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90도가 네 개, 그 십자가가 묘하게 이그러진 모양의 교차로. 

3층, 4층, 8층, 그 옆에는 5층, 뜬금없이 12층, 다시 3층 건물. 겹겹이 도로변에 늘어선 네모들 사이로 숨구멍처럼 보이는 골목길.

그러나 그 골목길조차 조금 더 주의깊게 응시하다 보면 시선 끝에는 또다른 건물로 막혀 있고,

그 조그맣게 보이는 건물을 발견하고 나면 다시 이유 모르게 답답한.

서윤이 이사를 간 후 처음 느낀 그 동네의 이미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교차로와 자신의 발 밑에 납작한 하늘이 흐른다는 사실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듯 했다.

그냥 보이지 않는 것은 의식하지 않는 듯이, 전화를 하고 초록색 불을 기다리며, 때론 느리게 느껴지는 신호나 둔탁한 교통 흐름에 신경질을 냈다.

하지만 서윤은 자신의 발밑에 사람들이 꿈틀댄다는 사실을, 교차로를 지나다닐 때마다 항상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계단만 내려가면 바글바글한 사람들, 그 사이로 교차로가 무너지면서 떨어지거나 그 사람들이 반대로 교차로 위로 솟구치는 상상이 들었다.

어쩌면 납작한 하늘이 아닌, 강물일 지도 모르겠다.

복개된 하천을 따라 난 도로, 그 도로를 따라 흐르는 열차. 그 열차가 떠받치는 군데군데 광원이 박힌 납작한 하늘.

도로에는 사람, 하천에는 물고기, 하늘에는 새.

땅 위와는 달리 물고기와 새는 없고 벌레와 눈먼 나방은 있는, 

그런 또 하나의 세계를 매일같이 들락날락하는 하루 수백만의 사람들.

서윤은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서윤은 지하철을 좋아했다. 

노선도를 보면, 자신의 생각처럼 여러 가닥들이 뒤얽혀 하나의 헝클어진 회로를 이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긴 줄 모양이었을 노선도 위에 하나씩 하나씩 다른 노선들이 포개지며 직관성을 잃어버린 그림.

종점역,

나와는 아예 상관없어 보이는 노선의 종착역.

내가 한 번이라도 그곳에 갈 일이 있을까. 

항상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열차에서 내리지만, 

마음 한 켠엔 아득해 보이는 종점까지 쭉, 그냥 가보고 싶단 생각을 품곤 했다.

노선도 한참을 바라봐도 시선에서 자꾸 빗겨나가는 어중간한 위치의 역 주변에 사는,

그런 서윤은 혼자서는 지하철 발권도 할 줄 모르던 시절의 오래된 기억을 승강장에서 흘리고 있었다.


6-2. 3-4. 1-3. 암호 같은 승강장 밑바닥의 숫자들.

서윤은 그 암호들 사이에 어디에 서면 단 1m라도 더 편하게 내리고, 편하게 갈아타고, 1m라도 덜 걸을 수 있는지 꿰고 있었다.

상반신의 절반 정도가 밀착된 채로 애정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의 남녀에게서 슬그머니 눈을 돌린 채, 

적당히 어두컴컴한 조명 밑에서 가끔씩 뒹구며 다가오는 먼지를 슬쩍 비켜선 뒤

이윽고 기다리던 열차가 열차풍과 함께 멈추고 문이 열리자

곧장 들어가 바로 보이는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좌석 반대편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학생이 고개를 조금 숙이고 졸고 있었다.

잠깐 멍하니 구경하다 눈 마주칠까 시선을 남몰래 황급히 돌리고는, 그 여학생 얼굴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다 그냥 털어내 버렸다.

이것저것 잡생각을 하던 중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옴을 느낀 서윤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앞으로 다가섰다.


오후의 애매한 시간대, 그 시간대에 자신과 같은 객차를 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출입문을 내리고는

계단 여러 번을 걸어올라가 다시 가장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시각의 지상으로 올라갔다.


출구를 올라가서 평지를 걸으며 시간을 확인하던 서윤에게

길을 걸어가는 누군가의 모습이 우연히 들어왔다.




한 사람이 길을 걷고 있었다.


가방을 삐뚜름히 맨 사람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머리는 왼쪽으로 갸우뚱, 가방은 오른쪽으로 쏠린. 거기다 걸음걸이도 뭔가 이상한.


아무튼 뭔가 이상한 누군가가 길을 걷고 있었다.


얼굴은 아무 생각도 없어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묘하게 찌푸린 듯,


신체를 뚫고 나오는 영혼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듯한 그런 누군가가 서윤의 앞에 있었다.


그 얼굴도 단순히 멍한 표정이 아닌, 자신 뿐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까지 집어삼켜버리는 듯한 무언가로 보였다.


서윤은 그런 사람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리치는 듯한 충격에 얼어붙어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을 때 

예상치도 못하게, 

그가 서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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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요즈음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우선 첫 부분부터 조금 써내서 한 번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평가나 피드백... 부탁드려요. 

수정이 될 수도 있기는 한데...

뒷편은 아마 제가 삘 받을 때 올릴 거 같은데. 조금 의무감을 갖고 써 보겠습니다.

맨날 야심차게 도지챈에 연작 어쩌고 해놓고 1편만 써놓고 도망가기 일쑤라.

고등학교 때 공부도 사실 작심삼일 식으로 그렇게 했던 거 같긴 한데.

각설하고 아무튼 한 번 올려보게 되었습니다. 

댓글 하나도 없으면 조금 슬플 거 같긴 한데.... 도시지리 채널에 지리외 똥글 써놓는 챈러가 감수해야 되는 부분일거고.

돚챈 하면서 지리외 글을 제일 많이 올리는 거 같어...

*지하철은 가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