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열별 스토리 


요즘 일본 도쿄에는 한국 관광객이 정말 많다. 제법 알려진 관광지에 가면 어김없이 한국말을 들을 정도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1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149만7000명, 이 중 한국인이 56만5000명(37.7%)으로 가장 많았다. 10명 중 4명 가까이가 한국인이라는 말이니 도쿄가 아닌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나선 관광 중에 일본 곳곳에 스며든 한국문화를 접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지하철에 휴대전화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일본인, 편의점에 진열된 한국 제품, K팝·드라마에 열광하는 드라마 속 등장 인물 등을 직접 확인하며 일본에서 한국문화가 일상화 수준에 이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해 봄직도 하다.

비교적 잘 드러나고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한 이런 문화와 달리 좀 더 세심히 살피면 드러나는, 우리의 ‘의도적인’ 관심이 필요한 일본 속 한국문화가 있다. 일본 곳곳에 있는 한국 문화재들이다. 주요 관광지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있어 일본 여행 일정을 짤 때 방문지로 고려해 볼 만도 하다 싶어 몇 곳을 소개해 본다.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최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관심이 높아진 곳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인 가마쿠라다. 고도쿠인(高德院)의 가마쿠라 대불(大佛)은 가마쿠라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이 빼어난 불상의 뒤편 정원에 간게쓰도(觀月堂·관월당)라는 건물이 있다. 고도쿠인은 간게쓰도를 “서울의 조선왕궁에 있었던 것인데 1924년 (일본 기업가인) 스기노 기세이씨가 기증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건물이 조선궁궐 건축이 맞다면 어떻게 이런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것일까, 라는 의문을 떠올려 볼 만하다.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네즈미술관은 뛰어난 전시품은 물론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을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이 미술관이 입구에 세워 둬 관람객이 처음 접하는 전시품은 한국의 장명등(長明燈·묘지, 건물의 마당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세운 석등)이다. 다음달 31일까지 진행되는 기획전 ‘불구(佛具)의 세계’에는 한국 문화재 4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불상을 안치하는 용도로 사용했던 조선 초기 분청자기는 전시대를 따로 설치해 미술관 스스로 특별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곳은 세계적 예술 가치를 인정받는 고려 불화의 주요 소장처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도쿄 메구로구의 일본민예관이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일본민예관 건물은 차곡차곡 잘 깃든 오랜 시간이 느껴져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설립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공예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데, 약 1600점의 한국 문화재가 있는 곳이라 우리에겐 각별하다. 1916년 지인이 선물한 조선 도자기에 매료된 야나기는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세상을 뜰 때까지 한국 전통문화의 세계적 우수성을 역설했던 인물이다. 그가 1921년 발표한 글에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의 한류와 한국어 열풍을 예언이라도 한 듯한 부분이 있어 흥미롭다.

“여러분 가운데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가 나온다면 세계의 모든 사람은 앞을 다투어 조선어를 연구할 것이다.”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볼 때면 두 나라의 길고, 깊은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역시 일제강점이라는 악연이다. 그 시절은 지금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어 양국 관계의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한국 문화재 중에서도 당시 공공연하고, 광범위하게 자행된 약탈의 결과로 지금까지도 일본에 남아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동시에 일본민예관처럼 우리가 좀 더 관심을 주고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인연이 있다. 그 엄혹한 시절에도 양국이 진정한 우정을 바탕으로 공생하기를 꿈꿨던 일본인의 선한 의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멀고도 가까운 일본’이 일본 속 한국 문화재에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