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세계 개요 :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북한이 중국에 넘어가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남한을 주로 편입.


원문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hitehouse&no=5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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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선거 (연방 가입 후 첫 선거) - 해리 S. 트루먼 (민, 당선) 90.25%, 토머스 E. 듀이 (공) 7.75%

연방 가입을 추진한 것이 트루먼이니만큼, 트루먼이 압도적 득표.


1952년 선거 - 애들레이 E. 스티븐슨 (민) 58.54%,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공, 당선) 26.80%, 더글라스 맥아더 (무) 13.30%

스티븐슨 후보는 지나치게 엘리트적인 이미지로 지지율을 깎아먹었으며, 아이젠하워의 "I shall go to Korea!"(한국에 가고 싶다) 연설로 처음으로 사우스코리아 주에서 공화당의 지지율이 급상승. 한편,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맥아더 후보는 사우스 코리아 주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높은 득표를 얻었는데, 이는 1950년 한반도에서 있었던 미-소 분쟁에서 맥아더 장군의 결정적 역할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1956년 선거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공, 당선) 49.57%, 애들레이 E. 스티븐슨 (민) 48.00%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구호 정책으로 사우스코리아 주에서 공화당이 안정적 기반을 확보. 민주당은 앨버트 고어 시니어(※앨 고어의 아버지) 상원의원의 주도로 서울-부산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를 건설하며 구애했지만 스티븐슨의 에그헤드(※스티븐슨은 말 그대로 대머리였는데, 선거 당시 이를 역이용해 '만국의 계란머리들이여 단결하라라는 재치있는 구호를 내세웠다. 하지만 안 그래도 부정적인 의미의 엘리트스러운 이미지가 있던 상황에서 자충수가 되었다고.)는 대부분의 사우스코리아 주민들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 선거 - 존 F. 케네디 (민, 당선) 57.49%, 리처드 닉슨 (공) 41.10%

존 F. 케네디 후보가 젊음을 어필하며 출마. 유림 등 일부 유교를 신봉하는 세력들은 케네디가 '싸가지가 없다'며 닉슨 지지를 촉구했으나, 결과는 안정적인 케네디의 승리. 이는 공화당 소속 주지사 승만 리의 퇴임으로 공화당의 기반이 일부 붕괴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4년 선거 - 린든 B. 존슨 (민, 당선) 95.35%, 맹세하지 않은 선거인단 (공) 4.14%

(※사우스코리아 주 공화당이 사우스코리아 주에서 공화당이 이겨도 중앙당 지명후보인 베리 골드워터가 아닌 선거인단 자율투표를 하기로 결정)

공화당 후보로 나선 베리 M. 골드워터 상원의원의 "평양에 핵폭탄을 발사하고 싶다"라는 발언으로 사우스코리아 주는 대대적으로 골드워터 지명 거부 운동을 벌였고,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I am also Seoul citizen" 연설로 민주당 지지율이 급등.


1968년 선거 - 휴버트 험프리 (민) 35.59%, 리처드 닉슨 (공, 당선) 34.95%, 조지 C. 월리스 (I) 28.50%

조지 월리스의 러닝메이트인 커티스 르메이가 1950년 한반도 미-소 분쟁 당시의 전쟁영웅인 것의 영향, 평택 미군기지의 흑인 병사 논란으로 월리스의 지지율이 올랐지만 그럼에도 노비제도 및 백정 유산 청산 등의 사우스코리아 주 맞춤형 공약을 내세운 험프리가 신승.


1972년 선거 - 리처드 닉슨 (공, 당선) 70.70%, 조지 S. 맥거번 (민) 26.43%

미국 의회의 대표적인 반전주의자로 유명했던 조지 맥거번은 사우스 코리아 주에 주둔하는 미군을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전부 철수하겠다고 공약해 지지율이 급락했다. 게다가 유림, 새마을 협회 등 사우스코리아 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보수단체들이 "맥거번 같은 약쟁이는 안된다"라며 선동해 닉슨의 압승에 크게 기여.


1976년 선거 - 지미 카터 (민, 당선) 57.50%, 제럴드 포드 (공) 39.65%, 유진 매카시 (무) 3.33%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선거 직전 토론회에서 "There's no soviet domination in north korea"('원문은 'There's no soviet domination in poland' 폴란드가 자신이 소련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라는 실언을 하는 바람에 중국령인 북한 지역을 고향으로 둔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다. 게다가 포드의 러닝메이트이던 밥 돌이 1950년 한반도 미-소 분쟁을 트루먼의 탓으로 돌리며 '민주당에 의한 전쟁'(이 역시 실제 선거 토론회 당시 한 말.) 이라 발언하며 트루먼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사우스 코리아 주의 여론이 경직.


1980년 선거 - 로널드 레이건 (공, 당선) 46.43%, 지미 카터 (민) 43.30%, 존 B. 앤더슨 (무) 6.75%

로널드 레이건이 자신의 친서민 이미지를 뽐내기 위해 한반도의 전통 술인 막걸리를 마시는 등 적극적인 유세를 벌인 결과, 카터를 이길 수 있었다. 카터의 패배 원인은 그해 광주에서 있었던 학생시위에 부적절하게 대응했던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1984년 선거 - 로널드 레이건 (공, 당선) 60.74%, 월터 먼데일 (민) 36.65%

안 그래도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가 높던 상황에서, 먼데일은 레이건을 비판하겠다고 토론회에서 "Mr. Reagan will raise taxes and so will I. He won't tell you but I just did"(레이건 씨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무조건 세금을 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되어도 그렇게 할겁니다)라는 희대의 실언을 하는 바람에 지지율을 크게 말아먹었다. 게다가 민주당 경선에 참가한 흑인 목사 제시 잭슨이 서울을 "김치 타운"이라 부르며 사우스코리아 주에서의 민주당에 대한 여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1988년 선거 - 조지 H. W. 부시 (공, 당선) 53.70%, 마이클 두카키스 (민) 45.55%

레이건 2기는 농업 정책 등에서 큰 실책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사우스 코리아 농협 등이 파산하는 등 사우스 코리아의 농업도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두카키스의 승리 가능성이 높았지만, 1987년 화성에서에서 있었던 연쇄 살인사건을 부시가 공격하며 "Revolving door prison"(※회전문 감옥이라는 뜻. 두카키스가 대통령이 되면 되면 범죄자들이 가석방되었다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됐다를 반복할 것이라는 네거티브. 실제 선거 당시 마이클 두카키스가 주지사로 있던 매사추세츠에서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범죄자가 '죄수 주말 석방제도'를 통해 잠시 휴가를 나온 와중에 커플을 습격해 여자를 강간한 사건이 있었는데, 매사추세츠는 당시 전미 평균보다 월등히 낮은 범죄율,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부시는 이를 네거티브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두카키스를 공격했고, 두카키스는 자신의 신념이던 '네거티브는 무시가 답'을 밀어부치다가 오히려 네거티브가 유권자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역효과를 내게 됨) 등을 광고로 내보내 부시가 당선될 수 있었다.


1992년 선거 - 조지 H. W. 부시 (공) 38.45%, 빌 클린턴 (민, 당선) 36.40%, 로스 페로 (무) 24.54%

미국 본토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던 빌 클린턴이었지만 그의 약물 복용, 섹스, 병역기피 등으로 인해 사우스코리아 주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거기에 LA 한인타운 폭동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부시의 지지율이 사우스코리아 주에서만큼은 높았던 것도 영향을 끼쳐 부시는 전국 선거에서는 패했지만 사우스 코리아 주에서는 승리. 한편 로스 페로는 러닝메이트로 사우스코리아 출신의 기업가 주영 정을 지명해 이 주에서 전국 평균보다 크게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1996년 선거 - 빌 클린턴 (민, 당선) 49.30%, 밥 돌 (공) 43.50%

밥 돌은 고령(1923년생으로, 당시 73세)을 이유로 사우스코리아 주에서 정력적으로 유세를 벌이지 않았다. 반면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의 인종주의 성향을 공격하며 사우스코리아 주의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인 인종 문제를 파고 들었다. 또한 빌 대통령은 1992년 대선을 복기하며 지역 방송사 KBS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독도 아리랑"을 거문고로 연주하면서 민심을 얻었다.


2000년 선거 - 조지 W. 부시 (공, 당선) 51.12%, 앨버트 고어 (민) 46.59%, 랄프 네이더 (녹) 1.56%

초반에는 앨 고어가 앞서나갔지만, 앨 고어가 환경 문제를 이유로 노스전라 카운티의 새만금 간척+산업단지 건설을 반대하며 지지율 하락. 조지 W. 부시는 사우스코리아 주의 높은 교육열을 이용해 "No children left behind"(부시가 당시 공략했던 초중등 교육 개혁법)를 홍보하며 격차를 벌렸다.


2004년 선거 - 조지 W. 부시 (공, 당선) 51.70%, 존 F. 케리 (민) 48.05%

존 케리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자격을 내세웠지만, 이 경력이 사우스코리아 주에서는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다. 또한 조지 W. 부시가 2001년 입법한 No children left behind가 미국에서는 큰 논쟁거리가 되었지만, 사우스코리아 주에서만큼은 지지율이 높았기에 부시가 또 다시 신승.


2008년 선거 - 버락 오바마 (민, 당선) 52.29%, 존 매케인 (공) 46.64%

존 매케인의 러닝메이트인 사라 페일린이 사우스코리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헷갈리는 멍청한 실수를 했다. 반면 오바마는 사우스코리아판 레딧이라 불리는 DCinside 등의 신생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유세를 벌인 결과 20대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2012년 선거 - 버락 오바마 (민, 당선) 50.04%, 밋 롬니 (공) 48.69%

오바마 대통령이 2010년 허리케인 곤파스를 잘 처리해서 사우스코리아 주민들의 신망을 얻는데 성공하기도 했고, ACA(일명 오바마케어) 역시 사우스코리아 주에서는 오히려 호재였다. 반면 밋 롬니는 "I have a binder full of south korean"(원문은 'Binders full of women'. 롬니가 토론회에서 남녀 임금평등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에 대한 답으로 '예비 내각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지원자들이 모두 남자라 여러 여성단체에 가서 '사람 구하는걸 도와달라'라고 해서 여성단체들이 여자들로 가득 찬 이력서를 갖고 왔다'라는 여성차별로 받아들여질수 있는 발언.)이라는 말실수를 해서 지지율을 떨궜다. 밋 롬니는 사우스코리아 주 공화당의 주 지지층인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기대했으나, 롬니가 몰몬교도인 관계로 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패배했다는 의견도 있다.


2016년 선거 - 힐러리 클린턴 (민) 51.20%, 도널드 트럼프 (공, 당선) 44.39%

도널드 트럼프는 쇠퇴한 노스경상 카운티와 사우스경상 카운티 지역의 공단을 집중적으로 유세했다. 하지만 여러 논란으로 촉발된 트럼프의 비호감도는 사우스코리아 주에서는 유달리 큰 치명타가 되었고, 힐러리 클린턴은 전국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무난하게 승리.


2020년 선거 - 조 바이든 (민, 당선) 53.11%, 도널드 트럼프 (공) 45.39% 도널드 트럼프는 중국의 영토가 된 노스 코리아를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하는 등의 정책으로 사우스코리아 주민들에게 일시적으로 지지를 받는 듯 했으며, 사우스코리아 주에 전술핵을 배치하겠다는 정책 역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미숙한 행정 처리로 사우스코리아 주의 민심이 이반하기 시작했고, 바이든 역시 고령의 나이에도 사우스코리아 주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한 결과 예상보다 크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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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현재,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수십년간 거대 경합주로 명성을 떨쳐왔던 사우스코리아 주가 전통적인 공화당 우세지역이자 사우스코리아를 대표하는, 그리고 미국 전체로 따져도 손가락 안에 들던 공업지역인 노스경상 카운티와 사우스경상 카운티가 쇠퇴하고, 대신 주도인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메트로폴리탄 지역이 성장하며 점차 블루 스테이트로 변해가고 있는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는 덴버 도시권의 성장으로 2010년대 들어 공화당에 조금 더 가깝던 스윙스테이트에서 블루스테이트로 변모되어가는 콜로라도와 비슷한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