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임시정부 탐사기 - 4일차

'거기까지 몇시간이 걸리는데 뭐라도 좀 먹어야지.' 나는 한숨을 내쉬고 세면대로 향했다. 부스스한 머리는 어제 머리를 잘못 말렸는지 하늘로 솟아 있었다. 머리를 적시다시피 물을 뭍히고 짐을 챙겨 형과 함께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이미 선생님을 비롯해 거의 모든 인원이 있었다.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너희 지금 일어났니? 카드키는?'

'어... 그게...'

'내가 챙겼어. 여기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호텔에서 떠났다. 석식을 먹지 못한채로. 석식이 어땠냐고 물어도 모두 '그저 그랬다' 라고 했지만 어찌 그게 남의 생각이지 내 생각이던가. 나는 가방에서 에너지 바 몇 개를 꺼내 까 먹었다.

그날 우리는 항저우를 떠나 난징으로 떠났다.

난징. 이제향 위안소 유적 진열관과 난징대학살 역사관이 있는 곳. 참혹한 역사가 일어났던 그곳을 가 비극의 순간들을 몸소 보게 될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다.

항저우에서 난징까지는 약 4시간이 걸렸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모두들 힘들어했다. 피곤에 못이겨 나도 모르게 새우잠을 잤다.

긴 시간이 걸렸기에 우리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다. 나는 복숭아 맛이 나는 홍차 음료를 하나 사고 105위안 짜리 선물용 녹차를 하나 샀다. 티백형으로 담긴 줄 알았는데 그냥 말린 녹차가 팩에 담긴 것이었다.

우리가 난징에 도착해 처음으로 간 곳은 리제향 구지 유적진열단. 이제향 위안소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짐을 검사받고, 신분 확인등의 까라로운 절차를 거쳐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선배는 슬리퍼를 착용하고 있어 출입이 제한되었다. 아픈 역사를 알려주는 곳이니 만큼 보다 엄숙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제향 위안소의 내부로 들어서자 마자 뜨거운 난징의 햇빛이 벽의 아크릴 눈물을 선명히 비추고 있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를 찍은 것으로 자주 사용되는 사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상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아크릴 눈물이 벽을 타고 흐르는 모습.)

(이제향 위안소에는사진의 오른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상이 전시되있다.)

(위 사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형상화한 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사진을 전시해놓은 이른바 '통곡의 벽', 위 사진에 나오는 70명의 피해자 분들중 30명이 한국국적이다.)

이제향 위안소 유적진열관은 평안도 출신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에 의해 건립되었다. 당시 위안소로 8개 건물이 쓰였는데 이중 6개 건물을 복원해 그 안에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저질렀던 만행과 영상 자료들을 구비해놓고, 당시 쓰였던 잡기들을 복원해놓았다. 박영심 할머니가 생활했었던 19번 방까지도. 위안소 진열관의 내부는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복도가 넓은 감옥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위안소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성병을 검사하기 위해 쓰인 성병검사기, 위에 올라가 다리를 벌리고...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보기만 해도 성적 수치감과 모욕감이 드는 성병 검사기를 보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를 일제가 운용한 규모를 알려주는 사료와 그 입증 자료들을 보고 나는 역겨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특히 내부에 전시되어 있던 '돌격 1호' 콘돔이 정말 뇌리에 박혔다. '돌격 1호' 콘돔의 제조사 오카모토 사는 이 제품을 일본 육군 위안소에 공급하며 성장했다.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전범기업이다.

(위안소 내에서 쓰인오카모토 사의 돌격 1호 콘돔. 이를 변형한 오카모토 사의 제품은 현재도 팔리고 있다.)

현재도 이런 전범기업의 제품이 대한민국 시장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고, 국내 시장에서 판매율이 2위에 해당할 정도로 잘 팔린다는 것은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나는 전시실에서 전시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과 나는 계속해서 전시실을 돌아보았다.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흘러가 관람을 그치고 다음 장소로 떠나야 했다.

전시실을 떠날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 조각상의 눈물을 닦아드렸다. 눈물은 아무리 닦아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닦아드려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조각상을 가만히 응시하며, 전시실을 나왔다.

현재 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수는 25명이다.

이들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기억해주겠는가? 그리고 보호해주겠는가? 그리고 흐르는 눈물은 누가 닦아주겠는가?

여러모로 마음이 착잡해진채로 우리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다음 장소는 주화대표단. 정확한 명칭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이다. 이곳에서는 광복 이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내 한인교포들의 생명 및 재산 보호, 귀국문제들을 해결했었다. 사실 이곳 난징에 있는 주화대표단은 국민당 정부가 난징으로 수도를 이전할 때 옮겨온 곳으로 최초의 주화대표단 건물은 충칭에 위치한다.

주화대표단 본부는 외관상으로 보존이 매우 잘되있었고 해설집에 있던 사진과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표지판이 있어 기뻤다.

(해설집에 있던 주화대표단 본부 사진.)

중식을 먹으러 한식당(이름은 무궁화.)에 갔다. 김치전, 김치찌개, 김치가 나왔지만 맛은 그닥... 김치는 이세상 김치가 아니었고 김치찌개는 그냥 맛이 없었다. 1일차에 먹은 한식과는 확실히 대비됬다.

(제육볶음은 맛있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난징총통부이다.

(난징총통부의 모습)

난징총통부는 다들 익히 알고 있듯이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사용한 총통부이다.

이곳은 중공이 점령 후 장쑤성 정부청사로 쓰다 현재는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난징총통부 내부는 매우 넓었고 뒷편에는 연못이 있는 큰 정원도 있었다. 내부 건물에는 관련 집무실등을 공개해놓았지만 너무 덥고 사람이 붐벼 많이 둘러보지는 않았다. 우리는 더 둘러볼 것이 없어 집합장소로 먼저 가 대기하려 했지만 너무 넓어서인지 길을 잃었다 약도를 찾아 보고 겨우 겨우 집합장소로 올 수 있었다.

약속한 시간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어 집합장소 좌측에 위치한 기념품 점에 들렀다.

나는 물건 몇 개를 둘러보다 부채 하나를 샀다. 튼튼하고 예쁜 매화가 그려져 있는 것이라 가격이 20위안 치고는 썩 괜찮았다.

(난징총통부에서 구매한 매화가 그려진 부채.)

더운 날씨에서 이 부채는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우리는 난징총통부를 나와 부자묘로 향했다.

(회청교의 모습.)

회청교에 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일대에 김구 선생이 주애보와 같이 살던 피난처가 있었고, 이곳에서 주애보와 김구 선생은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되었다. 김구 선생은 훗날 회고록에서 주애보에게 챙겨준 것 없이 그저 떠나보낸 것을 매우 안타까워 했다. 주애보의 후손과 그녀의 신원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피난처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았기에 간단히 주애보와 김구 선생의 일화를 간단히 소개하는 것에서 그쳤다.

얼마 후에 부자묘에 도착했다.

(부자묘 입구)

부자묘는 공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자 사당이다. 중국에서는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난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근데... 내가 공자의 유교사상에 반감을 가지기도 하고. 별로 내부는 감흥이 없었다. 사당 주변에는 꽂을 수 있는 초를 팔고 있었고 동전을 던질 수 있는 물이 찬 항아리? 가 있었다. 공자의 사당이 이런 관광지로 변모하며 그 의미가 퇴색되는것이 한편으로는 우스웠다. 부자묘를 나와 우리는 부자묘 거리에서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부자묘 거리 모습.)

자유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중앙반점으로 이동했다. 영어로는 Centre Hotel이다. Central Hotel도 근처에 있는데 이곳은 중앙반점과는 전혀 다른 호텔이다. 영국식 영어로 쓴 Centre Hotel이 바로 김구와 장제스가 만나 한국의 독립에 논의한 곳이다.

(중앙반점의 위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묵고 회의를 진행한 곳에서 내가 있을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한국의 광복에 기여를 한 장제스의 한국 독립 주장을 이끌어 낸 곳이니.

우리는 방에 짐을 풀어놓고 서둘러 만찬장으로 향했다. 만찬장에서는 각 학교 탐사단들이 한데 모여 각 탐사단의 대표들이 나와 지금까지의 최종 소감을 말하는 최종 결산 형식으로 진행됬다.

모든 탐사단의 발표가 끝나고 만찬이 시작됬다. 만찬에는 만둣국, 마파두부 등의 다양한 요리가 나왔다.

(마파두부는 존맛)

그나마 만족할 만한 식사를 끝내고 나서 중앙반점 앞으로 각 학교 탐사단 전체가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다음으로 우리 탐사단은 중앙반점 근처에 있는 까르푸로 가기로 했다. 중국에서 마지막 쇼핑이었다.

돈이 가져온 것중 꽤 많이 남아서 파인애플 숏케이크와 차들을 사기로 했다. 내가 왜 그랬지... 우육면이나 간식류를 더 살걸...(선배들은 다 그것을 샀는데)

남은 돈이 그래도 230위안 있었는데 왜 내가 그걸 안 썼을까...

(맨 아래서 왼쪽이 용정차, 붉은 라벨이 있는게 홍차, 갈색 라벨이 있는게 보이차. 회색 라벨도 있었는데 그건 모두 선물했다.)

(파인애플 숏케이크. 이게 존맛인데 많이 샀어야 했는데 흑흑)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도 호들짝하시고

선배님들도 호들짝하시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다녀온 후 단체사진.)

이후 숙소로 돌아가 말끔히 씻고 모두 나와 선배가 있는 방으로 모였다. 근데 숙소에서 담배냄새가 났다. 왜 숙소에서 담배를 피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앙반점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는 달리 숙소는 전체 일정중에서 가히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캐리어에 담을 짐이 많아서 한국에서 가져온 간식을 모두 꺼내어 모두와 나누어 먹었다. 그래도 캐리어 공간이 부족해 가방에 짐을 겨우 쑤셔넣었다. 컵라면과 간식을 먹으며 우리는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대입 관련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학교 선생님들을 까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은 불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