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란코프에 따르면 중국과 베트남이라는 '검증된 방법(158)'이 존재함에도 북한 엘리트들이 그러한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닌 '풍족한 남한'의 존재 때문이라고 한다. 개혁이 시작되면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로부터의 정보가 흘러 들어올 것이고 이것은 북한 체제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개혁·개방 당시 중국인들이 미국과 일본의 풍요를 알았다고 해도 그들이 당장 미국행이나 일본행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89년 헝가리의 국경이 개방되자 수많은 동독인들이 곧바로 동독을 탈출해서 서독으로 넘어갔다. 북한의 엘리트들은 개혁과 개방에서 중국과 베트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통일 직후의 독일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북한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가혹한 통치를 가진 체제였다. 그래서 북한 엘리트들은 개혁·개방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안드레이 란코프의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체제의 엘리트들은 신체제에서 새롭게 태어나며 신체제의 엘리트 계층으로 흡수가 되었지만, 위 인용문의 말처럼 북한 엘리트들에게는 그런 기회도 무척 좁을 것이다. "인권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훌륭한 생각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걸 북한 주민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우린 곧바로 살해당할 것이다." 한 북한 고위 관료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