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로 지난 17일부터 24일까지, 총 7일간 제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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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로 유학을 간지 세달째,

임시로 발급해준 단수비자가 거의 끝나간다.


1년짜리 복수비자는 받아놨고, 잠깐 해외에 다녀오기도 하면서 비자도 갱신하려고 가장 가까운 해외를 찾아봤다.


'벨라루스'


그래 여기가 좋겠다.


왕복 항공권 6만원에, 비자값은 7만원. 호텔값은 10만원이니 23만원에 3박4일 휴가면 꽤나 나쁘지 않아보였다.


대사관에 가서 관광비자를 받았다. 모스크바에서 받으니 급행이 아닌 일반도 3일만에 나온다.





비행기 시간은 3시 25분인데 나는 3시 정각인줄 알고 있었고ㅋㅋㅋㅋㅋ 집에서 버스타고 가기 때문에 조금 늦을수도 있는 것을 고려해서 집에서 12시에 나왔는데 12시 30분에 도착하고 말았다.


결국 4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좀 일찍 카운터가 열려서 제일 먼저 체크인을 하고 면세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민스크 가는 출국심사대는 따로 있다.

그게 사정을 좀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원래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국가연합 상태라 솅겐조약 국가들처럼 국경이 없다.

문제는 그러면서 상호간 비자는 인정하지 않아서, 러시아 벨라루스 당사국 국민들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데, 외국인들은 비자를 각각 받아야 한다.

암튼 그래서 러시아에서 출국심사는 하고, 벨라루스에서는 입국심사는 따로 없다.


그리고 외국인은 육로로 양국은 통행하지 못한다.



출국심사를 받는데, 출국심사관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비자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에게 벨라루스를 왜 갔다오냐고 묻는다.


"그냥, 관광이요."

"벨라루스에?"

"네 뭐, 소련 그런거 좋아해요."


출국심사관이 빵터진다.






엠브레아르 비행기다. 비행기는 내가 지금껏 탄 비행기 중 제일 작았다.


2D...2D...2D...여기가?


보니까 비즈니스석이다.

사실 작은 비행기라 비즈니스석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네 고속버스 우등만 하다.

자초지종은 따로 물어보지 않았는데, 아마 비즈니스석이 남았는데 제일 먼저 체크인한 나한테 주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무튼 따로 돈을 주거나 하진 않았다.





민스크에 도착하니 진짜 입국심사 없이 출구를 바로 나오니 바깥이다.

이게 외국인가...? 러시아랑 다른 나라 맞나...? 싶다ㅋㅋㅋㅋㅋㅋㅋ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30~40분 배차인 주제에 한국 마을버스보다 작은 밴같은 버스가 온다. 택도 없다.

그 와중에 표 자동발권기는 되지도 않는다.

뒤에서 어떤 외국인이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일단 이거 안된다고 얘기는 했는데, 영어 안쓰다 보니까 영어가 안들린다...


버스에 줄을 서는데, 딱 내 앞에서 끊긴다.

그 외국인이 버스에 타려는데, 기사가 타지 마라고 한다.

외국인이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영어가 안 나오고 나도 막 러시아어로 똑같은 말을 계속하는 대참사가 터졌다.

뒤에 현지인 또는 러시아인 누나가 이 개판을 유창한 영어로 수습한다.


그렇게 둘이 얘기하다, 외국인이 나를 끌어들인다.

얘기하다 보니까 영어가 다시 나오는 것 같다.

모르겠다ㅋㅋ 사실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의사소통은 됐지만 문법은 다 틀렸던 거 같다.


다행히 다음 버스는 큰 버스가 온다고 했다.

우리는 일단 같이 다니자고 했다.

어쩌다 보니ㅋㅋㅋㅋㅋㅋ






서로 얘기를 나눠봤다.


아까 그 누나는 러시아인이었고, 이름은 빅토리아, 아니면 비카라고 했다. 외국인은 브라질인이고, 이름은 펠리페라고 했다.

비카는 모스크바에서 무용수를 하고 있는데, 잠시 휴가를 내서 민스크에 쉬러 왔다고 했다.

펠리페는 취리히에서 교환학생으로 왔는데, 모스크바에 놀러갔다가 유럽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민스크를 들렀다고 했다. 이틀만 있다가, 내일 버스를 타고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간다고 했다. 그러고 나선 폴란드와 헝가리를 갔다가 스위스로 간다고 했다.


버스는 이윽고 민스크 지하철의 종점에 도착했고, 셋은 내렸다.

그때 펠리페가 조금 늦게 내렸다.

내리려다가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것을 확인해서 챙기느라 늦었다고 말했다.


내리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가방을 확인하다 나는 더 큰 걸 놓고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ㅅㅂ 여권!!"


아임 쏘리를 외치고 버스로 달려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버스는 바로 앞 사거리 신호에 멈춰있었다.

앞뒤 잴 것도 없이 전속력으로 버스로 달려갔다.

기사님은 "뭐가 문제길래 그럽니까?"라는 짜증 섞인 말과 함께 들여보내줬다.


뭐 다행히도 여권은 내 자리 바로 밑에 떨어져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버스는 다시 내려준 게 아니라 계속 앞으로 갔다.

문제는 유심을 아직 구입하지도 않았고, 어디서 구입하는지도 모르고, 와이파이는 되는 곳이 없는 이곳에서 저쪽에 있는 일행들과 연락할 수단이 없었던 것이었다.

한참을 가서 어느 지하철역에 버스는 나를 내려줬다.

기사님은 여권을 찾은 나에게 "그래 동지, 중요한 것을 찾았으니 됐다. 조심하면서 살아라."라고 웃으면서 내려줬다.


일단 무작정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역 직원도 모스크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친절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동구권 지하철은 보안이 빡세서 좀 큰 짐을 가져오면 X-RAY 기계에서 검사를 한다.

모스크바 같으면 "어이, 거기! 가져와!" 식이다

근데 여기 민스크에서는 "좋은 오후입니다, 동지. 혹시 가방 검사를 해도 괜찮겠습니까?"라는 식이다.

흐음 이게 마지막 남은 정통 공산주의라는 건가.





이제 승강장으로 들어선 나는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갈지, 중심가로 갈지, 결정해야 했다.

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라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 다른 곳을 갔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텔레파시가 통해야 한다. 셋 다 인터넷이 없기 때문에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다.


결국 나는 종점으로 향했다


...라고 할뻔


종점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자마자 분명히 인터넷이 되는 어딘가로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NS 주소를 공유했기 때문에 그게 올지 안올지 어디갔을지 모르는 나를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연락을 기다리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다음 역에서 하차해 통신사를 찾아나섰다.


문제는?

없다.


첫번째는, 벨라루스 통신사 로고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통신사로 추정되는 상점조차 안 보인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그게 어딨는지 찾기 위해 필요한 인터넷이 없다는 것이다.


이럴때 필요한 사람은? '지나가는 행인'





21분이나 걸렸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일단 가서 무제한 유심을 샀다.

한달에 8천원? 이라던데 이것보다 더 싸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8천원이면 그리고 싼거지




그렇게 연락이 닿았고, 시내 중심가로 돌아가 드디어 둘을 만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맥도날드 성지순례ㅋㅋㅋㅋㅋㅋ

러시아에는 이제 맥도날드가 없고 짭도날드만 있을 뿐이다.

의외로 벨라루스에서는 거의 모든 서방기업들이 철수하지 않았다.

몇몇 은행 단말기들에서는 한국 비자/마스터카드 결제까지 된다.

물론 맥도날드 맛은 그냥 우리가 아는 그 맛이다.

단지 러시아에는 없을 뿐...



맥도날드를 먹고, 서로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다.


저녁때는 바에 가려고 했는데, 비카는 사실 전날 2시간밖에 자지 못해서 펠리페와 둘이 만났다.





그렇게 민스크의 아름다운 밤거리와 함께

파란만장했던 민스크의 첫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