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 연휴 마지막날을 논문만 쓰면서 무의미하게 보내기는 싫었던 참에, 얼마 전 아는 중국인 버덕 친구가 외곽지역 시내버스 답사하는 김에 베이징 북서부 시골지역 탐방하러 같이 갈거냐고 물어봤다.

버덕은 아니지만, 처음 베이징에 왔을때부터 도심에서 저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에 대해 호기심은 많았지만 혼자서 가볼 기회도 용기도 없던 터에 버스 시간표를 머릿속에 외우고 다니는 친구가 동행해준다고 하니 얼씨구나 절호의 기회로구나 하고 바로 수락했다.


지하철 2호선 지수이탄(积水潭)역에서 조금 더 걸어오면 나오는 덕승문(德胜门). 북경의 몇 남아있는 성곽 중 하나이자, 과거 북경성의 북서쪽에 위치한 특성상 현재는 팔달령장성, 옌칭, 창핑 등 북서부 외곽지역 방면 광역버스들의 기종점으로 쓰이고 있다. 


티엠아이: 교통허브답지 않게 지하철역에서 다소 떨어져있고 우뚝 서있는 성곽 유적 뒷편에 위치해 정류장을 찾기 어려운 탓에, 과거에는 무려 짝퉁 만리장성행 광역버스가 성행했었다. 차량 도색부터 승무원 유니폼까지 전부 진짜 버스와 똑같이 준비한 다음 외지인들에게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진짜 버스의 수 배에 달하는 표값을 받는 형식.

이후 불법행위 순찰과 처벌 강화로 짝퉁 버스는 완전히 종적을 감췄고, 지금은 지하철역 입구부터 만리장성 가는 버스 정류장이 어딨는지 친히 알려주는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있어 웬만해선 사기당할 일은 없다.

우리의 첫 답사는 872번 버스에서 시작되었다. 덕승문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를 쭉 타고 북쪽 창핑구(昌平区)에 입성해서 명십삼릉(明十三陵) 유적지에 도착하는 노선.

(버스 탈때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해서 내릴때 찍은 사진으로 대체. 근데 LED가 저따구로 찍혔네...)

산길을 많이 타는 특성상 (다른 일반 시내버스들은 전기차로 대거 교체된 마당에) 여전히 기름으로 달리는 차량들을 사용하는 타 광역버스들과 다르게, 872번 버스는 노면 상황이 그리 아스트랄한 편이 아니라 전기차를 투입한다.

푹신한데 찝찝한 타 광역버스들의 시트가 아닌 깔끔하지만 딱딱한 시트였다. 요즘 수도권 광역버스 신차들이 아마 이거랑 비슷한 시트였던 것 같은데.

매시 정각과 30분에 출발하여 배차 간격은 준수한 편. 애초에 명십삼릉이 그리 메이저한 관광지는 아니라서 수요가 많은 노선은 아니다. 더군다나 상당수 승객들이 무임승차하는 노인들이라 (베이징은 서울과 반대로 지하철은 일반가격, 버스는 무료로 탑승한다.) 한번 굴릴때마다 적자가 얼마나 나올지.

(친구 피셜 바로 옆 만리장성행 877번은 버스에 사람이 다 차면 발차하는 방식이라는데, 연휴때는 만석으로 평균 30초에 한 대 씩 발차하는 기적을 보인다고 한다.)

출발하고 버스가 유턴하는 사이 잽싸게 찍은 덕승문 성곽 전경.

역시 베이징은 지금 동계올림픽에 푹 빠져있는 상태.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올림픽에 환장해있냐면, 위 사진 오른쪽을 자세히 보면 맨 왼쪽 차선이 6시부터 24시까지 올림픽 관련 차량만 통행할 수 있는 전용 차선 (...?) 으로 지정되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이도 고속도로로 들어가면 전용 차선은 해제된다.


하지만 고속도로에 들어왔다고 막 달려라 달려! 하는건 아니고, 버스 차량에 시속 60km라는 제한속도가 걸려있어 여전히 기어간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창핑구 입성! 

다만 이 버스는 창핑구 시가지 서쪽만 스쳐지나가고 바로 시골길 따라 외곽으로 빠진다.

시내에서 발견한 창(昌)1번 버스. 사진 찍는 나를 보더니 친구가 "이 버스 창핑에서 최신형 버스임" 이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버스는 뭐 어느정도길래? 라고 생각하던 도중, 금방 분해될 것 같이 생긴 90년대에서 타임워프온 농어촌버스같은 물체가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쉽게도 사진은 찍지 못했다.)

무슨 주말농장(이었던 것 같은 것)을 지나고 (여기 아직 베이징임)

나무밭을 지나서 (여기도 아직 베이징임)

명십삼릉 장릉(长陵) 도착! 

입장료는 대학생 반값할인 받아서 15위안이었다. (평생 대학생으로 살았으면 좋ㄱ...아니 졸업 유예시켜달라는 말은 아니고요 지도교수님)

근데 제아무리 동절기라지만 사람이 좀 극단적인 수준으로 없었다.

진짜로.

거의 아무도 없었다.

무슨 묘비 있는 건물에 올라가서 경치나 구경했다.

누가 벼락맞는 사고라도 났었나.

결론은 15원이 아까웠던 별 볼 것 없는 개노잼 관광지였다. 

1. 역사덕후거나 (아쉽게도 난 아님), 2. 장릉 말고 다른 능도 보러갈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되거나 (아쉽게도 우린 없었음), 둘 중 하나라도 일치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매우 비추. 물론 우리는 버스 답사의 일환으로 온거라 크게 억울하지는 않았다.

워낙 노잼이라 당장 도망치고 싶었으나, 다음으로 탈 예정인 버스가 12시 정시 발차인 탓에 억지로 11시반까지 버티다가 도저히 머물러 있기 싫어서 결국 칼바람을 맞으며 정류장에 도착했다.


(내일 출근인데 지금 안자면 늦잠 각이라 여기까지만 쓰고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