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도쿄 일대까지 쑥대밭이 되자 일본 정부는 상대적으로 지진이 덜하고 제국의 중심지가 될수있는 위치에 수도를 옮기려고 논의했었음. 그렇게 해서 선정된곳 3가지가 일본의 오카야마,후쿠오카, 그리고 조선의 용인이었음

(※지도 화질이 많이 깨진다)
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자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려 했는데, 왜 용인이었나면 일본의 중심적 위치였고 (2,30년대 외지,내지 포함) 기존 조선총독부의 소재지였던 경성과 가까웠고 대륙과 가까워 중국 침략에 용이했기 때문임.

실제로 수도이전이 진행되었다면 근방에 살던 1차로 조선인 800만명을 만주로 강제이주 시키고 조선에 일본인 1000만명을 이주. 2차로 남아있던 조선인들도 중국과 만주로 이주시키며 물리적으로 조선을 일본과 동화시켜 완전히 내지로 만드려했음. 실제로 측량까지 모두 마쳤고 건설 준비에 들어가려 했으나 1937년 일어난 중일전쟁이 일본의 예상보다 중국의 저항이 극심해 전쟁이 장기화됬고 국가총동원법으로 총동원령 체제가 되며 한반도가 병참기지화 되자 완전히 무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