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네이션 혁명 (OTL과 동일)

1974년 4월 25일, MFA가 주도한 카네이션 혁명으로 포르투갈의 군사독재는 종식되었음

이후 MFA는 구국군사정부를 구성하고 안토니우 드스피놀라 장군을 대통령으로 세움

스피놀라는 이 '혁명'을 체제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닌, 단지 군부 내부에서 부패한 세력을 제거하는 정권 교체 정도로 여겼고, 카에타누가 제거된 뒤 자신이 포르투갈의 새 군사독재자가 되려는 야망이 있었음

그러나 과거 독재정권의 상징과도 같았던 비밀경찰과 공화국 수비대 등의 친위군이 사라지면서, 스피놀라의 바람과는 달리 포르투갈에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사실은 보다 분명해졌음

그동안 지하에서 활동해왔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은 이제 양지로 나와 본격적으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사회당의 지도자 마리우 소아르스와 공산당의 지도자 알바루 쿠냘은 망명 생활을 끝내고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왔음

초창기에는 온건파 민주주의자였던 아델리누 다팔마 카를루스가 총리로 임명되는 등 포르투갈의 새 정부는 딱히 좌익적인 색채를 크게 보이지 않았음


2. 내부 갈등 (OTL과 동일)

그러나 이후 구국군사정부의 주요 정책 집행에서 MFA는 스피놀라 대통령의 입장을 기각하는 등 점차 MFA와 스피놀라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MFA는 구국군사정부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음

MFA는 강경 사회주의자였던 오텔루 사라이바 드카르발류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COPCON을 구성했음

5,000명의 정예 병력으로 구성된 COPCON은 급진 좌파 장교들의 통제를 받으며 포르투갈의 사회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치안 기관으로 성장했음

1974년 7월, 스피놀라는 좌파에 맞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역시나 온건파였던 바스쿠 곤살베스 장군을 총리로 임명했으나, 이후 곤살베스는 점차 사회주의자로 기울게 되었음

스피놀라의 입장은 계속해서 약화되었고, 결국 1974년 9월 전권을 장악하기 위한 스피놀라의 시도가 COPCON에 의해 저지되면서 그는 대통령직을 사임했음

MFA에 의해 새 대통령으로 추대된 프란시스코 다코스타 고메스 장군은 공산당원들을 내각에 배치했고, 포르투갈의 정치는 꾸준히 좌경화되었음

1975년 3월, 정권을 탈환하기 위한 스피놀라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하면서, 이제 포르투갈은 명백히 사회주의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음


3. 사회 혼란과 공산화 (여기서부터 OTL과 달라짐)

1975년 3월 14일, MFA는 우파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구국군사정부를 폐지하고 더 급진적인 혁명평의회를 수립했음

고메스 대통령과 곤살베스 총리가 이끄는 새 정부는 이제 포르투갈의 주요 은행과 대기업을 국유화하기 시작했고, 곧 정부는 포르투갈 경제의 70%를 소유하게 되었음

OTL에서는 이러한 포르투갈 정치의 좌경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4월 25일 실시된 총선에서 포르투갈 공산당은 12.5%의 득표율을 받으며 3위에 그쳤지만, 여기서는 공산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게 됨

공산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OTL보다 훨씬 더한 사회 혼란이 찾아왔고, 이른바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게 됨

농촌에서는 반혁명 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났고, 사회당과 사회민주당은 MFA와 혁명평의회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음

그러나 공산당의 지지율은 굳건했고, 포르투갈 인민들은 점차 온건파에게 등을 돌림

고메스 대통령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내각 인사가 공산당원들로 채워지는 가운데, 1975년 9월 사회주의 개헌안이 통과되고 '포르투갈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었음

이제 포르투갈의 공산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으며, COPCON의 사령관인 카르발류는 곤살베스 총리와 함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됨

1975년 10월 포르투갈은 NATO에서 탈퇴했고, 이에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만나 포르투갈 침공을 논의했음


4. 스페인과의 전쟁

그러던 도중 1975년 11월 25일, 사회당 지도자 마리우 소아르스가 사회민주당 및 우파 세력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켰음

그러자 미국은 과거 1961년 쿠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포르투갈 내의 반공 세력을 지원하여 포르투갈을 침공할 계획을 세움

비록 사회당의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키신저 국무장관은 미국으로 망명한 소아르스와 만나 현재 포르투갈 사회당이 과거 러시아 혁명 당시 케렌스키 정권과 매우 유사하다는 대화를 주고받음

1975년 12월, 미국의 사주를 받은 반공 세력이 포르투갈 해안가에 상륙했고, 곧바로 스페인군이 포르투갈 국경지대를 기습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음

OTL에서는 1975년 11월 20일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한 이후 후안 카를로스 1세에 의해 민주화 개혁이 실시되지만, 여기서는 포르투갈의 공산화에 위기감을 느낀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우파를 지원하면서 프랑코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스페인이 권위주의 국가로 남게 되었음

전쟁 초반에는 포르투갈이 속수무책으로 패배했음

그러나 리스본 전투에서 포르투갈이 기적적으로 스페인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함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 직후에, 그것도 과거 추축국과 친하게 지내 마셜 계획에서도 배제되었던 스페인과 손을 잡고 유럽 국가를 침공했다는 사실은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음

특히나 영국과 한창 대구 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인 아이슬란드는 "영국 문제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급급해 소극적인 중재만 나선 미국이 이제는 파시스트와 손잡고 포르투갈을 침략하고 있다"며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음

결국 1976년 1월 13일 아이슬란드가 NATO 탈퇴를 시사하자, 포르투갈에 이어 아이슬란드까지 잃을 순 없던 미국은 그제서야 적극적인 중재를 시도함

그러나 OTL과는 달리 이미 미국에게 단단히 실망한 아이슬란드는 결국 NATO를 탈퇴하고 소련의 미르카급 호위함을 구입하기로 함


5. 장기전

베트남 전쟁 때보다도 더한 극심한 반발에 시달리고 특히 아이슬란드의 NATO 탈퇴까지 겪은 미국은 더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고, 결국 1976년 2월 미국은 포르투갈에서 철수했음

한편 스페인은 우월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을 끝장내지 못하고 있었음

물론 포르투갈 역시 스페인군을 몰아낼 여력이 없는건 마찬가지였고, 흡사 OTL의 러우전쟁과 비슷한 구도로 흘러감

한편 스페인 북서부 칸타브리아 산맥 일대에서는 REGA와 ETA 반군이 유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스페인의 전쟁 지속을 점점 힘들어지게 만들었음

급기야는 스페인 본토에서도 스페인 공산당과 GRAPO 반군이 봉기하기 시작했음

이러한 상황에서 친소 진영으로 넘어온 아이슬란드 해군기지를 통해 대서양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한 소련은 본격적으로 포르투갈을 지원하기 시작했음

스페인 정권은 점점 궁지에 몰렸고, 결국 1976년 12월 쿠데타가 일어나 스페인 정권이 전복되었음

정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REGA와 ETA는 갈리시아와 바스크를 완전히 장악했고, 결국 스페인의 새 정부는 포르투갈에서 철수하는 한편 갈리시아의 포르투갈 편입과 바스크의 독립을 승인했음

그리고 스페인 본토는 포르투갈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공산화가 이루어졌음


6. 냉전 체제의 강화

마침내 1년 간의 전쟁이 끝나고, 이베리아 반도에는 평화가 찾아왔음

스페인과 바스크, 포르투갈, 아이슬란드, 쿠바는 미국과 서구권에 맞서기 위해 남대서양 조약기구(SATO)를 창설했고, 과거 포르투갈령이었고 현 시점에서는 공산 포르투갈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모잠비크와 앙골라,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도 가입했음

SATO는 바르샤바 조약기구과 우호 관계를 맺었고, 이는 영국과 프랑스, 서독이 안보에 극심한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음

한편 SATO는 리비아와 함께 IRA, PLO, FARC 등의 다양한 반군 세력을 지원했는데, 이는 영국과 이스라엘, 콜롬비아가 불안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음

결국 한동안 지속되던 데탕트가 종식되고, 80년대에 접어들며 냉전 체제는 다시 강화되기 시작했음


7. 그 이후

1989년 동유럽 혁명과 1991년 소련 해체를 거치며 동구권은 붕괴되었음

그러나 동유럽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반공 혁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SATO는 유지되었음

쿠바는 공산주의 체제가 유지되었고, 나머지 국가들은 OTL의 모잠비크와 앙골라처럼 공산주의 간판만 내린 채 온건화된 공산당이 계속해서 집권하는 체제가 이어졌음 (물론 애초에 공산화 된적이 없는 아이슬란드는 예외)

2000년대 이후, 유럽의 이른바 '신냉전'은 미국과 유럽 대륙의 친서방 세력 vs 대서양의 SATO 세력의 구도로 이어지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