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현 지도]

평안북도의 현

寧邊縣 / Yeongbyeon City

현청 소재지: 영변로 12 (서외성동)

광역자치단체: 평안북도

하위 행정구역: 14동 1읍 5면

인구: 304,864명

면적: 546.6km²

인구 밀도: 557.75명/km²


1. 개요

평안북도의 현이자 평안북도청 소재지이다.


2. 역사

1951년: 영변군 고성면이 입석면으로 개칭되었다.

1960년

 - 평안북도의 읍면의 모든 동들이 리로 전환되었다.

 - 영변군 독산면이 박천군으로 편입되었다.

 - 영변군 구장읍, 남신현면, 북신현면, 백령면, 태평면, 남송면이 구장군으로 분리되었다.

 - 팔원면 가덕리, 명당리가 봉산면으로 편입되었다.

1979년: 영변면이 영변읍으로 승격되었다.

1987년: 영변읍이 영변시로 승격되었다. 영변군 잔여 지역은 연주군(延州郡)으로 개칭되었다.

1992년

 - 팔원면이 팔원읍으로 승격되었다.

 - 연주군 오리면 봉무리가 영변시로 편입되었다.

1995년: 영변시와 연주군이 영변현으로 도농통합하였다.

2001년

 - 봉산면이 무주면으로 개칭되었다. 동시에 면사무소 소재지인 고성리가 무주리로 개칭되었다.

 - 연산면이 연주면으로 개칭되었다.

2006년: 정주부에 있었던 평안북도청이 영변현 팔원읍에 조성된 팔원신도시로 이전되면서 영변현은 평안북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2014년: 팔원읍 천양리, 석성리, 송현리, 화평리가 시내동지구로 승격되었다. 동시에 팔원읍 소장리, 용두리, 용신리, 용성리가 용두면으로 개편되었다.


3. 경제

약산동대와 영변읍성을 중심으로 한 관광업과 팔원읍에 위치한 평안북도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이 영변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


4. 도시 구조

4.1. 원도심

영변의 행정 중심지. 한때 경제 중심지도 겸하였으나, 시내동 지구의 용지 부족과 도심 공동화로 인해 경제 중심지는 팔원으로 옮겨졌다.

영변읍성을 비롯한 문화유적을 이용한 관광업으로 먹고살고 있다.

4.2. 팔원(八院)

영변의 교통과 경제 중심지.

원도심의 개발 제한과 용지 부족으로 인해 개발된 지역이다. 영변의 최대 번화가로, 홈플러스 팔원점을 비롯한 대형 마트와 상점들이 팔원에 있다.

인구가 정주나 평양 등지로 유출되어 인구가 감소하였으나, 평안북도청이 정주부에서 영변현으로 이전된 이후 인구가 다시 증가하였다.


5. 교통

지방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통 노선은 영변읍성을 우회해서 지나가고 있다.

5.1. 철도

[영변현 철도 지도]

5.1.1. 일반철도

 * 영변선: (개천역) - 영변역 - 팔원역 - 무주역 - (학당역)

5.2. 도로

[영변현 도로 지도]

5.2.1. 일반국도

 * 63번 국도

 * 64번 국도

5.2.2. 고속도로

 * 개천의주고속도로: (개천 교차로) - 영변 나들목 - 팔원 나들목 - (태천 나들목)


6. 국가유산

[영변읍성(성벽과 주요 성문은 필자의 추정으로, 정확하지 않다.)]

 * 영변읍성(寧邊邑城): 동부동, 서부동 소재. '철옹성(鐵瓮城)'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성, 북성, 신성, 약산성 4개 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 약산동대(藥山東臺): 서부동 소재. 관서팔경에 속하는 명승지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 서운사(棲雲寺): 서부동 소재. 천주사와 함께 영변현의 명찰(名刹)로 알려져 있다.

 * 천주사(天柱寺): 서부동 소재. 보광전(普光殿)의 금단청은 우리나라의 금단청 가운데 유명하며, 보광전 맞은 편에 있는 천주루(天柱樓)에 동쪽 다락에는 향일헌(向日軒), 서쪽 다락에는 망월대(望月臺)라는 현판이 붙여 있다.


7. 문화

7.1. 관서 문학의 성지

영변은 관서 문학에서 나오는 지역 가운데 가장 인지도가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 예시로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같이 관서 지역의 문학인들이 지은 약산동대를 주제로 한 시나 소설이 있으며, 백석의 《팔원》과 같이 영변을 배경으로 하는 시나 소설이 있다. 특히 영변의 관광지인 약산동대가 관서 문학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2022년에는 관서 문학인 가운데 인지도가 높은 시인 김소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영변현에서 개최되었다.

7.2. 영변 3대 성씨

영변의 3대 성씨에는 해평 길씨, 연주 현씨, 강화 골씨가 있다.

 * 해평 길씨(海平 吉氏): 영변에서 비중이 높은 성씨로, 유명인으로는 영변의 거물 정치인 길재호가 있다. 송에서 고려로 귀화해 해평백(海平伯)에 봉해진 길당(吉唐)을 시조로 하고 있다.

 * 연주 현씨(延州 玄氏):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영변을 비롯한 평안북도 서부 지역에서 비중이 높은 성씨다.

 * 강화 골씨(江華 骨氏): 원래 본관은 경기도 강화였지만, 나중에 영변으로 이주했다. 한때 대한제국 시기에 멸성되었으나, 태천군 동면 학당동(現 학당리)에서 골씨 집성촌이 발견되면서 골씨의 대가 끓어지지 않았다.


8. 하위 행정구역

[영변현 행정구역 지도]

8.1. 시내동 지구

8.1.1. 舊 영변읍(寧邊邑) 지역

관할 법정동: 동부(東部), 서부(西部), 남외성(南外城), 동외성(東外城), 서외성(西外城), 봉무(鳳舞), 용추(龍湫), 용포(龍浦)

인구는 105,760명.

영변읍성 지역은 행정을 담당하고 있고, 읍성 내의 용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봉무 신시가지와 서외성 신시가지가 있다. 원도심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두 신시가지와 연담화가 되어 있지 있다.

8.1.2. 舊 팔원읍(八院邑) 지역

관할 법정동: 석성(石城), 송현(松峴), 천양(天陽), 화평(和平)

인구는 156,451명.

백석의 시 《팔원》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과거 연주군청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영변현청 서부출장소가 있다.

舊 영변읍 지역의 지형적 한계로 인해 개발된 신시가지로, 영변에서 가장 번성하고 있는 지역이다.

8.2. 읍

8.2.1. 소림읍(少林邑)

관할 법정리: 용추(龍秋), 가덕(加德), 각추(角秋), 남등(南燈), 등산(燈山), 명당(明堂), 상추(上秋), 서위(西位), 용강(龍江), 원등(元燈)

인구는 15,498명.

팔원의 후적지로, 경제와 교통을 팔원에 의존하고 있다.

8.3. 면

8.3.1. 무주면(撫州面)

관할 법정리: 무주(撫州), 관하(館下), 구산(龜山), 망일(望日), 수유(水踰), 양지(陽地), 용흥(龍興), 조양(朝陽)

인구는 6,746명.

조선 초까지 무산현(무주, 撫州)이 있던 곳이다. 원래 지명은 봉산면(鳳山面)이었으나, 2001년에 개칭되었다.

전라북도 무주군(茂朱郡)과 연관이 없는 지역으로, 이쪽은 조선 태종 때 풍현(豊縣)과 계현(溪縣)이 합쳐져 탄생한 행정구역이다.

8.3.2. 입석면(立石面)

관할 법정리: 남산(南山), 구항(龜項), 마전(麻田), 봉덕(鳳德), 사오(沙塢), 상초(上草), 신풍(新豊), 하초(下草)

인구는 3,569명.

원래 이름은 고성면(古城面)이었으나, 고성면의 별칭인 입석에서 이름을 따와 현재의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8.3.3. 연주면(延州面)

관할 법정리: 화연(花硯), 대성(大成), 문봉(文峰), 신천(新泉), 언무(偃武), 용연(龍淵), 입석(立石), 화천(花川)

인구는 10,376명.

조선 초까지 연산부(연주, 延州)가 있던 곳이다. 영변의 중심역인 영변역이 대성리에 있다.

8.3.4. 오리면(梧里面)

관할 법정리: 문봉(文峯), 묵시(墨時), 세죽(細竹), 송강(松江), 송호(松湖)

인구는 3,879명.

8.3.5. 용두면(龍頭面)

관할 법정리: 용두(龍頭), 소장(小長), 용산(龍山), 용성(龍城)

인구는 2,585명.

팔원읍 남부가 시내동 지구로 승격된 이후 신설된 면으로, 舊 팔원읍 북부에 속한다.


9. 여담 및 원 역사와의 차이점

해당 세계관의 영변현의 모티브는 안동시이다.

모티브가 된 안동시와 영변현은 대도시(대구, 정주)에 있었던 도청이 이전되면서 발전한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원래 도청 소재지가 아니었지만 일제강점기 시기 도청 소재지인 의주가 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이전한 것이고, 전자의 경우는 중간에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해당 세계관의 안동현(안동시)의 경우, 경상북도청은 원 역사와 똑같이 안동으로 이전되었으나, 도청신도시는 안동 시가지를 확장하면서 안동 시가지와 가깝게 지어졌다. 영변의 팔원신도시 또한 해당 세계관의 안동현과 똑같이 원 시가지와 가깝게 지어졌다.


길재호는 분단으로 전라북도 금산군에서 정치 활동을 하였던 원 역사와는 달리, 분단이 되지 않아 자신의 고향인 영변군에서 정치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해당 세계관의 금산군은 전라북도에 여전히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