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오딘지엠의 타락과 그 이후 쿠데타의 연속으로 혼란만 초래했던 군정, 그리고 그 이후 집권한 응우옌반티에우의 별로 나아진 게 없는 통치 능력에 남베트남 사람들이 환멸을 느꼈다는 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음 

하지만, 그들이 결코 북베트남에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적대를 하지 않았다는 데에는 과장이 심하고, 반론의 여지가 만만치 않음 애초부터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적대를 안했으면 베트콩이나 북베트남이 학살을 안했겠고 남베트남을 멸망시키고 멀쩡한 남베트남 사람들을 수용소에 안보냈겠지? 


이에 대한 예시를 들자면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과 가장 많이 교전한 것은 미군도 남베트남 육군도 아닌 수십만에 달하는 남베트남 민병대원들이었음 

이들의 대다수는 징집병이 아니라 자원해서 입대한 모병이었는데, 이들 중 지방군들은 각 성의 통제를 받으며 고향 성을 지키는 풀타임 복무 병력이었고, 시민군들은 고향 마을에서 농사꾼 등의 직업에 종사하다가 베트콩이 쳐들어오면 총을 들고 맞서싸우는 파트타임 복무를 하는 병사들이었음 


시골에 사는 민간인들의 가족이나 친척, 이웃으로서 각 성의 소규모 도로나 하천, 각 마을을 방위했던 이들 민병대원들은 남베트남 시골로 베트콩 병력을 침투시켜서 마을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보급을 챙기는 전술을 쓰던 베트콩들에게 엄청난 골칫거리였고, 따라서 많은 사상자를 냈음 게다가 미국과 남베트남 정규군에게 집중되었기에 미국 군사지원단이 본격적으로 민병대원들을 육성한 이후에조차 열악한 보급과 훈련을 받았고 중화기도 거의 없는 수준이었으며, 화룡점정으로 봉급마저도 정규군보다 훨씬 적게 받음


하지만 이런 열악한 지원과 형편없는 봉급, 그리고 베트콩들의 공격 집중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는 위험한 환경이라는 삼중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본격적으로 민병대 훈련에 나선 1965년 이래로 민병대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함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전시동원병력이 아니라 '모병'이었음 즉 저런 형편없는 조건 속에서도, 고작 인구 2천만 정도의 나라, 그것도 주 산업이 노동집약산업인 농업인 나라에서 70만 명을 몇 년만에 넘길 정도로 병력 충원이 빨리 됐다는 것은, 그만큼 남베트남 민중들이 자기네들 정부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북베트남 정권과 베트콩은 더더욱 증오하며, 따라서 그들의 고향을 베트콩으로부터 지킬 의지로 충만했다는 것을 의미함 그리고 그 결과 남베트남 민병대는 베트콩과 북베트남에게 인명 피해를 가장 많이 입힌 군대가 되었음


그러니까 즉 남베트남 민중들이 북베트남과 베트콩에 대항할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님 오히려 민중들의 항전 의지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자기네들 정부나 군대보다 훨씬 높았으나, 무능한 정규군이 지원의 대부분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군 또한 정규전에 치중하는 바람에 이들에 대한 지원이 열악했던 등 여러 악조건이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