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수교거부정책을 내세우며 개화를 거부하던 대원군이 물러나고, 개화에 긍정적인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며 조선의 근대화가 시작되게 됨


그 과정에서



수백년을 거치며 도로에 수많은 무허가 건물이 지어지는 등 포화 상태가 된 낡은 도시 한성에 대한 개혁도 이루어지게 됨


당시 한성은 무허가 건물에 잡아먹힌 구불구불한 도로, 구시대적인 인프라 등 "제국의 수도" 라고 부르기엔 초라한 모습이었음

한성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더럽고 냄새나는 도시라고 악평했고


그렇게 이루어진 첫번째 개혁은 1895년 한성부윤 유정수의 "도로를 범하여 가옥을 건축하는 일을 일체 금하는 명령"을 통해 무허가 건축물의 신축을 금지하는 것이었음

그리고 4개월 뒤에는 내부대신 박정양의 "도로수치와 가가기지를 관허하는 건"을 통해 기존에 지어진 무허가 건축물의 건축 자재, 높이와 너비, 건물과 가로 사이의 거리를 통일하여 거리를 정돈했고


그 후 1896년 "내부령 9호- 한성내 도로의 폭을 규정하는 건"으로 황토현에서 흥인지문까지, 대광통교에서 숭례문까지의 큰 도로들을 침범한 무허가 건축물을 철거하고, 상가를 재정비하며, 도로의 폭을 규정하게 됨

같은 해 도로, 위행, 청소, 호적 등에 관한 내부훈령을 한성부에 내려 고시하기도 했고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방사형 도시체계를 만들게 됨

이는 흔히 워싱턴 DC를 모방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방사형 체계의 중심에 핵심적인 시설이 있는 워싱턴 DC와 달리 한성은 아무것도 없음

그래서 워싱턴 DC를 모방했다고 보기는 어려움

아마 시간이나 예산 등의 한계로 기존의 도로체계를 개조하는 선에서 그친 나머지, 이러한 수준의 도로체계를 만들지는 못한거 같음


근대적 제도 도입으로 당시 대한제국의 재정 상황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던건 사실이나, 대원군 집권기에 한번 박살난걸 복구하는 정도였기에...


여기까지가 도로 개조, 무허가 건물 철거, 건물 규정이었다면, 다음은 근대 설비 도입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차라고 할수 있음


전차 도입은 1880년대로 거슬러 감

서양 문물에 많은 관심을 보이던 고종은 미 대리공사 알렌과 상의 후 전차 설치에 관해 미국에 문의하려 했는데,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청의 위안스카이가 반대해 무산됨

그 후 1898년 2월 1일 대한제국 황실 주도로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고, 2월 15일 미국 기업 콜브란&보스웍 사와 전차궤도 부설 및 발전소 건설 등에 관한 계약을 체결함


한성전기회사는 1898년 서대문-종로-청량리 노선을, 1899년에는 용산-숭례문 노선을 그리고 1900년에는 숭례문-칠패길-의주로를 거쳐 서대문 전차 종점으로 회귀하는 순환 노선을 최종적으로 확정함

그리고 1989년 2월 22일, 한성전기회사는 전차 궤도 설치를 위한 도로 측량 사업을 시작함


아래는 당시 전차궤도 설치를 위한 측량 사업에 관해 "독립신문"에 실린 글임

"본회사가 농상공부 허가를 얻어 한성오서구역 안에 전기 로거(電氣路車) 건설함을 맡았기로 남대문에서 종로를 지내 며 동대문으로 좇아 홍릉내 해자 홍살문까지 전기로거를 먼 저 장차 건설할 터인데 외국기사를 청하여 와서 지금 길을 측 량하며 길옆에 표못을 세웠으니 연로 인민에게 고시하여 새로  베푸는 공역에 손해가 없으며 방해케 말게 하라"


1989년 9월 5일, 기존에 진행된 도시개조사업에 의해 넓고 곧게 다듬어진 도로에 이 전차 궤도는 3피트 6인치의 궤간을 가지는 전차궤도를 설치하는 기공식을 가짐

공사는 이듬해 1월에 끝남



전차 차량은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한 차대와 부품 등을 가지고 동대문 차고에서 조립하여 만들어졌음

처음에는 특별차량, 황실 차량 그리고 기본 차량 총 10대를 도입하였는데, 이중 8대가 기본형 차량이었음

기본형 차량은 가운데에 실내 객실이 있었고, 좌우에 개방형 객실을 가진 형태였고, 총 40명이 정원이었음


위의 승객용 차량과 별도로 화물 운송용 전차도 10대 도입함

이 중 3대는 상시 운용하여 석탄 등의 화물을 운반함


1899년 4월 까지 궤도, 차량, 발전설비 등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전차 개통을 준비하게 됨

5월 4일 전차 시운전이 시작되었고, 5월 17일 동대문에서 개통식이 열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식 대중교통이 운영되는 순간이었음





전차가 운행되는 한성의 모습


전차 매표소 사진


그러나 얼마 안 가 5월 26일 5살 아이가 전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시민들이 분노해 전차 두대를 불지르는 일까지 벌어짐

이로 인해 전차 운행은 일주일 만에 중지되게 됨

이는 최대 시속 24km/h의 전차를 제대로 된 경보장치 없이 허술하게 운영하다 발생한 사고로, 이러한 장치들을 설치한 뒤 운행을 재개하게 됨

경종과 ㄴ자형 방호기구가 설치된 전차 사진


이 과정에서 일본인 운전수들이 전차 운전수의 권총 소지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떠나자 미국에서 대체 인력을 들여오게 됨


2편에서 이어짐



자료 출처:

대한제국의 한성도시개조사업의 재평가: 근대도시개혁의 보편성을 중심으로

대한제국 근대화 정책의 상징- 전차/전등사업


[서울이야기] 덕수궁 돌담길(2) | 한국역사연구회 (koreanhistor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