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특별자치시가 아닌 특별시였음 ㅈㅅ



대한민국 행정수도(Administrative Capital of Republic of Korea)

세종특별시(世宗特別市, Sejong Capital City)

하위 행정구역: 5개 구 121개 동

면적: 363.3

주민등록인구(2022.08.): 1,331,183

설립일: 1978년 8월 15일





위치(세종대전충남 시,군 지도)




출범 하루 전인 1978년 8월 14일 일대 법정리 지도



세종특별시 편입일자


짧은 설정

1968년 1.21 사태로 전방 서울의 위험성을 실감한 박정희는 때마침 서울로의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문제와의 동시 해결을 위해 1. 서울과 수도권 인구의 과밀화 2.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협 3. 남북분단 장기화에 따른 국토개발정책 수정 등의 주요 논리로 백지계획이라는 이름의 신행정수도 건설을 결정함.


2년여에 걸친 부지 후보 조사 끝에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 의당면, 연기군 남면 일대를 최종부지로 선정하고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식 발표한 박정희는 장기지구에 1971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감.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1단계 공사가 완료된 정부 수립 30주년인 1978년 8월 15일에 공주군 장기면, 의당면 15개 리, 우성면 7개 리, 정안면 1개 리행정수도 세종특별시로 승격시키고 청와대를 비롯해 입법, 행정, 사법 3부와 국가행정조직을 전부 세종으로 이전해 옮


그러나 박정희는 10.26 사태로 암살당하면서 실제 세종 생활은 1년 여에 그쳤고 후임 집권자이자 이런 분야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전두환은 수도를 서울로 다시 환원하지는 않았지만 2단계는 3단계는 취소, 업무는 거의 기존의 서울에서 보다시피 함. 물론 차츰차츰 성장하고 있었지만 수도라는 이름값 덕분에 주로 구 공주권(서세종) 쪽으로 진행되고 동세종 쪽은 아예 지지부진함. 노태우 정부 들어서 세종에서 업무를 보는 기간도 늘었지만 문민정부 때임.


박정희의 정적이었지만 행정수도 이전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던 김영삼은 이전 정부들이 등한시했던 행정수도의 세종 이전을 영구히 확정하고 도농통합이 한창이던 1995년 연기군 동면, 금남면, 공주군 반포면 5개 리, 청원군 부용면 7개 리를 세종에 편입하고 동세종 일대롤 위주로 대규모 개발에 들어감. IMF로 잠시 부침이 있었지만 2000년대와 2010년대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고 이후 청주와 공주, 조치원(연기군 대부분을 세종에게 뺏겼기 때문에 조치원이란 이름으로 승격) 주변 도시들 낙수효과로 역시 성장함. 2010년 후반 들어서는 4공 때 건설되어 낙후된 서세종 일대의 재개발 역시 진행 중.


행정수도 세종은 박정희가 희망하던 수도권의 과밀화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10-20년 정도 늦춰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전, 청주, 천안, 조치원, 공주, 계룡 등과의 연계화로 대한민국 제3의 대도시권인 중부권의 등장으로 이어짐.



백지계획과의 비교



행정중심복합도시와의 비교(출처:지도제작부)




동시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