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라리아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인류와 말라리아의 싸움의 역사를 한 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게 지리와 연관이 있냐고요? 물론 있죠. 말라리아로 죽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지리학도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글을 쓸 곳이 여기 아니면 별로 없습니다…

 

말라리아는 라틴어로 “나쁜(malus)”이라는 단어와 “공기(aria)”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들어진 말인데, 과거에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시절에 나쁜 공기 때문에 퍼지는 병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재 유행하는 코로나19를 비롯하여 “나쁜 공기” 때문에 퍼지는 전염병은 있지만,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개로 전염되고 공기 감염은 되지 않습니다.

 

중국 남부와 베트남 등지에서도 유행하던 질병이었기에, 고대부터 한자문화권에서는 말라리아를 가리키는 별도의 한자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학질 학(瘧)”자인데요. 이 한자와 질병 질(疾)자를 합쳐서 “학질”이라고 불리었습니다. 학대(虐待) 등에 사용되는 “모질 학(虐)자와 “병질엄(疒)을 합쳐서 만들어졌으니, “사람을 학대하는 질병”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국에도 이 "학질"이 퍼져, 학질로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말라리아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 난항을 겪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라리아의 병원체인 “말라리아원충”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작은 기생충의 일종이라는 것. 둘째는 말라리아원충의 종류가 한 종류가 아니라 다섯 종류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말라리아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말라리아는 다른 전염병과는 다르게, 치명율과 전염율이 반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치명율과 전염율이 모두 높은 편인데, 이는 말라리아가 사람과 사람 간 전염이 아닌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빨리 죽든 말든, 모기가 빨리 죽지만 않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말라리아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전염병 중에 가장 높은 누적 사망자 수를 기록했습니다. 추정치가 30억 명이나 되죠. (최대 추정치 50억 명) 다만 말라리아의 종이 5종류이기 때문에, 단일 질병 사망자 수 1위는 아닙니다. 1위는 10억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지금은 박멸된 천연두입니다. 그 다음으로 인플루엔자, 흑사병(페스트)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말라리아는 천연두, 인플루엔자, 흑사병보다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치료제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겠죠. 파나마 운하가 공사가 중단된 이유 중 하나가 말라리아 창궐이었을 정도였으니까요. (파나마운하 얘기 있으니까 지리 맞음 아무튼 그럼)

(피에르조세프 펠레티에와 조세프 카방투의 사진)

파나마 운하를 착공하기 전부터 열대 지방의 말라리아 창궐은 심각했으니 그 이전에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1820년, 프랑스 과학자 피에르조세프 펠레티에(Pierre-Joseph Pelletier, 1788~1842)와 조세프 카방투(Joseph Caventou, 1795~1877)는 페루 등지에서 자라는 키나 나무(Quinine tree) 나무껍질에서 추출한 물질로 약을 만들었죠. 이름하야 퀴닌(Quinine)!


퀴닌의 개발 덕분에 말라리아 창궐 상황은 한결 나아졌습니다. 이 덕분에 유럽인들이 남미, 아프리카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었죠. 별로 좋은 영향을 끼친 건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그곳의 원주민들도 말라리아에 고통받고 있었으니 21세기 기준에서 보면 좋은 일이었…으려나?

 

그러나 퀴닌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과다 복용시 급성 폐수종으로 사망할 수 있고, 임산부가 복용했을 경우 기형아 발생, 심하게는 유산까지 일어날 수 있죠. 게다가, 쓴맛이 너무 강했습니다. 복용자가 쓴맛에 약을 토해내기라도 하면 아무 효과가 없겠죠. 단 것을 같이 먹으면 괜찮지 않겠냐 싶겠지만, 그러면 약의 부작용이 심해져서 환자가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파나마 운하를 개발할 당시에는 별로 이것밖에 대안이 없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퀴닌을 썼어야 했지만, 퀴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공사가 중단되었죠.

 

(알퐁스 라브랑의 사진)

그러던 와중, 프랑스의 군의관 알퐁스 라브랑(Alphonse Laveran, 1845~1922)이 1880년, 알제리의 군병원에서 말라리아 환자의 혈액에서 말라리아의 병원체인, 말라리아원충을 발견했습니다.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 등의 공로로 세균이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세균 이외의 생물이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게 처음이었죠.


(로널드 로스의 사진)

그리고 1892년, 영국의 군의관 로널드 로스(Ronald Ross, 1857~1932)가 말라리아의 매개체가 모기임을 알아냈고, 이듬해 모기의 침샘에서 말라리아원충을 분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공으로 19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1911년에는 기사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알퐁스 라브랑도, 조금 늦긴 했지만, 190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12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고요.

 

알퐁스 라브랑과 로널드 로스 경 덕분에, 파나마 운하 공사를 미국이 재개하였을 때에는 모기를 박멸하여 말라리아에게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끝내 완공에 성공했습니다. 두 사람이 미국의 초강대국 성장의 숨은 공로자가 된 셈이죠.

 

말라리아에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게 된 인류는 이제는 말라리아를 역이용하여 다른 병을 치료하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정신과 의사 율리우스 바그너야우레크(Julius Wagner-Jauregg, 1857~1940)는 매독성 뇌염이나 마비성 치매 환자에게 말라리아원충을(!) 주입시켰고, 이로 인해 열을 발생시켜 증상을 호전시키는 치료법을 개발했습니다. (이게 되네)


(율리우스 바그너야우레크의 사진)


정신질환 치료에 발열요법, 쇼크요법을 적용한 최초의 사례이죠. 다만, 다른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개발된 현재에는 너무 위험하므로 사용되지 않는 방법입니다.

이 공으로, 바그너야우레크는 192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때는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시민이었겠네요.

 

글이 길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인류 vs 말라리아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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