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영화 ‘자유결혼’의 한 장면. 

남자가 일요일에 뚝섬으로 데이트를 가자고 꼬시는 장면. 





뚝섬은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서울시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근교 나들이 지역이었음. 


뚝섬 나루터는 조선시대부터 사대문안과 강남을 잇던 주요 나루로, 궁중여인들이 봉은사에 갈 때도 자주 쓰였다고 함. 

1970년 영동대교가 건설되기 이전까지도 뚝섬의 특산물이었던 채소를 한강 이남에 팔기 위해 자주 쓰임. 


1940년에는 무너진 둑 대신 제대로 된 유원지를 건설하였고 그것이 뚝섬유원지임. 






뚝섬이 유원지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경성궤도’라는 전차 덕분이었음


1930년대에 개통하여 1966년 폐선되기 전까지 

동대문에서 왕십리를 거쳐 뚝섬유원지로 가는 철도였음. 


평소에는 뚝섬의 야채를 서울에 팔려는 상인들이

주말에는 서울의 여행객들로 매우 붐볐던 열차임. 


1937년에는 이 노선을 봉은사-남한산성-광주-이천으로 연장하는 계획이 발표되었음. 

경기도의 명승지인 봉은사와 남한산성에 유원지를 조성하여 관광 특수를 노리려는 계획이었다고 함. 





1966년 열차가 폐선되고, 정부의 산업화 개발에 따라 성수동은 당시 구로와 함께 공업지역으로 개발됨. 


1970년대부터 공단이 조성되고 거주민이 몰려들면서 야채를 재배하고 유원지가 있던 옛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음. 





80년대에는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라 뚝섬유원지에 뚝섬한강공원을 조성함. 





그리고 뚝섬은 성수동이라는 이름으로 뚝섬한강공원과 함께 서울시민들의 나들이장소 겸 핫플로 자리잡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