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명 중 유니코드에 없는 한자 (2) 를 먼저 읽고 오면 좋음.


윗 글을 쓰면서 라는 한자가 (아마도 '이구리'의 표기를 위해 창작되고) 사용된 이유가 궁금했던 데다가,

마침 유래(?)를 궁금해하는 댓글도 있었어서 개인적 추측을 적어보려 함.


▷도지챈러의 의견 제기일 뿐, 믿거나 말거나 수준.

반론, 지적, 질문, 보충의견 등등은 항상 환영함.(다만 확인이 빠르지는 않음)

▷읽기 귀찮으면 마지막 '세줄요약' 또는 '요점'을 참조.


우선 추가적 정보를 먼저 아래에 제시함.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금천군 읍·면 부분 서천면 아래 이구(0x9745邱) 부분도 로 추정됨.


 2) 조선향토대백과; '구룡천의 지류인 시변천가에 배를 매두던 언덕이 있다 하여 이구리라 하였다.'


 3) 2차 1:50000 지형도(明治44 측도, 大正2 제판)의 표기. イグンニー의 ン은 실수인듯.


 4) 를 ⿰舟禺로 착각한 것으로 추정되는 표기(1945?; Courtesy of the University of Texas Libraries,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5) 이전 글에 달린 180.71님의 댓글; '호구총수까지 거슬러 가도 梨丘'




[가설 1] 조선향토대백과의 서술을 받아들이면,

'이구리는 원래 배ship와 연관되어 邱里로 표기하였으나, (아마도) 배pear와의 혼동으로 인하여 梨邱里라는 표기가 출현하였다'는 가정이 가능함.


▣어쨌건 조선향토대백과라는 문헌 근거가 존재한다는 이점은 있지만, 더 이른 시기부터 가 사용되었음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고, 추가적으로 의 자원(字源) 설명이 필요하다는 한계점이 있음.

물론 자원은 배[舟]가 떠나는[離] 곳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배를 매두던'이라는 조선향토대백과의 서술은 '떠나가는' 움직임보다는 '다다라 머무는' 움직임에 가까울 것이며,  津, 浦 등의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한자를 만들 필요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가능해 보임.



개인적으로 지지[가설 2] 위와 달리 이구리가 원래 梨邱里였다면,

'관보 작성 과정(?)에서 산배ヤマナシ와 배ship의 혼동으로 인하여, 산배 리[樆]의 木변이 舟변으로 교체되어 가 형성되었다'는 가정이 가능함.

 

▣부군면 통폐합 즈음 梨가 로 교체되는 현상에는 부합하지만,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 한자'에 가까운 樆의 활용을 전제하여야 하는 점, ship⇒배pear⇒梨의 [가설 1]에 비하여 더욱 발생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는 혼동의 방향, 그러한 혼동이 일본어 梨/樆[なし]~舟/船[ふね]가 아닌 한국어 梨/樆[배]~舟/船[배]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점 등은 지적할만 함.


[가설 3] '배가 모래에 걸려 움직이지 못함' 정도의 뜻을 가진 한자 艐(음은 '종') 또한 기록은 해 두겠음.

그러나 굳이 '배를 매두던'의 의미까지 살렸을 것 같지도 않고, '리'라는 음에 이끌려 한자를 착각했다는 것도 그리 설득력있는 의견은 아닐듯.



[잡담1] 산배[山梨;やまなし]는 가타카나 'ヤマナシ'로 써서 山梨県과 구별한다는 듯.


[잡담2] 아래 사진의 지명 ○흥리[○興里]에서 ○은? 

좌: 『신구대조』(1917, 월지유칠): 1029
우: 大正5/6/20 총독부관보(함경남도고시 제27호)




답: 함경남도 단천군 수하면 은흥리(殷興里). 1:50000 지형도 등에는 정상적으로 殷으로 등장함.

⿰舁𠬝 정도로 보이는데 𣪞와 그나마 유사한듯.




[3줄 요약]

이구리(梨邱里/邱里)에 있어,

가설 A. 냇가의 배ship[舟]와 관련해 가 형성되었고, 이후 배pear[梨]와의 혼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가설 B. 배pear[梨]→산배ヤマナシ[樆]로부터, 배ship와의 혼동으로 인해 樆의 木이 舟로 교체되었을 것이다.




[요점]

梨=배()배()= 왼쪽 舟


둘 다 '배'라서 헷갈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