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지도 사용을 허락한 지도러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면 색칠은 귀찮아서 안했고, 1963년 지도는 완성은 했지만 나중에 따로 설정이랑 같이 올릴 것. 1963년 이후엔 1970년대→1980년대→1990년대→현대 순으로 제작하고 적화통일 대역 지도도 제작할 생각임 


1. 북진통일 직후

 수복지구 행정의 민정이양이 이루어지기 전(=여전히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UN군 군정 하)이라 여전히 38선이 경계. 수복지구(북한 전역)외에는 현실과 별 차이 없음


-수복지구에 도급 행정구역존재.  기존 이북5도에 38선 이북의 경기, 강원도를 관할하는 '북강원경기도' 설치.

-평안북도의 도청은 정주에, 함경북도의 도청은 성진에, 신설된 북강원경기도의 도청은 철원에 임시로 소재. 황해, 평남, 함남은 기존의 도청 소재지 유지. 

-38선 이북의 연백군에 북연백군(황해도 관할) 설치

-38선 이북의 장단 및 개풍군 지역에 북장단군(북강원경기도 관할) 설치

-38선 이북의 포천군 및 구 춘천군 사내면 지역에 북포천군(북강원경기도 관할) 설치 *원역사의 북포천군과 동일

-옹진, 연백은 여전히 경기도 관할

-개풍군 북면은 임시로 황해도 금천군 관할

-이외 남한지역 행정구역은 원역사와 같음. 

-수복지구 행정구역 상당수는 이북5도위원회 기준으로 환복(=북한이 전쟁 이전 신설한 자강도,평양특별시,순안군 등의 행정구역 인정 안함)

-예외로 사리원과 송림은 시로 인정됨


<수복지구의 상황>

- 이승만 정부는 수복지구에 공무원을 파견하여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행정권을 행사하려 했으나 UN군에게 저지당하고 UN군 하의 군정 실시중

- 북한은 중공군까지 끌여들어 버텼으나 결국 패퇴하고 김일성 일당은 연변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북한군 잔당 및 현지 조선족 자원병&징집병으로 유격전을 벌이는 중.

- 국군과 UN군의 빠른 북진으로 인하여 전라도, 강원도와 그외 북한 지역에 낙오된 북한군 및 동조자들이 게릴라화 되어 원역사의 빨치산보다 훨씬 강도높은 유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나, 전라도, 강원도 및 그외 내륙지역 상당수의 게릴라들은 원역사 빨치산들 처럼 지원 다 끊긴채 고립무원의 상태로 말라죽는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중.

-하지만 함경북도, 함경남도 두만강 유역 빨치산의 경우 위에서 말했듯 중공의 지원과 북한 망명정부의 존재로 인하여 소탕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  빨치산이 무산, 혜산 등지를 뒤집어 놓고 간도로 튀는게 대반사고, 국군 토벌대 역시 월경하여 간도에서 작전을 벌이기도 함. 

- 한국과 중공의 관계는 최악 그자체.  앞서 말했듯 중공이 요구한 38선 이북의 미군 철수를 한국이 씹은 것에 분노한데다 북한 망명정부와 두만강 유역 게릴라들을 지원하고 있고, 이승만은 이승만대로 강경하게 나와서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빨치산 토벌 명목으로 국군의 두만강 월경을 허용하는 중. 

-함경북도, 함경남도의 두만강 유역은 당연히 생지옥이 되어서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에 낑긴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 그만큼 사람들이 알아서 떠나거나, 정부에서 강제이주시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인구는 계속 주는 중.  

-함경남도는 혜산 지역을 제외하면 피해가 크지 않으나 함경북도는 무산, 회령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청진은 심심하면 테러가 터지고 심하면 도심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막장도시가 됨. 그나마 길주, 명천, 성진을 비롯한 남부는 안정적 

- 평안북도의 경우 북한 정권이 중공군까지 끌여들어 최후까지 버티던 곳이던 만큼 수복지구 중에서도 제일 심한 피해를 입음. 상당 지역에서 격전이 일어난데다 야포와 폭격기에 두들겨 맞아서 공장은 커녕 초가집조차 남은곳이 드물 정도로 초토화된데다 최전방이라는 이유로 복구도 지지부진한 상황. 신의주와 삭주군의 산업시설은 완전히 박살났고 강계 지역 역시 북한 정권 최후의 보루 였던 만큼 초토화. 도청및 그외 행정기관들도 신의주가 개박살 난데다 최전방이라 정주로 옮긴 상태. 그나마 이쪽은 함경도의 두만강 유역과 달리 게릴라 준동은 적은편

- 수복지구 전역에서 북한 정권에 탄압받던 우익 성향 주민들과 완장 차고 고향에 돌아온 서북청년단의 좌익 성향 주민과 북한 정권 부역자들에 대한 보복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 그중에서도 특히 해방 당시까지 우익 세력이 우세했던 황해도, 평안남도가 제일 극심

- 북한 정권 부역자들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짐. 심하면 재판은 커녕 현지에서 살해당한 경우도 부지기수. 살아도 빨갱이 낙인 제대로 찍혀서 앞날 망함

- 중공런 못한 북한 고위직들 역시 상당수가 전범으로 기소되어 중형을 받음. 홍명희 등 전범 행위가 없던 사람들도 부역 행위 자체는 명확한지라 명예는 똥통에 떨어지고 평생 빨갱이딱지 달게됨

- 김두한에게 알 터질 위기 넘겼던 심영도 중공런 못하고 강계에 숨어있다가 서북청년단에게 진짜 고자가 되고 말았다. 목숨은 건졌으나 악질 빨갱이에 친일파라는게 제대로 찍혀서 연극 활동 못하고 거지꼴로 살다 뒤지는거 확정

- 월북자 중 이념과 무관한 이들(백석 등 애초에 고향이 북쪽이라 이념 상관없이 그냥 고향 간다는 생각으로 월북)도 빨갱이 낙인으로 인생에 먹구름 낌

- 전쟁 중 납북자들도 월북으로 알려진 이들은 빨갱이 소리 들으며 고생하게 됨. 김규식, 안재홍은 정치인으로서 사실상 사형선고 받음 




2. 1954년

수복지구 행정이 대한민국 정부로 넘어왔고, 이후 약간의 조정이 있음.


<행정구역 변동>

- 38선 경계 사라지고 대체로 원래의 도, 시 , 군, 읍 ,면 경계로 회복.

- 북강원경기도 폐지 후 각 군은 강원도, 경기도에 흡수

- 연백, 옹진군이 경기도에서 다시 황해도 관할로 복귀. 연백군의 구 벽성군 지역은 다시 벽성군으로 돌아갔으나, 옹진군에 편입된 벽성군 지역 및 장연군 백령면 지역은 여전히 옹진군에 잔존.

- 거제군 복군과 함께 연백군이 연안, 배천으로 분할됨

- 북장단군 폐지 후 경기도 장단군에 흡수. 구 개풍군 지역 역시 같이 장단군으로 넘어감

- 북포천군 폐지 후 경기도 포천군에 흡수, 사내면은 화천군에 편입 *원역사와 같음

- 금천군이 관할하던 개풍군 북면 역시 여전히 금천군에 잔류

- 함경남도 단천군 단천읍이 단천시로 승격, 도농분리 후 군 지역은 단주군으로 개칭(단천군→단천시, 단주군)

- 함경남도 문천군 북성면이 문평읍으로 승격

- 함경북도 명천군 서면이 영안읍으로 승격했다가 '영안' 지명유래의 문제로 인하여 명간읍으로 개칭

- 평산군 마산면이 우남읍으로 개칭&승격. 이유야 뭐....

-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은 원래 광복 당시 인구라면 승격해도 될 정도이나 두만강 유역의 대혼란으로 인구가 줄며 시 승격 실패.

-이외 행정구역은 동시기 남한 및 이북5도위원회 행정구역과 거의 동일


<수복지구의 상황>

 -평안북도의 경우 제일 피해가 심각했던데다 최전방이라는 이유로 재건도 더뎌 신의주, 강계 등 기존 도시들이 나락으로 떨어짐.  그나마 새로 도청소재지가 된 정주군 정주읍 지역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재건되며 정주가 평안북도의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  기존의 공업은 완전히 사라졌고 중국과의 교류도 상당부분 단절되어 농업과 벌목, 군인들에 기대 먹고사는 동네가 됨. 그나마 아래 함경북도처럼 게릴라 설치는건 거의 없어서 나음

-평북과 함께 피해를 심하게 본 함경북도의 경우 무산, 회령 등 두만강 유역은 여전히 개판이지만  남쪽인 길주, 성진 일대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낫고 재건 역시 이루어지는 중.  청진은 안정화되긴 했으나 일제시대처럼 번영하는건 물건너감.  도청은 여전히 성진에 있음

- 함경남도는 혜산 쪽이 개판이지만 함흥, 원산을 비롯한 동해안 공업지대는 피해가 적은데다 재건도 어느정도 이루어져 전쟁 이전까지 전무하던 대한민국의 중공업을 캐리하는 중. 

-평안남도, 황해도 지역 역시 재건이 어느정도 진척됨. 평양은 피난민 러쉬로 인구가 폭증한 부산에 한반도 2대 대도시 자리를 빼앗겼으나 여전히 북부 제일이자 한국 3대 대도시로서 지위 유지중. 황해도의 송림제철소(구 겸이포제철소)는 대한민국 최대의 제철소가 됨

-하지만 북한 지역 주민 중 꽤 많은수가 전쟁 당시 반공단체 및 일부 국군의 추태와 '북쪽 빨갱이' 딱지에 반감을 가지게 됨. 그나마 이전 북한 정권 및 좌익 유격대가 벌인 패악질이 상당했던 것과 이승만 대통령아 북쪽 출신인게 누그러뜨린 수준. 

- 반대로 역시 꽤 많은 북한 주민들은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됨. 대다수가 북한 정권 탄압으로 이만 갈면서 숨죽이거나 월남했던 종교인,  지주, 민족주의자들. 그외에 북한 정권 부역 혐의 벗으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사람들이나 기회주의자도 상당수.  

- 대한민국에 행정권이 이양되며, 수복지구의 농지에 대해 북한의 토지개혁이 무효화되고 대한민국의 농지개혁법이 적용됨.  대다수가 북한 정권이 분배했던 토지를 그대로 다시 분배받았기에 큰 이변은 없었지만 일부 소유권이 불명확해진 토지들은 땅문서 챙겨서 벼르고 있던 월남 지주들이 되찾음. 물론 농지개혁법이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소작을 금지한 이상 되찾은건 정말 일부. 해방 이전 일본인 지주 소유 토지들은 거의 전부가 이런 문제없이 재분배됨.

- 북한 지역에 있던 시설물들 중 원 소유주가 월남하거나 남한에 있던 경우는 대부분 원 소유주에게 돌아감. (대표적으로 진남포의 진로소주공장이나 화신백화점 평양점)

- 북한 지역 시설물들 중 해방 이전 일본인 소유(흥남 노구치비료공장이나 송림 겸이포제철소 등)였거나 소군정, 북한정권이 새로 새운 시설(평양의 모란봉극장 등)들은 적산으로 분류되어 국유화 되었다가 민간에 불하되는 절차를 거침. 물론 매각 안하고 그대로 국유화한 경우( 일본인 사립철도나 철원 ㄹ북한 정권이 새로 지은 관공서 등)도 있음

- 가옥의 경우 위 시설물들과 거의 유사한 절차( 원 소유주에 반환, 일본인 자산은 적산불하)를 거쳤으나 북한 정권에 가옥을 분배받았던 실 거주자와 가옥을 불하받거나 되찾은 자들 사이에 분쟁이 대량으로 발생함.

- 전라도, 강원도의 빨치산들은 거의 소탕됨 .두만강 유역 빨치산은 북한 망명정부의 내분과 대규모 토벌로 기세가 꺾이긴 했으나 여전히 준동 중. 

- 연변의 북한 망명정부는 내분이 터져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고, 중공은 이들을 토사구팽하고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궁리를 하는 중. 

- 한국전쟁에서의 패배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모택동은 대약진 운동을 원역사보다 빨리 실행하려 함

-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북진통일을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자유당의 부패와 무능, 권력욕은 원역사와 다를바 없기에 4.19는 형태가 다를 지언정 터지는건 거의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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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길어져서 1963년 지도는 따로 올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