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방)


2021년 5월 11일 새벽, 훈련소 입소 첫날밤 02시 불침번을 서면서 결심했음.

이 거지같은 곳을 나가게 되면 반드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어디론가 멀리 갔다오겠다고.

여행다니는 걸 좋아하긴 해도 그 전에는 딱히 장기 여행을 갈 생각은 없었는데, 통제되고 억압된 환경에 대한 반발심리로 결심이 서 버린 거지.


상병 즈음 대충 구상해놓았던 여행 루트. 원래는 이스탄불에서 출발해서 지중해를 한바퀴 돌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걸 구상하고 있었는데, 계속 정보를 찾아 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이나 비용으로는 택도 없다는 걸 알고 유럽 횡단 정도로 타협함.

여기서 더 찾아보니 겨울에는 두브로브니크-바리 배편이 끊긴다길래 몬테네그로를 거쳐 알바니아까지 가서 배를 타기로 했음.



그렇게 대충 지도에 선만 그리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7월 말에 코로나 때문에 격리당했을 때 덜컥 티켓을 결제해버림.

왕복 125만원 정도 나왔는데 아마 미리 좌석지정만 안 했어도 더 싸게 살수 있었을듯.

그래도 창가쪽 좌석 미리 알박기해둔 건 잘한것 같음.


참고로 저거 캡쳐했을 당시에는 출발 날짜가 11월 20일이었는데 전역하고 바로 가는건 좀 그런것 같아서 11월 25일로 미룸.


계획을 짜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어차피 그때 가면 반드시 꼬일것 같아서 계획을 짤 생각은 없었지만, 아버지가 어디어디 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며 계획 간단하게라도 안 짜면 여행 안 보낸다고 하시길래 이런 식으로 간단하(+고 성의없)게 계획을 짜둠.

너무 성의가 없어서 4장 다 보여주기는 좀 부끄러워서 한장만 올림.


여행 일주일 전쯤부터 카메라도 사고

배낭도 사고(같이 온 태극기가 마음에 안들어서 군복에 붙어있던 걸로 새로 붙임)

옷도 군대식으로 정리해서 챙김.

대충 가져간 옷은 상하의 각 3벌, 양말 6켤레, 수건 5장. 


이외에 챙긴 물품은 기억나는 건 멀티탭, 충전기, 어댑터, 노트북(+충전기), 예비용 스마트폰, 휴대용 티슈,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 비상약(지사제, 해열제, 붕대, 반창고 등), 여권 사본, 코로나 음성 확인서(혹시몰라서 들고갔는데 한번도 안꺼냄), 노트&필기구, 보조배터리팩 정도임.


여권이나 신분증, 유로화, 예비용 체크카드는 복대에 넣고 다님.


카메라 사고, 휴대폰 사고, 휴가때 이곳저곳 여행다니거나 약속에 불려가서 군대에서 모은 돈이 생각보다 많이 안 남았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300만원의 자금 지원을 받음.

그래서 총 여행 경비는 800만원 정도.


11월 25일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탐. 그 전날밤에 월드컵 경기를 보기도 했고 조금 긴장해서 그런지 5시에 일어나야 했는데 3시쯤에야 겨우 잠들수 있었음. 늦게 일어나서 비행기 못 탄다던가 하는 불상사는 없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음.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인천공항 1터미널에 도착했음.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어아스타나 체크인 카운터가 열렸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전부 한국인처럼 보여서 그래도 많이들 가는구나 하고 안심했다가 대부분 러시아어(아니면 카자흐어?)를 쓰고 있어서 좀 쫄리기 시작했음. 

그래도 별 문제 없이 체크인을 끝내고 출국심사도 10분만에 마쳤음.

그동안 공항에서는 오래 기다렸던 기억밖에 없어서 내가 지금 제대로 한 게 맞는지 불안했던 것 같음.


그렇게 두시간 정도 밥도 먹고 면세점도 돌아다니면서 기다리다가 비행기 탑승


잠을 거의 못 자서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기내식이 나올 때까지 버텼다가 기내식 먹고 바로 수면모드로 전환.

옆자리에 아무도 없길래 좌석 3개를 써서 담요 덮고 숙면을 취함. 다들 그렇게 하더라고.


일어나보니 어느새 알마티에 도착.

여기서도 하루쯤 머무를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음.


나름 한 국가의 최대도시에 위치한 공항인데도 알마티 국제공항의 시설은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음. 사진은 2층의 상점가인데 음식점 비슷한 곳이라고는 스타벅스 정도가 전부고, 1층 대기실에는 의자 빼고 아무것도 없었음. 


충주공용버스터미널 선에서 정리가능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음.


잔뜩 긴장한 데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뇌정지가 온 상태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조지아에 거주하시는 한인 노부부의 도움을 받아 겨우 트빌리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데 성공함. 


비행기 좌석에 앉아 이제 좀 휴식을 취하려고 했는데 앞자리, 옆자리, 뒷자리가 모두 중국인.

일부의 사례를 보고 일반화하기는 싫었지만 앞자리 사람은 말도 없이 자리를 뒤로 젖히고, 뒷자리 사람은 굉장히 시끄럽게 떠드는 걸 보고 뭔가 좀...그렇긴 했음.

옆자리 사람은 그래도 조용하고 괜찮은 것 같았는데 바닥에 침을 뱉는 걸 보고...

주변 사람들 때문에 화가 많이 나기는 했지만 쪽수에서 밀렸기 때문에 뭐라 말도 못하고 기내식만 먹은 뒤 눈을 붙였음.


트빌리시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너무 정신없어서 숙소 들어가기까지 사진도 못 찍음.


일단 공항에서 환전을 했는데, 환율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함. 

원래는 유심을 시내에서 구입할 생각이었지만 택시 어플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구입함. 

공항을 나서자마자 몰려드는 택시기사들은 40~50라리(2만~2만5천원 정도)를 불렀는데, 이건 여행 초짜인 내가 봐도 눈탱이라는 느낌이 딱 들었거든.

보통 조지아에서는 얀덱스(Yandex)나 볼트(Bolt) 어플을 많이 이용하는데, 값은 얀덱스 쪽이 더 싸지만 서비스는 볼트 쪽이 더 좋음.

그래도 좀 편안하게 가고 싶어서 볼트 어플로 택시를 부름. 가격은 16라리(8천원 정도). 분명 운전이 덜 거칠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이었는지 부산 택시 수준의 엄청난 속도로 도로를 질주했음.


근데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니 조지아에서 이 정도면 상당히 정숙한 편이었던 것 같음.


11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숙소 근처. 비주얼만 보면 치안이 굉장히 나빠보였지만 의외로 괜찮았음.

숙소 밑에는 SPAR도 영업중이었고, 건너편에 있는 헬스장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하는 걸 보고 안심함.


최근 들어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콜라가 1000원 정도 하는 걸 보니 납득 가능했음.

단순히 수입품이라 그런 걸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생이었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문맹? 

그래도 읽는 법 정도는 알아두려고 했는데 어차피 읽을 줄 알아도 뭔 뜻인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너무 어렵게 생겨서 포기함.


다사다난했던 첫날은 고양이 사진과 함께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