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문명-개요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 뼤놓고는 설명할 수 없음.

남북으로 긴 강은 위도마다 다른 환경이 조성되어서 통일된 문화권이 형성되기 어려운 점이 있음(메콩강 등)


나일강은 에티오피아 발원의 블루 나일, 탄자니아 발원의 화이트 나일 2개의 물줄고기 수단 인근에서 합쳐지는 형태를 보임

더 중요한 강은 화이트 나일인데, 탄자니아의 적도지대에서 우기때 범람한 물이 산악지대를 타고 오면서 실트라고 불리는 고운 흙들만을 가지고 이집트에 퇴적되기 때문에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처럼 별다른 관개시설을 건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매년 비옥한 토지가 형성되었음


또, 이집트 문명은 고립된 문명, 선(line)의 문명이라고도 할 수 있음

폭이 좁은 나일강 일대에 하이집트, 상이집트, 누비아(수단)문명이 나란히 있었는데 긴 선으로만 이어져 있다보니 하이집트는 누비아와 접촉을 못하는 등 복잡한 관계형성이 어려웠고 정치적으로도 계속 안정된 상태였음.

하이집트가 위에 있는 이유는 해의 방향때문에 하이집트가 위, 상이집트가 아래로 되었다는 말이 있음


수리시설을 완전히 안지은거는 아니고 샤두프 라는 기초적인 물을 긷는 도구를 제작하기도 하였음.


이집트의 환경

남북으로 1600km, 가로 105km(하류 델타지역)의 나일강 유역에 몰려있었으며 정기적인 범람으로 비옥한 흙인 실트가 쌓였고, 고립, 규칙성, 자급자족, 부유, 독립적인 성격을 지님

규칙성은 매년 정기적인 범람을 하는거고, 고립은 동서남북 모두 사막, 바다, 산악으로 막혀있었던거고 자급자족 체계와 부유함으로 외부 침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독립적으로 외부와 교역할 필요도 여기지 못하였음


이집트의 사회

기원전3100년 메네스가 하-상이집트를 통일하면서 왕조시대가 시작됨, 그 이전시대는 선왕조 시대라고 불리움

하이집트의 주요도시는 멤피스였고 상이집트의 주요도시는 테베였음

왕조시대의 연대를 보면 고왕국-중왕국-신왕국 크게 3시기로 나뉘어지는데 이들 사이마다 혼란기가 존재하였음

마지막으로는 그리스계 이민자집단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오게 됨.


이집트 문화

파라오(두 땅의 주인)가 통치를 하는 사회였고, 파라오는 하이집트의 붉은모자,상이집트의 흰 모자 2개를 쓰고 다녔음


피라미드, 현재는 수단 지역에 200개 이집트에 100개로 수단에 더 많이 분포하는데 이유는 수단지역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800년~기원후 100년 사이에 지어졌고, 이집트 지역은 기원전 3000~2000년 사이에 지어진것이 많기 때문.

지구라트같은것도 피라미드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으나, 흙으로 지어서 거의 안남아 있고, 이집트는 돌로지어서 대부분 보존되어 있음.


피라미드에 대해 좀 더 알아보면 초기에는 마스타바라는 정방형 구조물로 시작되었음.

지하에 시신을 매장하고, 위에 1단 기단을 쌓은 피라미드의 초기적인 형태로 볼 수 있음. 이후 기단을 여러층으로 쌓으면서 현재의 높은 피라미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음. 그 사이에도 계단식 피라미드, 기술부족으로 의도하지 못한 굴절형 피라미드가 있는 시기도 있었음.

피라미드 주변에 작은 피라미드들 여러개가 있는 경우도 많은데 이건 대부분 연습용 피라미드임.

피라미드에는 최고위층만 묻힐 수 있었기에 피라미드가 보편화된 시기에도 중상위층은 계속 마스타바에 매장되었음


미라, 이집트인들은 내세적 사상을 믿었기에 죽은 후에도 다시 돌아올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 미라를 제작하였음. 

미라의 주 재료는 암염(나트론)이 핵심으로 소금에 시신을 몇달동안 담궈두고 제작을 하는 방식임.

특징으로는 외관과 내관에 얼굴을 그리는 것이였는데 죽은후에 얼굴을 보고 자신의 원래몸을 찾는다고 믿었기 때문임.

유명한 미라로는 18왕조 12대왕인 투탕카멘의 미라와, 아멘호테프 1세의 미라가 있음

투탕카멘 같은 경우는 유전병 등으로 어린나이에 죽어서 피라미드가 아닌 마스타바에 묻히게 되었음.


기록문화, 이것도 내세적인 사상에 기반을 두는데 모든것을 기록해두면 부활한 후에도 같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임.

상형문자로 기록을 했으며 글을 모르면 그림으로, 그림도 그리지 못하면 토우를 빚어서 어떻게든 기록을 남겼음.


파피루스와 계급, 이집트의 평민들은 최대 기록원, 회계사 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읽고 쓸 줄 알아야 했음.

테베에서 발견된 린드 파피루스가 그 예시인데 다양한 수학문제들이 기록되어 있어서 신분상승을 위한 학습용도로 쓰였음을 알 수 있음.


이집트 문화의 특이점으로는 비슷한 문화상이 오랫동안 유지된건데 벽화에 항상 머리채를 잡고 때리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임.


왕조시대 이전에는 소규모 촌락들이 중심이였고 점차적으로 조그만 다수의 왕국이 형성된 구조였음

또 선왕조 시대에는 시신을 구부린채로 그냥 땅에 묻는 굴신장의 풍습을 가지고 있었음


플린더스 페트리의 상대연대 측정, 토기의 색과 단단한 정도를 통해 연대를 구분했는데 초창기에는 토기를 불에 굽지 않아 연한 색에 무른형식이였고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음, 후기로 갈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형식을 보였고 최종적으로는 돌을 깎아서 제작하는 단계까지 갔었음.


주요 유물

아비도스 소 토우, 기원전 3500년 아비도스에서 발견되었는데 소의 뿔이 앞으로 뻗어있는것으로 보아 야생 소였음을 알 수 있음, 이때는 소의 피를 섭취하는 문화가 있었음.


나르메르 팔레트, 기원전 3200년~3000년경 아비도스에서 발견됨

앞면은 하이집트, 뒷면은 상이집트를 묘사한것으로 앞면에는 때리는 모습, 전쟁하는 모습이 있고, 뒷면에는 동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 마차로 밞고가는 모습, 승리한 모습이 새겨져 있는것을 보아 이집트의 통일 과정을 묘사한 석판임을 알 수 있음.

비슷한 시기 전쟁터석판도 발견되었는데 여기서도 포로들을 끌고가는 모습이 기록되는 등 이 시기에 통일 상징하는 유물들이 다수 발굴됨


덴 왕의 신발 표식, 역시 아비도스에서 발견 됨

신발에 구멍이 뚫려있었음을 알 수 있고 기록된 문자를 해석하면 They shall not exist라는 뜻이 나온다고 함.


모노폴리 이론과 도박꾼 파산 이론

모노폴리 이론은 시작은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하나, 어느 한사람이 앞서나가면 그 격차를 뒤집지 못하고 스노우볼이 굴러서 최종승자가 된다는 이론이고 도박꾼 파산이론은 카지노는 자본을 잃어도 재기할 수 있지만 도박꾼은 자금을 잃으면 파산하게 된다는 이론으로 한쪽의 균형이 깨지면 그 격차를 뒤집지 못한다는 이론임.

선왕조시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활용되는데 시작은 모두 작은 촌락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마지막 한 촌락이 살아남아 승자가 되는 등 일리있는 이론임, 하지만 완벽한 이론은 역시 아님.


1강

2강

3강

4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