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 이라는 소설을 한 번 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밭 밑에 금맥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애써 키운 콩밭을 다 망가뜨리다가 부부가 파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30년대 한반도에 불어닥친 황금광시대를 표현한 이 작품은 홍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쇼와 9년 9월에 공학사 이토 쿄우스케가 쓴 '미쓰비시광업소속의 주요 광산의 현황에 관하여' 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미쓰비시광업이 당시에 한반도에 소유한 광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이 중, 6번째에 화전리광산 (금,은) 에 관해 나와있다.

필자가 이 글을 번역하였는데, 일본어 실력이 낮아서 오역의 가능성이 있다. PDF 파일을 올릴 것이며, 거기에서 오역을 찾아낼 경우에는 댓글 작성을 부탁한다. 몇몇 일본식 표현을 한국식 표현으로 바꾸었으며, 일부 한자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연혁

메이지 30년 (1897년) 교본 광구 내에는 사금이 발견되어 한 때 매우 번성하였노라하고 전해온다. 다이쇼 때는 나카바토다광업회사의 소유였으나, 다이쇼 9년 (1920년) 부터는 개인의 손을 전전하였다. 그 모두들 실속을 보지 못하였으나, 쇼와 7년 (1932년) 4월 당사(미쓰비시광업)의 소관이 되었다. 이후, 채광에 전념하여 오늘에 이른다.


위치 및 교통

본광구는 경성(오늘날의 서울)에서 동으로 92km에 있으며, 기간도로는 대부분은 홍천가도(현재 44번 국도)에 연한 산허까지 자동차로 통함.


지질 및 광상

광구 내 지질은 정편마암 및 변질수성암으로 구성되고, 광상은 그것들을 모암으로 하는 열하충전함금은석영맥(석영맥의 찢어진 틈 사이로 금과 은이 충전되어 있다.) 이며, 맥석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방해석을 포함함.

이미 알고 있는 광맥 십 수개를 셈하고, 주요한 광맥은 제7표에 표시한 4개이다.


제7표

맥명주향경사폭 (m)품위(1톤당 산출 g)탐사한 길이개발 심도
3호맥N 20° W80° W0.602020
15
5호맥N 20° W
75° W
0.50182545020
8호맥N 15° W
75° W
0.80202040020
9호맥N 15° W
75° W
1.201210


탐광 및 채광

일부 수굴(손으로 굴을 팜)에 의한 것 이외 백마력의 압기기에 의한 착암기를 조업하여 각맥의 탐채광을 행함과 동시에, 도중 미개발 광구의 참광을 겸하여 길곡(지명. 현재 화전2리 3반의 일부)광상과 상과호(지명. 웃과우라고 읽으며, 현재 화전3리 2반의 일부)의 모든 맥과의 연결을 계획한 길곡서입립(예정연장 1,000m) 및 하저개발의 기간이 될 길곡수갱(수직갱을 의미함. 예정심도는 150m)의 굴착에 열성을 기하고 있음.


선광

미리 공사중이던 선광장은 올해 7월 준공하였으며, 다음에 표시될 계통에 의한 조업을 개시함.


동력설비

발전설비로서 370마력의 중유기관 및 313 KVA(교류 전력량)발전기를 준비하는 것 이외, 압기기는 120마력의 중유기관 직결로 함.


사용인원

6월말 현재 다음과 같음.


제8표



내지인(일본인)조선인(한국인)
갱내착암부217
갱부053
지주부114
운반부050
기계부00
잡부011
갱외운반부00
기계부04
공작부416
제련부00
선광부00
잡부027
기타210
합계9202


생산액

쇼와 8년 (1933년) 전체 생산액은 다음과 같음.

5.969kg15,221원
3.979kg131원


그리고 제3도 화전리 광산 선광 계통도가 있는데, 상당히 복잡하고 많은 과정을 거친다.


세계 금 위원회 (World Gold Council)는 고품위 광산의 경우, 금 매장량이 톤당 8 ~ 10g, 저품위 광산의 경우 톤당 1 ~ 4g이라고 한다.  그런데 화전리 광산의 주요 4개 맥은 고품위 기준의 2배가 휠씬 넘는다. 상당히 채산성이 있는 광산인 것이다.


구지도에 표시된 금광 표기. 금광이 있는 골이 길골이며, 옆 골짜기는 웃과우(상과호)이다. 


다음 지도 - 2008년 : 이제는 그냥 평범한 마을이 되어버렸다. 웃과호는 전차부대 훈련장이 되어버렸다. (홍천군에는 이렇게 군 훈련장으로 수용되어 주민들이 살지 않는 곳이 몇 곳 있다. 필자가 거주하는 곳은 집 뒤에 제3기갑여단이 주둔하고 있다.)


한 때는 번화로웠던 광산이 폐광 이후 시골로 돌아가는 것은 전형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한 때에 번성하였던 태백, 영월과 같은 강원도 탄전 지대의 사례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만, 내심 그것의 남의 얘기라고 생각하였지만, 필자의 고향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음을 알게 되니 조금은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잊혀진 광산 시리즈는 한 때 번성하였던 홍천의 광산들을 대상으로 글을 작성합니다.


TMI) 숨겨진 이야기

이 글은 어느 네이버 카페에 같은 고향이신 분이 글을 올린 것과 그것에 대한 댓글을 모아서 작성한 글이다.

아주 오래 전, 주변에서 몇 개 작은 광산이 금을 캤었다고 한다.  LG에서 이 광산을 개발하려 했으나 갱도에 물이 많이 차있어서 조사조차 못했다고 한다. 패망 이후에 그곳에서 일하던 일본인들이 매우 안타까워 했다. 아직 뒷다리 하나 밖에 못 캤고, 황소만한 금덩이가 있었는데 못 캤다고... 이 광산은 H자 형태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남북으로 두 개의 큰 맥이 있었고, 중간에 둘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었다. 현재는 전차부대 훈련장이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길곡 옆의 웃과우를 의미한다.

광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막거리'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금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땅을 파서 금을 찾으려고 난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전설로는 그 동네는 금 찾으려고 땅을 다 뒤집어 엎어서 논은 없고 밭만 있다고 한다. 물론 전설일 뿐이고, 길골에는 논이 있다. 다만, 광산 주변은 중금속 오염도가 매우 높다.


+) 화전리 광산에서 채취한 시료를 분석한 일본어 글을 찾았다. 시간이 되면 번역하여 올릴 예정이다.


++) 이거 PDF 파일 여기에 공유하는 법 아는 분 계신가요? 방법을 알고계신 분은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