활동은 여느때보다 노골적이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난 5일 대만 우자오셰 외교부장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고문에서 “개입에 대응 조치를 하고 있고 그 경험을 문서화하고 있다. 선거가 끝난 직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도 9일 해외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선거 개입이 어느때 보다 심하다”며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할 대목은 SNS 등을 통한 가짜뉴스와 디지털 여론공작 입니다. 대만국가안전국에 따르면 지난 한해 총통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짜뉴스가 700건 넘게 적발됐습니다. 대만국가안전국(TFC)은 지난해 5월 기준 대만시민 80% 이상이 가짜뉴스를 접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밝혔는데, 선거가 임박한 지금은 이보다 훨씬 늘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건 생성형 AI의 등장과 이를 통해 생산한 것으로 보이는 가짜뉴스의 확산입니다. “라이칭더가 예전에 정치 스파이였다” “선거 결과가 컴퓨터로 여당에 유리하게 조작된다”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는 미국 이중국적”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라이칭더 후보가 “야당 이야말로 여론의 주류” 라고 말하는 영상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AI를 활용한 딥페이크였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대만 당국이 24시간 감시체제를 가동하고 있다지만, 넘쳐나는 모든 허위정보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또한 가짜뉴스를 통한 디지털 공작은 선거일이 임박할 수록 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국과 시민사회가 조사후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AFP통신에 따르면 전문가들과 대만 관리들은 이 같은 가짜 뉴스들이 중국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만 국방부 산하 국방안전연구원 소속 왕잔시 연구원은 “중국이 유튜브, 페이스북, 틱톡 등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대량 퍼뜨리고 있다”며 “대만 사회는 여론 공작의 중요한 실험무대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물론 중국측은 연계 의혹에 대해 루머이며 과장됐다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선거 직후 및 새 총통 취임 연설, 그리고 중국의 반응에 주목해야

어느쪽이 이기든 선거직후 중국은 성명을 통해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을 겁니다. 이 성명과 함께 5월 20일 열리는 신임 총통 취임식을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의 성명과 새 총통의 취임 연설은 향후 대만해협의 향방을 가늠하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새 총통이 대만을 어떤 단어로 정의할 것인가,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미국과의 연계 및 국제사회의 관여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중요합니다.

지난 2020년 5월 취임사때 차이잉원 총통은 4년전 취임식때는 쓰지 않았던 “중화민국 대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중국을 자극했습니다. 이번에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될 경우 차이총통의 노선을 계승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경우 중국은 분명 민진당에 대한 비판과 압력을 강화할 것이고, 대만해협의 긴장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가 승리해 중국에 유화적인 제스처와 함께 독립노선에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만해협 긴장도는 단기적으로는 분명 낮아질 겁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허우유이 후보가 대만의 주권을 강조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나선다면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국민당에 실망한 시진핑 주석이 이제 대만과의 대화는 완전히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하고 기존의 양안 통일 접근법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습니다.

이때 대만해협 긴장도는 그 어느때보다 커질 겁니다. 이번 대만선거는 누가 이기든 결국 동아시아 지역에서 격량의 2024년을 알리는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https://m.mk.co.kr/news/world/10919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