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코프 친구 A


이 친구와는 참 뜬금없는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다


보통 생각하는 펜팔사이트? 랜덩채팅? 언어교환?

이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심지어 A는 케이팝이나 방탄소년단 같은, 보통의 '한국인과 친한 외국인'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고2때 일이다.


나랑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뭔 느낌인지 알지 교실 한쪽에 막 몰려있잖아. 뭉탱이로다가. 그때 한 친구가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갑자기 나한테 얘기를 하는거야, <와 되게 예쁜데 러시아 사람 아니야? 너 러시아어 할 줄 알잖아> 이런 식으로ㅇㅇ. 그래서 내가 <오~ 되게 예쁘다 모델 아니야?> 그랬지. 그랬더니 걔가 <아니 일반인같은데?> 그러더라. 나는 그래서 그냥 띄 따까야 끄라씨바야라고 댓글을 다라고 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한 몇달 지나니까 갑자기 A가 생각나는 거임. 막 오 친해져볼까? 갑자기 디엠하면 얘가 나 불편해하지 않을까?하고서. 혼자서 고민하다가. 에이 한번 디엠이나 걸어보자ㅋㅋ 하고 아이디 찾아서 보내봄ㅋㅋ


근데 내가 심지어 초면에 러시아 사람이냐고 물어보는 큰 외교적 결례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받아주더라. 근데 언급했다시피 얜 케이팝이나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최근에야 알았지만) 이과라 자국정치에도 별 관심없어서 대화를 막 자주 많이 하진 못했음


아이러니하게도 친해진 건 러우전쟁이었음. A는 매일 밤 잠을 지하실에서 보냈고, 심지어 15년지기 친구가 죽는 비극까지 일어남. 걔한텐 내가 거의 유일한 외국인 친구였고,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현지 친구들끼리는 멘탈케어를 해줄 그런 처지가 아니잖음? 그래서 내가 걔 멘탈케이 엄청 해줬고, 그러면서 친해졌음.



우리는 약속했어

나중에 꼭 평화로운 우크라이나의 평화로운 하리코프에서 만나자고

우린 이 약속을 꼭 지키기로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