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 문명-개요

인더스 문명은 앞의 두 문화보다는 알려진게 매우 적음.

그 이유로는 인더스 문명의 중심지가 인도-파키스탄에 걸쳐있어서 정치 및 경제적으로 혼란한 지역이였고 또 문자해독역시 실패하였으며 바빌로니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등 뒤에 바로 국가단계의 정치체로 이어지지 못하고 어느시점에 퇴보한 다음, 수백년 후에 새로운 문명으로 발전했기 때문임.


인더스문명의 기반은 인더스 강을 기반으로 하는데 과거에는 시라스와티, 드라스와티 강 등 여러개의 강들이 있어서 이집트와 달리 강 유역의 면적이 넓어 면으로 된 문명을 형성하였음. 하지만 현재에는 지형변화로 대부분의 강이 사라진 상태.


인더스 역시 북은 히말라야, 동은 밀림, 서쪽은 산맥으로 고립되어있는 위치여서 카불-이슬라마바드 등 힌두쿠시 산맥의 협곡지대나 해양을 이용해서 메소포타미아와 교류를 하였음.


인더스 문화

메르가르, 기원전 6000년경 발생한 신석기 사회로 파키스탄 중부지역을 기원지로 함, 특징으로는 이원적인 농경(타지에서 전파된 작물+자생적인 농경)을 실시했고 밀,보리를 재배했으며 제부소를 길렀음.


모헨조다로, 기원전 3000년경 인더스 하류에서 발생한 문화로 '죽은자들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인구 4만명의 계획도시였는데 이사람들이 어디서 온건지, 지도자는 있었는지도 불명이라고 함.

유적은 고지대-저지대 유적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상류층이 고지대에 거주했을거라고 예상되나, 신분을 나타내는 유물이 전혀 발굴되지 않아서 확정지을 수 없고 집단지도체제일 가능성이 있음.

또 도시계획을 하다보니 벽돌의 크기나 길이, 추의 무게 등을 규격화하였고 직업 영역에서도 전문화가 일어났음.

규격화와 전문화를 하다보니 수메르 지역과 교역하는데 유리한 점이 있었음.

또 도시계획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상하수도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고, 집들이 벽돌집이였고 개개인의 욕실이 있었음. 공동으로 쓰이는 대욕장도 있었는데 이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추정 됨


하라파,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상류에서 발생한 문화로 유적이 여러개의 마운드로 구성되어 있고 스탬프를 사용하였음(문자나 교역 용도로 추정), 역시 도시계획, 개인욕실문화 등 모헨조다로와 유사한 형태를 보임.

무역으로는 금속기, 면화, 상아를 가지고 무역활동을 하였다.

또 하라파는 청동기 제작도시, 농업도시 등 여러개의 도시들이 각자 특화된 영역을 가진 도시국가 체계였음을 알 수 있음.


하지만 기원전 1650년경 갑자기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홍수, 가뭄, 지력고갈등 환경적 요인, 아리안인의 침입, 교역네트워크의 붕괴 등 여러가지 가설들이 있음. 이후 국가들이 모두 군장,부족사회로 회귀하고 말았고 기원전 600년에 들어서야 인도문화로 다시 부활하게 됨


중국 문명-개요

중국문명은 크게는 황하 문명과 양자강 문명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

더 중요한건 황하문명인데 황하지역이 중국 역사적으로 중원이라 불리는 정치,경제.지리적 중심지였기 때문,

하지만 항상 중앙에서만 발전한게 아니고 여러 문화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문명이 형성되었음.


환경으로는 황하 북쪽은 사막,삼림지역, 양자강 남쪽은 밀림지였이였고 서고동저 지형으로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흘렀음

황하 유역에는 고운 황토 퇴적층인 '뢰스'가 형성되었음.

주요 작물으로는 황하 지역에선 스텝지역에서 전래된 조,기장이 중심이였다가 이후 쌀로 바뀌었고 양자강 지역에선 초창기에는 야생쌀을 이용하다가 재배용 쌀을 기르게 되었음.


중국에서는 호모 에렉투스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는데 특히 저우커우덴(주구정)유적에서 에렉투스 인골 수십구가 발견되었으나 2대전중 잃어버리고 말았음.

사피엔스는 6만년 전에 정착하였고 사피엔스의 유적으로는 Danjangkou유적에서 사피엔스의 중기 구석기 유물들이 발견됨.

이 석기들은 이후에  몸돌을 깨서 만든 세석기(가느다란 석기)로 발전하게 되었고 뼈에 박아 쓰면서 포유류 사냥이나 살을 발라내는 용도로 사용됨.


중국 문화

중국 신석기문화는 초기에 용산문화가 발굴되고 이후 앙소문화가 발견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허무두, 베리강, 다원커우, 훙산 등 여러개의 문화들이 발굴되면서 다문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음.


학자 장광직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문명들은 처음에는 뚜렷한 독자적 문화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문화들 간에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이 네트워크가 한국과 일본에게 까지 퍼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이를 Chinese Interaction Sphere라고 부름


예시로 한국식 토기는 표면에 금을 그어서 빗살무늬 토기, 일본은 새끼줄로 문양을 만든 조몬토기, 중국지역은 동물그림을 그러거나 채색을 한 토기들을 제작하였음.


앙소문화, 기원전 5000~3000년 사이에 황허 유역에 있었던 문명으로 신분차이가 없었던 문명임, 주요 유적으로는 반포 유적에서 둥근집터와 화덕이 발견되었고 강채유적에서 장벽을 두르고, 큰 창고?가 있었던 마을 공동체가 있었으며 토기에 채색을 하고 동물이나 물고기 그림을 그렸음.


용산문화, 기원전 3000~2000년 사이에 황허 유역에 있었던 문명으로 사회분화와 신분차이가 있었음.

타오시 유적 무덤에서 특징이 나타나는데 87%의 무덤은 소형에 목관 등 부장품이 없었고, 12%의 무덤은 중형에 목관과 옥기 , 토기 등 부장품이 있었고 1%무덤에는 돼지뼈,(고위층의 상징), 악어가죽 북(교역의 흔적) 등이 출토가 되었음.

또 청동기 야금술, 옥기로 장신구 제작, 토기는 물레를 사용해서 손잡이가 달린 흑도를 제작하였는데 야금술이나 토기 제작 기술을 보아 전문화된 장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음. 이후로도 청동기를 이용해 제사용품을 제작하였음.


중국 여러 문명들은 신석기 후기 단계에 들어서 군장사회로의 사회 진전이 이루어 졌고 이 시기에 중심도시와 주변지로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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