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2월 몽골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 국경획정 조약이 체결되고 1964년 6월에 오늘날과 같은 국경이 정해짐.


두 나라 사이에는 고비 사막이라는 큰 사막이 있는데다 이렇다할 거주 인구도 없다보니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지도마다 경계가 제각각이었음. 경계를 획정하려는 시도는 여러차례 있었지만 주변국들의 상황이나 급격한 세계정세의 변화로 인해 계속 미뤄졌고 그로 인해 수많은 스타일의 몽골지도를 볼수 있게 되었음.


몽골이 독립을 선언하기 전인 1905년에 발행된 대청제국전도


1937년 일본 아사히신문의 중화민국현세도(일본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만주국은 색칠되지 않았고, 몽골과 탄누투바 모두 중화민국의 영토로 표시함)


1938년 일본 도쿄니치니치신문의 신동아자원개발해설지도(역시 몽골과 탄누투바를 중화민국의 영토로 표시함. 내몽골 찰합이성과 수원성에 그려진 깃발은 몽골군사정부의 기)


1947년 중화민국전도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대지도


다음 해 발행된 1951년 중화인민공화국대지도에서는 경계가 바뀐 모습


인터넷에 자주 보이는 중화민국 미수복지구 지도


근데 동쪽에 몽골쪽으로 쑥 들어간 땅이 특히 몽골땅이었다가 중국땅이었다가 오락가락하는데, 여기는 達里岡厓牧場, 다리강가 목장으로 청나라 황실의 목장이 위치한 곳이었음. 

(다리강가 목장, 초록색 표시)


이 목장은 청나라가 몽골을 지배한 이후 생겼는데 물이 많고 목초가 좋다는 자연적 조건과 더불어 중국에서 몽골로 넘어가기 좋은 위치에 있다는 군사적 조건 모두를 충족하는 이른바 요충지였던 것으로 보임.


지리상으로는 몽골에 속하지만(이 목장은 투시예트 칸土謝圖汗 부와 세첸 칸車臣汗 부의 영토를 떼어서 만들어짐) 최대규모의 황실 목장이라는 특수성으로 청나라는 내몽고 찰합이(차하얼)성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렸다고 함.


몽골 입장에서는 지리적으로 몽골의 영토라는 이유로, 중국 입장에서는 행정적으로 직접 다스렸음을 이유로 각각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였음.


실효적인 지배는 몽골의 독립 선언 직후에는 왔다갔다 하지만 1921년 몽골인민공화국이 국경수비대를 상주시키면서 완전히 몽골의 소유가 됨. 중국은 몽골의 독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1946년에야 독립을 승인하고 1962년 다리강가의 몽골 지배권을 인정하고 현재의 국경을 획정하는 조약을 체결하면서 영토분쟁이 종결됨.


국내에서 이를 다룬 논문으로는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이평래 교수님의 '몽골과 중국의 다리강가 영유권 분쟁'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는게 좋을듯. 관련 자료 찾는데 다 중국쪽 자료라서 거의 대부분 이쪽 논문을 참조함.


그리하여 찌그러진 몽골은 동글동글한 몽골로 바뀌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