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글 내용 선 3줄 요약

-라틴아메리카 축구의 역사를 보면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국가들이 그러했듯이 이민자들로 인해 시작되었다. 

-이민자나 대학이나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를 통해 축구가 전파되었지만, 전파를 주로 이끈 것은 각 국가마다 조금 다르다.

-이러한 전파 및 발전 과정에서 지리는 상관없어 보일 수 있지만, 꽤 크게 영향을 주었다.

전편: https://arca.live/b/city/67891099


주의사항: 여기서부턴 논문과 위키피디아, 그리고 연관된 사이트를 위주로 작성했지만, 스페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자료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지난 시간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우 이민자들, 그 중에서도 철도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이 각 지역의 축구 사에 영향을 주었으며, 여기에 이민자도 근대 축구의 형성에 기여했다. 그렇다면, 모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다 그런 걸까? 칠레는 어떨까?


본론2-칠레의 사례

 
2009년 칠레 교통지도, 출처: https://maps.lib.utexas.edu/maps/americas/chile_trans-2009.pdf


우선 칠레 영토를 보자, 모양이나 해안가의 길이가 매우 길쭉하다. 철도도 나름 활발하게 부설했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처럼 활발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은 커피, 우유 아니면 사탕수수를, 아르헨티나는 밀, 소고기를 내륙에서 항구로 수송하기 위한 철도를 부설했으며, 부설한 시기가 영국에서 축구가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축구가 유입되었다.


칠레의 자원이 나타낸 지도, 출처: https://maps-chile.com/chile-natural-resources-map

*농산품은 산티아고, 발파라이소, 콘셉시온 등 중부에 몰려 있고, 구리나 몰리브덴과 같은 광물은 북부에, 산림은 남부에 몰려있다.


칠레의 경우 와인이나 밀 등의 농산품을 운송하기 위한 철도를 부설했지만, 내륙에서 항구까지 거리는 짧았을 것이며, 특히 광물이 나오는 북부는 태평양 전쟁(칠레 대 페루와 볼리비아)이 끝난 1883년이 되어야 영토로 편입된 점도 감안하면, 이민자의 유입이 당연히 활발했지만, 철도 노동자의 비중은 다른 국가에 비해 낮았을 것이다. 여기에 William Wheelwright와 같이 미국인도 참여한 경우가 있어서, 결국 철도로 인해 축구가 유입된 것보다, 영국계 이민자들을 주축으로 축구가 전파된 것이 더욱 가능성이 높다.


  • 칠레 축구의 시?작-발파라이소 그리고 리그의 형성


산티아고 수도 주와 발파라이소 주 일부, 출처: 구글 지도


칠레 수도는 산티아고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바다와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어쨌든 내륙에 있기에 상파울루을 위한 산투스 처럼 이러한 도시의 항구 역할을 수행할 지역이 필요하다. 바로 발파라이소다. 발파라이소는 산티아고로부터 11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식민지 시기에는 칠레 지역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19세기 초반만 해도 인구가 4,000명에 불과했지만, 독립 이후 1865년 75,000명으로 증가했고, 1878년에는 발파라이소 바로 위에 비냐델마르(Viña del Mar)와 같은 신도시도 건설될 정도로 뚜렷하고 큰 성장세를 보였다. 이러한 증가세는 영국계와 독일계를 중심으로 한 이민자들이 이끌었고, 그러한 이민자를 위한 교회나 학교와 같은 서비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국계 학교를 중심으로 스포츠가 발달할 환경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1857년에 세워진 Valparaíso Artizan School Society을 모체로 1877년에 개편된 The Mackay and Sutherland School이 대표적이다. 1874년 기점으로 축구를 비롯해서 경마, 골프, 테니스, 럭비, 복싱, 농구 등 스포츠들이 들어왔고, 그 The Mackay and Sutherland School에서 만든 팀이 최초의 칠레의 축구 클럽으로 여겨진다.

 참고: 현재도 운영 중이다.


당시 75만 명의 노동자 중 50만이 숙취로 인해 결근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알코올 중독 문제가 심각했고, 룰렛과 같은 도박류 게임이 성행한 것은 덤이다. 당시 당국에서도 금지하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여기에 1879-1883년의 태평양전쟁, 1891년 칠레 내전 등 국내외의 혼란이 가중되는 등 사회의 역동성이 강했으며, 이러한 혼란에서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가 장려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892년 영국계 이민자를 주축으로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팀인 산티아고 원더러스(Santiago Wanderers)가 창단되는 등, 축구가 더욱 확산되었으며, 발파라이소에서 1895년 칠레 축구 연맹이 창건되었다. 이러한 팀들이 모이면서 1895년 현재 칠레 축구협회의 전신인 Football Association of Chile가 창건했다.


산티아고에 없는 산티아고 원더러스

*이런 이름 불리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불리다가 결국 이런 팀명으로 굳히게 된 가설 하나와, 1930년에 초창기 팀에 도움을 준 ‘Don Santiago’라고 불리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붙였다는 가설이 있다.


이러한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이민자의 유입이 칠레 축구사에 영향을 주었다. 1893년 스페인계 이민자들이 창단한 Unión Española, 1909년 영국계 이민자들 주축으로 창단된 Everton de Viña del Mar, 1910년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창단한 Audax Italiano, 팔레스타인인과 연관이 깊은 1920년에 창단된 Palestino 등 다양한 팀이 이민자들로 인해 창단되었다.


Unión Española, Everton de Viña de Mar, Audax Italiano, Palestino의 로고


이러한 팀들과 Colo-colo(리그나 컵 우승이 가장 많은 팀)와 같은 팀들이 모여서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한 프로축구리그를 1933년에 결성했고, 이러한 리그가 전국 리그로 확대되었다.

교육계의 경우 사범대를 주축으로 창단한 Magallanes(전신: Atlético Escuela Normal)같은 팀도 있으며, Club Universidad de Chile와 CD Universidad Católica같은 팀도 있고, 이 두 팀 간의 더비 매치인 Clásico Universitario는 칠레에서 유명하다. 칠레의 초기 축구사는 주로 이민자들과 그와 연관된 학교(초, 중등교육)로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대학 팀은 어디서 왔을까?


  • Club Universidad de Chile와 CD Universidad de Católica의 등장

  Club Universidad de Chile, CD Universidad de Católica의 로고


Club Univerisdad de Chile는 공식적으로 1927년에 창단했지만, 그 전신으로 여기는 단체가 있다. 대표적으로 1902년 Internado Nacional Barros Arana(국립 기숙학교)의 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팀이 있으며, 그 팀에 속해 있던 학생들이 모여서 1919년 칠레대학교(Universidad de Chile)의 스포츠 관련 당국의 승인을 받아서 팀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간 동안 각종 대회에 우승했으며, 1927년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시작된 리그에 참가했다. 리그에 참가하는 동안 많은 명성을 쌓았으며, 칠레를 대표하는 축구구단 중 하나가 되었다. 한편, 1980년까지는 학교 당국에 의해 운영되었지만, 1980년에 운영하는 주체가 축구단을 위한 법인으로 분리되었으며 (la Corporación de Fútbol Profesional de la Universidad de Chile (CORFUCH)), 2007년 컨소시엄에 의해 인수되었으며, 운영회사는 Azul Azul S.A.라는 주식회사로 변경되었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편 CD Universidad Católica는 1937년에 창단되었지만, Club Universidad de Chile와 마찬가지로 그 전신이 되는 팀이 있었다. 일단, 1909년 이러한 두 팀 간의 경기가 이미 진행되었으며(3-3), 후일 Clásico Universitario 불리는 칠레의 대표적인 더비 매치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교내에 여러 팀이 존재했고, 이러한 팀이 모이고 규모를 키워서 1927년에 학교의 공인을 받은 아마추어 팀이 창단했다. 뒤를 이어서 1937년에는 프로화가 진행되었고, 많은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 2009년부터 Cruzado SADP라고 불리는 법인이 축구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결국, 칠레 축구 초기사를 보면, 이민자의 영향은 강했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달리 철도가 큰 역할을 발휘하지 못했고, 아르헨티나와 유사하게 발파라이소와 산티아고라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이민자들과 그런 이민자들이 세운 학교(초, 중등)를 중심으로 당시 시대 상황(술과 도박을 대체할 건?전한 스포츠 육성, 그리고 정치 혼란)과 결합해서 성장했다. 한편, ‘대학’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팀들은 칠레의 축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창단했고 발전했지만, 칠레에 축구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보다 조금 거리가 있다. 

칠레의 초기 축구 사는 이렇다. 그럼, 다른 곳은 어떨까? 다음 시간에 계속... 


근데 언제 될지 나도 잘 몰?루

 

참고자료

Del Pozo, G. S., & Jeria, R. M. (2017). Los inicios del fútbol en el Puerto de Valparaíso y las causas de su popularización en Chile (1880-1915). Materiales Para La Historia Del Deporte, 15, 169–192. https://dialnet.unirioja.es/servlet/articulo?codigo=6050178

https://es.wikipedia.org/wiki/F%C3%BAtbol_en_Chile 

https://www.udechile.cl/udechile95-la-historia-de-nuestra-fundacion/

https://www.udechile.cl/sobre-el-club/

https://es.wikipedia.org/wiki/Historia_del_Club_Universidad_de_Chile#El_Club_Atl%C3%A9tico_Instituto_Nacional_y_su_equipo_de_f%C3%BAtbol

https://es.wikipedia.org/wiki/Club_Deportivo_Universidad_Cat%C3%B3lica_(f%C3%BAtbol)#Historia

https://cruzados.cl/news/detail/universidad-catolica-celebra-85-anos-de-historia/

https://cruzados.cl/origenes/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rail_transport_in_Chile 

https://asifuch.cl/una-pequena-gran-historia-de-santiago-wanderers/

http://www.memoriachilena.gob.cl/602/w3-article-635.html#documen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