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vs 말라리아 1편

https://arca.live/b/city/35700840


(말라리아에 관한 추가 정보: 겸상 적혈구 증후군이라는 유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적혈구가 찌그러진 모양이라 빈혈 증상을 보이게 되는데, 이런 사람의 경우 원충이 적혈구에 효과적으로 침입하지 못해 말라리아에 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말라리아 치료제를 복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아주 낮은 확률로, 겸상 적혈구 증후군을 앓고 있다면, 말라리아 치료제를 절대로 복용해서는 안됩니다.)

 

말라리아가 지리와 연관 있는 이유를 더 찾았습니다. 도지챈 사람들은 지리를 좋아하니 언젠가 여행을 가게 될 텐데, 그 여행지가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일 수도 있으니 말라리아에 대해 더 잘 알면 여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말라리아에 대하여 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전 글에서 기술했듯이, 퀴닌에게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학자들은 퀴닌을 대체할만한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서야 나오게 되었는데, 한때 코로나19 치료제로 각광받기도 했던 클로로퀸(Chloroquine)이 바로 그것입니다.


1934년, 오스트리아(현재 기준 이탈리아)의 쥐트티롤 출신인 독일인 의학자 한스 안데르사크(Johann “Hans” Andersag, 1902~1955)가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의 연구소에서 레조힌(Resochin)이라는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독성이 너무 강해서 버려진 이 물질을, 2차대전 중 북아프리카의 독일군이 이것을 말라리아 치료용으로 사용했고, 북아프리카를 연합군이 장악한 이후 이것을 미국인들이 개량하여 만들어진 치료제가 바로 클로로퀸입니다.


 

(발퀄 ㅈㅅ)

퀴닌보다 강력한 효과! 임산부의 태아에 대한 부작용도 없음! 기타 부작용도 약함! 사전 복용시에도 단기적으로 말라리아 예방 가능!

그야말로 당시에는 말라리아를 박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받는 최종병기였습니다.

그러나, 열대 지방에서 유행하는 몇몇 말라리아의 경우 점차 원충들이 내성을 가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효과가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대체재를 찾기 위해 다시 과학자들은 더 나은 치료제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57년 개발되어 1967년 상용화된 독시사이클린이 퀴닌과 같이 사용했을 때 좋은 효과를 보였지만, 크고 작은 부작용, 그리고 말라리아 치료시에는 퀴닌과 같이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다지 많이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사전 복용시 단기적으로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후 단기적으로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게 하는 아토바쿠온-프로구아닐(Atovaquone-Proguanil)과 메플로퀸(Mefloquine)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약들은 이미 병에 걸린 상황에서의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고, 클로로퀸에 비해 부작용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클로로퀸에 대한 내성이 있는 원충에 대하여 충분히 예방 효과가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약을 개발하는 방향이 아닌, 말라리아의 매개체인 모기를 박멸하자는 방향으로 말라리아를 박멸을 시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874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화학자 오트마어 차이틀러(Othmar Zeidler, 1850~1911)가 합성해낸 물질인 DDT가 1939년,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üller, 1899~1965)에 의해 아주 뛰어난 살충 효과가 있음이 알려졌고, 이를 발견한 공로로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DDT의 뛰어난 살충 효과로 인해 말라리아는 박멸 직전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DDT가 일으키는 심각한 부작용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하고, 1962년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의 저서 <침묵의 봄>이 출간되자 여론의 직격탄을 맞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DDT는 저렴하면서도 강력한 살충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나, 다른 살충제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싼 살충제들을 구매할 능력이 없었던 개발도상국에서는 박멸 직전까지 갔던 말라리아의 재창궐로 큰 피해를 입었고, 이에 몇몇 개발도상국들이 다시 DDT 사용을 시도했지만, 현재는 상당수의 모기가 DDT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바람에 박멸까지 이르는 효과를 보기에는 어려워졌습니다.

 

말라리아 퇴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서양만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도중 상당한 수의 말라리아 사상자가 발생하자 호찌민은 마오쩌둥에게 말라리아 치료제 연구를 부탁했고, 중국도 말라리아에 상당히 고생하고 있었기에 마오쩌둥은 1967년 5월 23일,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지시하여 ‘523 임무’가 시작되었습니다.

문화대혁명 와중이라 과학 연구가 일체 중지되어 있었지만, ‘523 임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종의 군사 작전으로 여겨져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투유유의 모습)

1969년부터 이 임무에 참가한 투유유(Tu Youyou, 1930~)는 1971년, 수많은 실패 끝에 개똥쑥에서 추출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이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이듬해 열린 ‘523 임무’ 연구 보고회에서 발표했습니다.

마오쩌둥이 죽은 이후인 1977년, 이 연구 결과가 익명으로 학술집에 실렸습니다. 익명으로 실린 이유는 상술했듯 ‘523 임무’가 군사 작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년이 지난 1981년, 세계보건기구에 아르테미시닌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아르테미시닌이 말라리아 치료에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효과가 있었습니다. 없었다면 이 치료제를 발견한 투유유가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투유유의 수상은 말라리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4번째 노벨상 수상이었습니다. 또,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으로 최초로 과학 부문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전의 중국계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들은 모두 중화민국/대만이나, 미국 등 외국 국적자였습니다.)

 

2011년에는 대한민국의 제약회사인 신풍제약이 스위스 NGO “말라리아 위험 방지 제약”의 자금 지원을 받아, 피로나리딘과 알테수네이트를 결합하여 말라리아 치료제인 피라맥스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현재까지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이면서 큰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종종 발견되고 있지만,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말라리아 치료제로서의 효과는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https://arca.live/b/city/35630289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62908


그리고, 마침내, 2021년 10월 7일, WHO에서 말라리아 백신을 처음으로 승인했습니다. 원충의 종류가 5종류나 되고, 세균도 바이러스도 아닌 기생충이라서 백신을 개발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마침내 개발된 것입니다. 무려 30년 넘게 개발했다고 하니, 그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다른 질병의 백신에 비해 효과가 크게 떨어지고, 4번이나 접종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 개월밖에 효과가 지속되지 못합니다만, 그래도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겠습니다. 치료제를 함께 복용하면 예방 효과가 크게 오르기 때문에, 어쨌건 말라리아 박멸에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입니다.

"아, 인류 만세!"

 

지금까지 인류의 과학자분께서 말라리아를 박멸하기 위한 노고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인류의 과학자 여러분께서 말라리아를 박멸에 이르기까지 부디 수고를 아끼지 않아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