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부전도(開城府全圖)


경기도 개성부의 전역을 그린 지도로 1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작 시기는 1938년 이후로 추정. 개성 지역의 도로, 시가지, 하천 등이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축척은 1만분의 1이며 지형과 경작지, 주요 관공서, 학교 등의 위치가 구체적으로 기입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 각각 1점이 소장되어 있다.


미수복 경기도 개성시(開城市) 증보 개설


시청소재지: 수창동 271번지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고려시대의 옛 도읍지로 문화유적이 많은 역사도시이며, 동쪽은 장단군 진서면, 서·남·북쪽은 개풍군 토성면, 청교면, 봉동면, 영남면과 접하고 서울 광화문에서 북서쪽으로 75.2km(도로를 이용하여 서울역으로 가서 경의선 철도로 갈 경우) 떨어져 있다. 동경 126°36′(동쪽 끝인 덕암동 취적교 기준)∼126°31′(서쪽 끝인 사직동 오정문 기준), 북위 37°57′(남쪽 끝인 손하동 고남문 기준)∼38°(북쪽 끝인 만월동 기준)에 위치하며, 동서 길이 7.6㎞, 남북 길이 5.8㎞, 면적 29.95㎢, 인구 90,081명(1947년 말 호구조사), 인구밀도 201,210명/㎢이다.


-행정구역-

17개 동으로 구성.

  • 선죽동(善竹洞): 면적 1.559878㎢,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 그리고 고려 성균관, 숭암서원, 호정, 모포정이 있는 곳.  동네 이름도 선죽교에서 따왔다. 일제강점기에는 모토마치(元町, 원정)라 불렸다.
  • 동흥동(東興洞): 면적 0.20644㎢, 국립중앙박물관 개성분관(광복 이전에는 개성부립박물관)이 있었던 곳. 이름은 이 일대가 대흥사의 동쪽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히가시혼마치(東本町, 동본정)라 불렸다.
  • 남안동(南安洞): 면적 0.096236㎢, 이름은 이 일대가 개성 남대문의 남쪽 평지에 편안히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미나미혼마치(南本町, 남본정)라 불렸다.
  • 관훈동(冠訓洞): 면적 0.226083㎢, 이름은 이 일대가 여말선초 고려 문인들이 조선 조정이 실시한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거부하고 괘관현, 즉 갓걸재라는 고개와 조선 시대 훈련원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교마치(京町, 경정)라 불렸다.
  • 동현동(銅峴洞): 면적 0.359097㎢, 경덕궁과 부조현 비각이 있는 곳. 이름은 이 일대에 옛날 구리를 채굴한 적이 있어서 동현, 즉 구리개라 부르는 고개가 있으므로 거기에 유래하여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야마치(宮町, 궁정)라 불렸다.
  • 용산동(龍山洞): 면적 1.201611㎢, 구군정, 반구정, 송림사 그리고 개성고등여학교가 있는 곳. 이름은 이 일대가 용수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난잔초(南山町, 남산정)라 불렸다.
  • 태평동(太平洞): 면적 1.327877㎢, 이름은 여말선초 명나라 사신을 맞아 접대하던 객관(客館)인 개성 태평관에서 유래하였으며, 개성역과 개성도서관이 있는 곳.
  • 서흥동(西興洞): 면적 0.10668㎢, 이름은 이 일대가 대흥사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니시혼마치(西本町, 서본정)라 불렸다. 
  • 수창동(壽昌洞): 면적 0.170777㎢, 이름은 고려의 별궁이자 조선 초기에는 조선의 궁궐로도 쓰였던 수창궁에서 유래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야마토마치(大和町, 대화정)라 불렸다. 시청을 비롯해 관공서가 밀집해 있었으며, 개성 제일의 번화가였다.
  • 만월동(滿月洞): 면적 3.316821㎢, 고려의 정궁인 만월대와 눌리문 그리고 개성상업학교가 있는 곳, 그리고 경인교대의 전신인 개성공립사범학교가 있었던 곳. 동네 이름도 만월대에서 따왔다.
  • 북안동(北安洞): 면적 0.15648㎢, 개성 남대문이 있는 곳. 이름은 이 일대가 개성 남대문의 북쪽에 편안히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기타혼마치(北本町, 북본정)라 불렸다.
  • 자남동(子男洞): 면적 0.410659㎢, 자남산이 솟고 관덕정이 있는 곳. 이름 그대로 이 일대가 자남산을 끼고 있다고 하여 그 산에서 따온 동네 이름. 일제강점기에는 이케마치(池町, 지정)라 불렸다.
  • 고려동(高麗洞): 면적 4.306489㎢, 북소문, 안화사, 개성 관왕묘 그리고 개성공업중학교가 있는 곳. 이름 그대로 고려에서 따온 동네 이름.
  • 운학동(雲鶴洞): 면적 3.074071㎢, 목청전과 개성 동대문이 있는 곳. 동네 이름은 이 일대에 있던 옛 지명인 백운동의 '운' 자와 황학동의 '학' 자를 따서 지었다
  • 덕암동(德岩洞): 면적 6.761871㎢, 이름은 이 일대가 덕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었다. 개성중학교가 있는 곳.
  • 손하동(孫河洞): 면적 4.322959㎢, 등경암과 고남문이 있는 곳. 동네 이름은 이 일대가 고려 말 충신 손등과 하경이 순국한 마을이라 하여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고가네마치(黃金町, 황금정)라 불렸다.
  • 사직동(社稷洞): 면적 2.345971㎢, 고려 사직단과 오정문이 있는 곳. 동네 이름은 이 일대에 앞에서 서술한 데에서 유래한 옛 지명에서 따왔다.

구한말에는 개성군 북부면(北部面) 성가리(城架里), 지파리(池波里), 예빈리(禮賓里), 이정리(梨井里), 동부면(東部面) 경방리(京坊里), 팔자동(八字洞), 태묘리(太廟里), 남부면(南部面) 도조리(都助里), 구리개리(九里介里), 미조정리(彌造井里), 곽장리(郭莊里), 서부면(西部面) 관전리(館前里), 청교면(靑郊面) 덕암리(德岩里)의 5면 13동리였다. 1914년(대정 3년) 4월 1일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 정책에 의해 북부면, 동부면, 남부면, 서부면은 송도면으로 병합, 개칭하여 12동리는

각각

  • 원정(동부면 태묘리, 팔자동리, 경방리의 각 일부를 병합)
  • 동본정(동부면 태묘리, 팔자동리, 경방리의 각 일부를 병합)
  • 남본정(서부면 관전리 일부, 남부면 구리개리 일부, 미조정리 일부를 병합)
  • 경정(남부면 곽장리 일부와 도조리 일부를 병합)
  • 궁정(남부면 미조정리, 구리개리, 곽장리의 각 일부를 병합)
  • 남산정(서부면 관전리 일부, 남부면 구리개리 일부, 미조정리 일부를 병합)
  • 태평정(서부면 관전리 일부 지역 분리)
  • 서본정(서부면 관전리 일부와 북부면 성가리 일부를 병합)
  • 대화정(북부면 성가리 일부 지역 분리)
  • 만월정(북부면 이정리, 예빈리, 성가리 각 일부를 병합)
  • 고려정(북부면 지파리, 이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

의 13정으로 신설 및 변경, 개편되었다. 1930년(소화 5년) 5월 부(府)로 승격 및 분리, 개성부로 개칭하였다. 1938년(소화 13년) 4월 1일 부 구역 확장으로 인하여 개풍군 일부를 편입하여 4개정을 증설(增設)하니 다음과 같다.

  • 운학정(개풍군 영남면 용흥리 일부를 편입)
  • 덕암정(개풍군 청교면 덕암리 일부를 편입)
  • 황금정(개풍군 청교면 고남리 일부를 편입)
  • 사직정(개풍군 중서면 관전리를 편입)

이로써 이북5도위원회 기준 현 행정구역인 17정으로 개편된 것이다.

1945년(단기 4278년) 8월 15일 광복 이후 17정은 다음 해인 1946년(단기 4279년) 동월 동일에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로 17동으로 개칭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단기 4282년) 동월 동일에 시제(市制) 실시로 인하여 개성부는 개성시로 개칭된다.


- 출처: 1. 開城府勢一班(개성부세일반), 경기도 개성부 총무실, 단기 4281년(1948년)

          2. 조선향토대백과 10권 황해북도 편, 북측 조선과학백과사전 출판사, 남측 평화문제연구소 공편, 평화문제연구소, 2005년(2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