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은 그야말로 고대 그리스 문명의 지식의 총체였으며, 그곳에는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낼 정도로 막대한 수준의 지혜가 보관되어 있었다.



당장 현대에 전해지는 기록 중 일부만 봐도 지동론, 지구 구형론, 세계사 전집, 인체의 해부도, 수많은 의약학 관련 기록들 등 온갖 시대를 앞선 과학 기술들부터



바로 그 소포클레스의 작품 수십개와 그리스 3대 작가 중 하나였던 아이킬로스의 수천 개의 작품들, 온갖 고대 신화의 원전 등 인문학적 기록물들도 엄청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어느 날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지른 불에 의해 도서관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불타 없어지게 된다.

수십만 권의 책과 문서들이 재가 되었으며, 수많은 학자들 역시 불을 끄기 위해 노력하다 도서관과 함께 불타버리고 만다.

이때 인류가 수많은 세월 동안 쌓아 올렸던 지식 중 상당수가 일순간에 소실되었으며, 인류 문명 자체가 수십년에서 수백년까지 뒤처지게 될 정도로 타격이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만약 그 누군가가 그날, 불을 내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금보다도 훨신 진보된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현대까지도 인류사 최악의 비극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것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알렉산드로스 도서관 대화재의 이야기임. 위 짤에서 보다시피, 대충 개쩌는 지식의 대보고가 있었고, 이게 불타서 인류 문명은 수십년 후퇴했다는 내용.

그리고 이 전설은 거의 순도 100%의 과장임.

개인적으로 수십 수백년은 개뿔이 인류가 1년이라도 뒤쳐졌으면 그게 더 놀라울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은 저 멀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

이 양반이 정복을 통해 헬레니즘 문화를 일으켰고, 뒤지고 제국이 쪼개진 이후에도 자칭 후계 왕조들도 마찬가지로 헬레니즘을 독려했음.


그 중 대표적인 게 이 아저씨였음.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전성기에 통치기간을 가졌음. 이때 추진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헬레니즘의 중심지이자 세계 지식의 보고를 만드는 거였음. 

물론 겸사겸사 부의 자랑도 할 겸 말이지.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이 계획으로 설립된 무제이온이라는 연구 조직의 자료실로 설립됨. 다만 얼마 안가 대도서관의 위명이 무제이온의 그것을 집어 삼켜 버려 둘이 사실상 동일시되게 됨.

이때 도서관의 구조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지만, 여러 자료들을 통틀어 볼때 우리가 아는 현대 대학 캠퍼스의 원전이 되었음은 거의 확실해 보임.


초기 학자들의 책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었음. 로도스부터 아테네까지,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서서 고서란 고서는 종류와 작가 안가리고 싹 다 사들였음. 

심지어 항구에 들어서는 모든 배들에서 보이는 모든 책을 압류하고, 필서한 후에 필서본만 돌려주고 원본은 지들이 가져감. 진짜 미친놈들임.


책 뿐만 아니라 대도서관은 다양한 학자들과 시인, 철학가와 예술가 등을 수용했음. 대략 3~50명 정도가 면세와 높은 봉급 등의 혜택을 누리며 도서관에서 생활을 했음. 그 대신 상주 학자들은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열 의무가 있었고.

이 외에도 공동으로 밥을 먹는 공간이 있었다는 점 등에서 몇몇 학자들은 대도서관이 현대 대학의 원전이라고 여김.


도서관장들 역시도 심상치 않은 인간들이었음. 도서관장은 프톨레마이우스의 왕자들의 교육을 맡았고 그만큼 인재들이 대대로 맡아왔음.

초대 도서관장은 지 혼자 최초의 도서 분류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알파벳의 순서를 정립한 괴물이었음. 우리가 abcd순으로 읊는 순서가 이 인간의 작품임.


그 후계자는 아폴로니우스라는 사람이었음.

아르고노티카, 그러니까 이아손 신화를 편찬한 바로 그 로도스의 아폴로니우스 맞음.


3대 도서관장은 지구의 대략적 둘레를 최초로 정확히 측정하고 지리학을 정식 학문으로 정립한 최초의 학자 중 하나였고, 4대는 시 짓기 대회에서 기억만으로 몇몇 참가자들이 어떤 시를 배꼈는지, 그리고 그 시가 도서관에서 정확히 어디 있는지 즉석에서 읊을 정도의 천재였고...진짜 괴물들밖에 없음.


이때가 당대 학자들과 그 이후 역사가들에게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전성기로 꼽힘. 말 그대로 모든 고전 시에 대한 분석과 첨삭이 이루어져서 새로운 시들을 만들어낼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



그러나, 기원전 200년대에 들어서서 대도서관은 흔들리기 시작함. 든든한 후원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스적 헬레니즘보단 이집트의 문화를 장려하면서 학자들이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함.

그리고 여기에 못을 박는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됨.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는 6대 도서관장이자, 사실상 마지막이기도 함.

마지막에 걸맞게 그 능력도 미친 수준이었는데, 당대와 후대가 입을 모아 일컫길 고금제일의 고전학자라고 칭할 정도였음. 특히 이 인간이 쓴 고전시 해석문들은 권위 그 자체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함.

그리고 제일 웃긴게, 저 인간 최대 업적은 최초의 지동설자라는 거임. 한국 위키 페이지에도 안나와있더라.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휘하 학자들과 프톨레마이오스 7세를 지지하다가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7세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는 불상사가 발생함.

8세는 보복 차원에서 7세의 지지자들 모두를 탄압했고, 지엄한 대도서관장과 위대한 도서관의 학자들 역시 예외는 되지 못했음.


그리고 탄압을 견디지 못한 수많은 학자들이 사방으로 퍼지게 되는 디아스포라, 그러니까 '흩어짐'이 발생함. 이때 정말로 널리 온갖 학자들이 퍼져서 가르침들을 전 세계로 전파하고 다님.

심지어 역사가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문명인과 야만인 모두에게 가르침을 내려주게 됐다고 비꼴 정도였으니...


그 이후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쭉 영락의 길을 걷게 되었음. 당연하게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차순위로 밀려나게 되었고, 예산 삭감 등의 고초를 겪게 됨.

아까 6대 도서관장 아리스타르코스가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서 나옴. 그가 내려가고 나서는 왕조에서 직접 정치적 보상으로 도서관장 자리를 내려주는 식으로 바뀌었거든.

이런 낙하산식 등용이 얼마나 심했냐면 역사가들조차 후기의 도서관장들은 기록할 가치가 없다며 기록하지 않았음. 그래서 아리스타르코스는 이름이 전해지는 마지막 도서관장이기도 함.

진짜 어찌보면 로망 넘치는 이야기임. 그 이름에 가치가 있던 최후의 대도서관장이자 고금제일의 천재라...



로마 시대로 들어서서도 도서관의 사정은 딱히 나아지지 않음. 알렉산드리아 자체가 크게 쇠퇴하고 로마도 이에 대해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쇠퇴하게 된 거임.

로마 시대에 들어서서 무제이온은 아예 전처럼 고명한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아니라 정치인이나 군인들을 회원들로 삼게 됨. 이때 유일하게 기록이 남은 도서관장이 정치인이었다는 점은 덤.


그리고 바로 이때,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알렉산드리아의 대화재가 발생하게 됨.

다만...딱히 대화재라고 부를 만큼 엄청난 규모의 화재는 아니었음.

철학자이자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율리어스 카이사르가 해양을 통한 통신이 가로막히자 그의 배에 불을 붙혔고, 이 불이 항구에 옮겨붙었다고 되어 있음.

플루타코스의 기록에서는 위대한 도서관이 불타버렸다고 되어 있고, 아마 여기에서 불타버린 대도서관의 전설이 유래한 걸로 추정됨.

그런데 이 기록을 살펴보면 대도서관이 불탔다는 이야기만 있지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없음.

말장난 같겠지만, 학계에선 이 화제의 여러 다른 기록들을 교차 검증해 본 결과, 대도서관의 극히 일부, 아마 창고 한둘쯤이 불탔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림. 몇몇 기록에는 아예 도서관이 불탔다는 언급 자체가 없었을 정도니까...


그 후에도 도서관은 여러 학자들의 서술 활동에 도움이 되는 등 그 존재의 흔적은 계속 남음. 다만 전과 같은 위상은 절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묘사가 존재하는지라, 진짜 그냥 숨만 붙어 있는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음.

기원후 2세기쯤에 로마가 알렉산드리아의 곡물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자 더더욱 타격을 받았을 테고. 마지막으로 남은 대도서관과 무제이온의 기록은 대략 260년대일 것으로 추정됨.


그리고 272년, 팔미라의 제노비아 여왕과 아우렐리온 황제의 전투 사이에서 도서관이 있던 도시의 부분이 완전히 파괴됨으로서 도서관의 이야기는 마침내 끝을 맞이함.

수백년에 걸친 장대한 이야기가 막을 내리게 된 거임.


그렇다면 도서관의 그 많던 책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알렉산드로스 도서관은 최초의 도서관이 아니다.(최초의 도서관은 도시국가 우르크에 있었을 걸로 추정됨) 

전성기에도 최고의 도서관이었을지언정, 유일한 도서관은 아니었음. 알렉산드로스 대도서관이 몰락해 감과 동시에, 콘스탄티노플 황립 도서관, 준디샤푸르 대학, 그리고 지혜의 집 등 다양한 기관들이 알렉산드로스의 지식들을 배껴 감. 


그 자녀 도서관이라고 불렸던 세라피움의 이야기도 굉장히 특이한데, 나름 대도서관을 계승해서 수백년 간 다양한 종교와 신플라톤주의의 연구를 이어나가며 상당한 위세를 펼침.

테오도시우스 1세가 온갖 종교의 물건들을 거리로 끌고 나와 욕보이기 전까진 그랬단 말임.

이때가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여서 다른 종교를 탄압하는 차원에서 그랬다고 함. 어찌되었든 세라피움 의 학자들은 이 꼴을 보고 제대로 빡돌아서 단체로 행동에 나섬.

그런데 이 행동이라는 게 상소를 올리거나 하는 학자다운 행동이 아니라, 제자들이랑 창칼을 들고 게릴라 유격전을 펼쳐서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주의자들의 대다수를 학살하는 거였음.

이 모습을 보고 빡돈 정부는 군을 끌고 와서 아예 세라피움을 통째로 밀어버림.


이때 흥미로운 게, 그 어떠한 기록에도 세라피움을 밀어버릴 때 도서관 비스무리한 것도차 있었다는 언급이 없음. 즉, 알렉산드리아에서 물려받았던 수많은 서적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유출된 지 오래였다는 소리임.


그렇다면 그 이후에 그 많은 서적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서부턴 추론의 영역이다.

학자들은 확실치는 않지만, 대부분의 서적들이 수많은 필사의 과정을 거쳐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한 몇몇 도시들의 거점으로 모여들었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점들은 전부 이슬람의 세력권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슬람의 학자들은 이러한 자료들을 긁어모아 보존했을 것이다.

레콩키스타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유럽은 수많은 사료들과 서적들을 이슬람에서부터 얻게 된다. 이 자료들 중 상당한 양은 대도서관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아 높다.


이러한 자료들은 결국 근대 유럽의 대학을 이루어 주고 그들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근대 유럽의 대학들은 전 세계의 교육의 필수적인 요소인 현대의 대학의 원전이 되었고 말이다.


비록 대도서관은 수천년 전에 재로 바스라져 버렸을지도 몰라도, 그 교육과 지식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우리 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