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음식문화

유럽의 음식문화는 크게 남유럽과 북유럽/ 상류층과 하류층/ 농촌과 도시로 구분됨.

하지만 가장 큰 분류로는 남유럽의 Roman 모델과 북유럽의 Babarian 모델로 나뉘는 것.

또 육식과 채식의 양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계층적, 시대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음.


이제 두 모델을 비교할건데 그전에 로마의 자연분류 체계에 대해 알아야 함.

폴리스(도시)-아게르(경작지)-살투스(야지)-실바(숲) 이렇게 4단계로 구분을 하는데 폴리스는 문명사회, 살투스와 실바는 야만사회로 보았음.


Roman 모델

-그리스, 로마인 중심

-경작지(Ager)를 경제, 문화의 기초로 중시함

-문명사회의 인공적인 질서

-Culture를 선호함(자연+알파), 예시로 지중해 지역에서 빵, 죽, 포도주, 기름, 채소, 치즈를 주로 섭취했고 조리에 올리브유와 와인을 사용했음.

-여기서 밀, 포도, 올리브를 농업에서 가장 중요시 여겼고 원예, 목양, 어업이 그 뒤를 이음.

-또 빵을 중요시 여겨 야만인들을 빵을 통해서 '문명화' 하였음.

-음식은 절제가 미덕이며, 채식주의 기반 사상을 가지고 있음.

-기독교적 신념이 들어가서 수도원의 식생활을 바탕으로하는 수도원 모델도 있음


Babarian 모델

-게르만, 켈트족 중심

-야지(Saltus)를 선호함

-야만사회의 자연적인 질서

-Nature을 선호했는데 예시로 사냥, 어로, 채집 주류의 생활에 육류가 권력의 상징이라 음식의 야만성을 볼 수 있고 조리에 버터와 라드를 사용했으며 

맥주(Cerevisia)가 주요 음료였음

-우유, 치즈, 버터, 발효식품을 중요하게 여김

-야생 중심의 사회여서 항상 기근의 공포에 시달렸기에 Roman모델과 달리 폭식, 폭음에 긍정적이였음

-노르웨이 신화 등에서 돼지는 생명의 기원이였는데 여기서 숲을 다스리는것은 돼지를 기를 수 있는 능력으로 간주하여 귀족 모델이 있음

이제부터는 역사 순서대로 알아보도록 하겠음.


중세초기(5c 이후)

-로만 모델과 바바리안 모델/ 수도원 모델과 귀족 모델로 양분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게 됨


음식문화의 통합

-특히 교회의 지시로 육식이 금지되어 어류, 치즈, 식물성 기름을 섭취하였는데 이 식습관이 유럽지역간 통일성을 제공하였음

또 자연피해로 숲의 기근이 심각해지자 도토리나 민물고기도 주로 섭취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빵이 북유럽 식탁을 정복하였음.

당시 중북부 유럽에서 상류층들은 빵, 포도주, 기름을 먹는 등 로만 모델을 따랐으나 여전히 사냥문화도 유지하고 있었지만 하류층들은 전통적인 식습관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가 이어졌음. 그러나 남유럽의 하류층들은 고기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음


중세전기 음식문화의 특징

-음식은 신분차이를 상징/ 대표적인 양념은 후추/ 귀족음식과 농민음식의 구분

-빵문화와 고기문화의 분리로 5~6c에는 로마인과 야만인들이 공존하면서 육식문화가 전파됨, 7~8c에는 게르만족들은 여전히 비경작지와 야생상태의 자연을 사용하고 있었음

-이전까지는 빵의 가치가 높았으니 5c이후 고기의 가치가 높아지기 시작함


고기의 가치는 점점 높아져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프랑크족 법령에서 고기를 먹지않는것은 무장해제를 뜻할 정도로 전쟁수행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이였음. 또 육류소비에도 상류층들은 신선한 고기를 먹고 하류층들은 덜 신선한 고기를 먹는 등 사회적인 구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카롤루스 대제 시기에는 절제식습관과 고기식습관 사이에서 대립이 있기도 하였음.


자연의 이용

-세속귀족들은 야생상태를 선호했고 성직자들은 경작지를 선호하여 수도원에서는 포도, 밀 재배확대에 힘썼음

-숲의 이용은 강한 권력을 가진 계층에서만 독점되어서 평민들의 사냥은 금지되었고 목초나 도토리, 이삭줍기도 통제하였음. 결국 11c경 비경작지 사용권 제한으로 하층민들의 음식은 식물성으로 변하게 되었음.

-중간에 맥주와 포도주간에 갈등이 있기도 하였는데 북유럽에서는 맥주를 숭배하였고 포도주를 더러운 즙, 외국의 음료로 여기면서 거부하였으나 독일과 프랑스지역에서는 맥주와 포도주문화 두가지가 공존하는 문화가 이어졌음.


농업생산의 변화와 농민음식

-9c이후 삼림개간으로 경작지가 확대되었고 남유럽에서는 밤나무 심어 새로운 영양공급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곡물이 보관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비료의 부족으로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에 더 넓은 지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음

-11c 기근을 거치면서 농토의 중요성이 더 높아져 농토=빵이 나는 땅, 가족=빵을 같이 먹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음(여기서 Company라는 단어가 유래됨). 농민들의 음식은 보리빵, 검은빵+훈제나 염장고기가 되었고 귀족들은 흰빵과 신선육을 소비하는 문화가 나타났음.


검은빵과 흰빵은 계급에 따른 차이도 보여주는데 남유럽에서는 호밀빵을 저급취급했지만 북유럽에서는 호밀빵을 찬사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는 밀의 재배영역과 관련된것으로 추정됨. 

섭취적인 측면에서 보면 보리빵(검은빵)은 녹말이 부족해서 발효가 어려워서 주로 쿠키의 형태로 섭취하였음.


중세귀족의 음식

-꿩이나 자고새가 세련된 음식의 정점에 위치하였음

-향신료는 정향, 육두구, 후추, 생강, 계피, 사프란이 동방무역을 통해 들어와 이용되었음

-귀족들은 자신들의 식탁을 과시하기 위해서 먹기 전에 성밖 광장을 돌며 행진하는 문화가 있었음

+신대륙 발견이후에는 감자, 고구마, 토마토, 파프리카 등이 도입되면서 귀족들도 야채를 섭취하기 시작함


중세농민들의 음식

-식물성 기름은 유채씨, 아마씨, 올리브에서 얻고 동물성 기름은 돼지 비계나 라드를 통해 얻었음

-생선은 민물고기를 염장하거나 대구, 청어등을 건조시켜 섭취하였음, 부족한 단백질은 계란, 우유, 버섯, 렌즈 콩으로 보충하였음

-또 야채들은 농민의 음식으로 여겨져셔 야채도둑의 경우에는 크게 처벌받지 않았음


중세의 식탁문화

-로마와 그리스인들은 반쯤 누운상태로 식사를 했는데 이를 Triclinium이라고 부름

-전사 공동체의 경우네는 왕과 신하들이 다같이 식사하였음


향신료에 대한 광기(13c초)

-동방무역 등으로 경제가 성장한 지역에서는 궁정풍 매너나 연회가 탄생하기 시작했고, 이때의 향신료는 유토피아이자 욕망충족의 대상으로 가치가 매우 높았으며 의학분야나 종교적인 용도로도 사용되었는데 특히 후추의 가치가 매우 높았음.


분량상 이까지만 하고 다음편에는 14세기 이후부터 현대까지 음식문화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음.


1강-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