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학계에서 지리(환경) 결정론이라며 배척했으나 유전 결정론이 완전히 퇴출되고 다이아몬드 같은 학자들의 활약으로 다시 논의의 중심에 복귀한 지리적 요인들을 살펴 보자. 


첫째, 좋은 기후. 지중해성, 서안해양성 기후는 인간이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기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다. 서안해양성 기후 지역은 너무 고위도여서 일조량 부족으로 고대에는 농업 생산성이 낮았으나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은 세계 최고로 역전되었다. 서유럽은 자연 재해도 드문 편이다.


둘째, 바다 접근성. 유럽은 반도들의 반도로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바다에 진출하기 쉬우며 서안해양성 기후로 인한 강의 일정한 수량은 내륙에서도 수운을 이용하기 좋게 해 주었다. 


셋째, 중앙아시아 스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 이는 유목민의 침공으로부터 서유럽인들을 안전하게 해 주었다. 말과 등자의 등장 이후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은 유라시아의 농경 문명권에 큰 위협이 되었으며 이는 서유럽 외의 문명권이 외부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든, 지배-피지배 계급이 민족적으로 이질적이어서든 제국적 체제를 택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넷째 , 지리적으로 복잡하여 다수의 정치체가 수립되었고 이는 국가 간의 경쟁을 가능케 했다. 이는 바로 위의 스텝과의 먼 거리와 합쳐서 이해하는 편이 좋다. 아마도 두 가지 원인이 다 작용하여 유럽에는 로마 이후 제국이 세워져도 오래 가지 못했다.


다섯째 , 아메리카 대륙이 가까웠다.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정복과 착취는 유럽인들에게 큰 부를 선사했다. 반서구주의자들은 이 요인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데 이것이 중요한 원인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이 원인이라면 왜 이베리아 반도에서 근대화가 시작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희망봉 항로를 서구인들이 독점했다는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문화적 요인을 강조하는 이론들도 지리적 요인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개인주의나 시장 우위를 가능케 한 원인으로 서유럽 농업의 특성을 드는 학자도 있다. 에릭 L 존스의 '유럽의 기적'이나 국내 저자의 '문명의 수레 바퀴' 같은 저작들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리적 요인으로 서유럽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것은 인종주의나 우연에 기댄 설명보다는 확실히 낫다. 제도와 문화는 근본적인 설명이 되지 못한다. 왜 서유럽에만 그런 제도와 문화가 있었는지 더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인이 우월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은 완전히 퇴출되었고 우연한 사건이 원인이라는 가설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역사에 미친 지리의 영향은 장기적, 근본적 차원으로 갈수록 깊고 선명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대논쟁 서구의 흥기'라는 책에서 위에서 제기한 가설은 물론 더 많은 가설을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