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ncms.nculture.org/story-of-our-hometown/story/8824?jsi=wtLKQutSv/5NQeZRR/Ijbzc6no7vKHKrplEt8ebwxajrS0wZTlYC4WzIwFxYJvx3Qd1mYa2CSThay97Be4UAw




『진해대시가건설전경』

진해가 동양 제일의 요충지임은 예로부터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는 곳이며, 진구황후(神功皇后)*의 삼한 정벌에 있어 이 땅을 첫 번째 근거지로 삼았다. 쿠빌라이 칸*은 십만의 군사를 모아 우리나라를 침공할 때, 병선 수백 척을 진해만에 띄웠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을 위한 군사를 일으켰을 때 이 만(湾)을 유일한 작전 근거지로 삼았다.

 가깝게는 일본해해전을 앞두고 도고 제독*이 000 000 수[000 수 판독불가]를 모아서, 멀리서 오는 적국을 공격한 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다. 이제 이 중요한 길은 세계 제일의 대군항을 만들기 위해 제국 해군이 건설에 착수하고 병행해서 대시가를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진해는 동양에서 손꼽히는 대군항으로서의 견줄만한 운명이 펼쳐지고 있다. 


『진해군항경리부』

진해군항은  47년도=1914년 (메이지 44년에는 메이지천황의 죽음을 미리 예상하지 못했다)에 개청 예정이며, 현재 당국의 강력한 노력 아래 건설되고 있다. 


『진해군항수뢰단』

웅장한 군항 건설사업은 당국의 열성적인 수완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이들 대청사(大廳舍)의 건설은 진해의 위상이 되고 있다. 


『사이토만 부두』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해군성은 특히 큰 호의를 보이며 부두를 축조했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 상륙하는 사람, 물건, 화물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 이 부근의 번영은 상상을 초월하여, 지극히 높은 값어치가 있다는 평가가 있다.


『사이토만 공동하역장』

사이토 만은 시가지와 가장 가깝고, 큰 배나 아주 큰 선박의 정박에 적합하므로, 시가지에 공급하는 모든 물자는 이 항구에서 뭍으로 운반되고 있다.


『이리후네초 사초메』

소야가와*의 원류는 북서쪽 산간에 있으며, 츠키0[0은 판독불가]초, 가와조에초*, 이리후네초*를 지나 사이토만으로 유입되고 있다. 정차장 북쪽에서는 해군 용지와 시가지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천의 양쪽 기슭에는 벚나무 등을 식재하여 진해의 에도가와(江戸川)*가 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보이는 건물은 진해의 유일한 사진점, 나카야마 사진점이다.


『고바이초』

고바이초는 소야가와 하천과 우메가에초의 중간에 위치한 가로질러 가는 길로, 마을의 길이는 서너 개 동네에 지나지 않지만 이름은 몸을 나타낸다*는 속담의 이치대로 크게 발전하려는 경향이 있다. * 고바이초 : 현 익선동 *우메가에초 : 현 회현동 *「이름은 몸을 나타낸다」: 일본의 속담으로 이름을 정하면, 그것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의미로 다른 말로는 「이름은 실체를 상징한다」는 의미임.


『경화동선인시장』

경화동은 진해 시가를 건설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이주시키고자 하였으며, 특히 시의 동쪽을 구획하여 건설한 것이 조선인 시장이다. 진해 시가의 조선인 인구는 1만 2천이었다. 행암만 부근을 둘러싸고 거주하고 있었다. 사진은 시장의 번성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서 이 부근 일대는 행암만의 향후 발전과 함께, 장래에는 대공업지가 될 운명을 가지고 있다.


『우메가에초』

우메가에초는 고바이초와 와카마쓰 도오리 사이를 통하는 횡단도로로, 상업이 매우 번성하고 있다. 사진은 가옥의 망루를 건축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쿠가와초』

기쿠가와초는 미나미쓰지의 북쪽 기점으로 스에히로초, 코노하나초, 다치바나 도오리등을 횡단하고 있다. 시가는 겹겹으로 층을 이룬 가옥 등이 즐비하여, 지금도 활발하게 가옥을 건축하고 있다. 거주자들은 자비로 도랑이나 수로를 만들어 사진과 같은 완전한 하수를 만들고 있다.


『다치바나 도오리 2초메』

다치바나 도오리 2초메는 나카쓰지의 중심에 위치해, 상업의 요충지가 되려 하고 있다. 사진은 오오이케 여관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멀리 남쪽으로 사이토만을 전망하는 경치다.


『나카쓰지 오오에노키』

나카쓰지에 날개를 펴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큰 팽나무는 진구황후가 삼한정벌을 할 때 백성들에게 000[000 판독불가]을 당했다는 설이 있다. 사진은 사이토만에 입항하는 배를 바라보며, 아울러 일본인과 조선인의 왕래를 표현한 것이다.


『진해임시소학교』

이주민의 놀라운 증가와 함께, 학교나 기숙사의 증가를 도모하지 않으면 되지 않았다. 연내에는 그 수가 2천명에 달할 기세이므로, 사진의 본 교사 건축 설계에 착수했다.



『다치바나 도오리 1초메』

사진은 다치바나 도오리 1초메이며, 가옥은 이미 늘어서있어, 시가의 질서는 완전히 갖추어졌다. 또 시의 미관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노점 개설을 허가했다. 진해 식민정책의 최근 전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2회 대하지 지균공사』

사진은 제2회 대하지 정차장 용지의 땅고르기 공사이며, 일본인 감독하에 조선인 수백 명을 부리고 있으며, 놀랍게 활동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것은 벽돌공장이다.


『제2회 대하지 건축공사』


사진은 제2회 대하지의 건축공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목재는 모두 쓰시마, 내지, 만주 방면에서 수입한 것을 사용하며, 목수는 쓰시마에 체류하고 있는 목수는 물론 내지에서도 와 있었다. 현재 한창 건축하고 있는 중이다. 이 건축공사가 8월 말일까지 준공되면, 진해시 인구는 3만여 명에 이를 것이다.


『다치바나 도오리 5초메』

다치바나 도오리는 이쓰쿠시마 도오리와 연결되어 시가지를 북쪽보다 남쪽으로 관통하는 대도로로 되어 있다. 장래는 긴자* 거리가 되려고 하고 있다. 사진은 5초메로부터 나카쓰지의 큰 팽나무를 멀리 바라보며, 북쪽의 제3회 대하지를 전망하는 곳이다.


『이리후네마치 2초메』

사진은 이리후네마치 2초메의 소야가와(征矢川)가, 사이토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광경이다. 또 건축된 가옥의 아름답게 갖추어진 특출한(두드러진) 모습을 보아 주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소야가와를 총독부에서 완전히 치수공사를 할 계획이며 준공 초기에는 하천의 물을 막아 저수지를 설치하고 소방용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이리후네초: 현 신흥동 *소야가와: 현 여좌천


『하쓰네초』

하쓰네초는 나카쓰지를 동서로 횡단하고 있어, 제1회 대하지의 중심을 형성하는 도로이다. 동쪽으로 가부토야마공원지를 전망할 수 있다. 그림은 진해 유일의 요릿집 다마가와이다.

*하쓰네초“ 현 편백로 *나카쓰지: 중원로터리 *가부토야마공원: 제황산공원


『아이오리 도오리』

아이오리 도오리는 동북에서 서남쪽으로 나카쓰지를 비스듬히 사이에 두는 도로이며, 동북의 한쪽 끝 정차장부터 석탄 두는 곳에 이르는 철도를 설치할 예정으로 되어 있다. 그림은 동북쪽에 면해 아득히 먼 벽돌공장 부근을 전망하는 곳으로, 요컨대 이 부근은 제1회 대하지의 입구이다.

*아이오이 도오리 : 현 벚꽃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