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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저를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문과라서 과고는 아니지만 외고를 나왔고, 고3 내내 10시간 이상씩 공부해서 서울대 지리교육과에 합격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져 온 '확고한 길'과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위해 항공대 항공운항학과로 입학했습니다.

그분이 가지 못한 서울대를 그냥 포기해버렸네요. 그리고 제 꿈 찾아 원하는 길로 가고 있구요.

대학교 들어와서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8주 동안 기말 공부해서 올 A+ 받았네요.

참 노력 많이 했죠?


먼저, 사교육에 많이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저는 고3 1년 동안 수학 현우진 인강 외에 사교육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해봤자 한국사 이다지 개념 정도?

나머지는 전부 EBSi 강의 혹은 자습으로 공부했지만,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수능은 물론 국수영탐 모두 1등급이구요.

그런 이유로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점은 공감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말한 '지원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국가에서는 문과보다는 이과를 확실히 더 밀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장 국가장학금 중 이공계장학금이 있는 것부터 눈에 띄죠. 저는 '공립' 외고를 다니는 동안 지원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우리 학교에 장학금 받은 친구가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있어도 아마 저소득층 친구들의 학비 감면일 겁니다.

즉, 국민 대다수가 과고를 다니지 않는 만큼 전국 학생 대부분은 지원금을 받기 힘듭니다. 그런데 그분은 전국민이 과고를 다니고 지원금을 빵빵하게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네요? 전 이 부분에서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집안에서 40만원짜리 메가패스 사는 것도 부담되서 사달라도 말씀드리기까지 1달이 걸렸는데, 이걸 뭐 국가에서 지원을 해 주나요? 나라에서 학비가 나와서 지원받은 학비 만큼 사교육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에서 과탑을 해도 장학금 같은 게 나오지도 않고. 그냥 졸업할 때 경기노총?인가 어떤 단체에서 상장 한 장 준 거 외에는 하나도 도움을 받지 못했네요.

분명 저보다도 공부를 할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이 저만큼 노력을 부어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학교에서 지원받기 힘든 건 사실입니다. 지원금이 나온다고 해도 끽해야 학비인데, 독서실비, 월세 등등은 어쩌겠어요?


청년실업이 와닿지 않는다는 것도 저는 공감하지 못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취업이 더더욱 불투명해지긴 했지만, 이건 특수한 상황이라 논외로 하겠습니다.)

저희 학과에서 민항으로 취직을 하려면 일정 수준의 돈이 필요합니다. 얼마인지 아세요? 한화로 2억 언저리예요. 이만큼의 돈을 당신이 말하는 '노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대출을 받아서 파일럿 준비과정을 밟는다고 해도 비행낭인 되면 끝이에요. 평생 2억 빚 달고 자기 집도 없이 배민커넥트나 하면서 간간히 생계유지 해야겠죠. 제가 만약 그런 처지가 된다면, 꾸준한 노력과 괜찮은 학벌이 있는데도 저랑 결혼할 사람이 있을까요? 당신이라면 저랑 결혼하고 싶으세요?

당신이 말씀하신 '지원금'처럼 국가에서 민항 조종사 지원금 같은 거라도 나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없습니다.

(비행낭인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많은 돈을 들여서 조종사 자격증명은 취득했지만 항공사 공채에서 계속 떨어져서 비행을 할 수 없게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서, 항공사의 조종사 채용 수요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느끼는 바로는, 결국 청년실업과 구직난은 경제적 여유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 삼성 최종면접에 붙은 단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돈이 넘쳐나서 해외 명문 대학에서 유학을 해서 n개 국어 가능한 스펙 빵빵한 사람과, 돈이 부족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대 붙은 사람. 당신이 기업 인사팀이라면 누구를 뽑으시겠어요? '이공계라서 실적을 중시하는' 당신께서는요?


저는 당신이 요구하는 것만큼의 노력을 했지만 당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취업이 불투명한 사람입니다.

부디, 높은 지위가 아닌 낮은 지위에서 세상을 한 번 바라봐주세요.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아직 이 세상, 아니 적어도 이 나라에는 존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문단 때문에 신변 노출 우려가 있어 몇 시간 뒤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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