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호박입니다. 예전 '아이누 모시르'의 마지막 편에서 암시했듯, 올해 1-2월 싱가포르에서 한 달간 이런저런 일을 할 기회가 생겨 그 기간만큼 싱가포르에서 살게 된 일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준비하고, 싱가포르에 있는 김에 주변의 '한국에서 멀리 있는 동남아시아'까지 답사하고 온다는 계획을 짜기 시작한 지 어연 반 년이 지나, 드디어 출국일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꼭두새벽부터 인천공항에 도착했죠. 원래는 오늘부터 운행하던 (하단 참조) 공항철도 직통열차 임시 편성을 타려고 했지만, 하필 제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서울역에 애매한 시각에 도착해서 계획을 바꿔 같이 가는 일행들과 그대로 인천공항까지 택시를 타게 되었답니다. 직통열차보다는 훨씬 비쌌지만, 인원수가 적지 않았던지라 그대로 택시를 타면 공항버스 가격과 비슷하게 나오더군요. 



그렇게 도착한 새벽 5시 반경의 인천공항 1터미널. 시간대를 감안하더라도 사람들은 많고 출국장이 붐비는 걸 보니, 해외여행 성수기인 점을 감안해도 국제선 수요가 그래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타기로 했던 싱가포르항공은 아침 6시가 되어서야 체크인 카운터를 열어서, 일찍 온 저는 얄짤없이 1터미널에 앉아서 카운터가 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다행히도 아침 6시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고, 나름 앞쪽 줄에 서 있었으니 체크인을 하고, 꽤 사람들이 많던 출국장과 보안검색대를 뚫고 거의 8개월만에 다시 인천공항 1터미널 게이트로 향하게 되었답니다. 



출국장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지, 시간이 새벽이라 그런지 터미널은 그렇게 미어 터지지만은 않더군요. 



몇 주 전인가 원월드 전용 라운지가 1터미널에 새로 생겼더군요. 하지만 싱가포르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인데다 전 그냥 이코노미석 타는 프롤레타리아라 넘어갑니다. 



게이트를 찾은 저는 시간도 남았겠다, 제1터미널에 주기된 항공기들을 하나둘 구경하러 갑니다. 그래요, 이 맛에 공항에 오는 거죠. 타이항공의 A350 두 대 (저 왼쪽 스얼도장도 타이항공)가 먼저 시선을 강탈합니다! 



저 멀리 피치항공도 보이고, 바로 앞 에어서울도 보이고, 세부퍼시픽도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 1터미널의 터줏대감인 아시아나항공, 그것도바로 앞에는 아시아나항공의 새 플래그십 A350이 있군요. 



에어서울, 라오항공, 제주항공, 그리고 저멀리 제가 타고 갈 싱가포르항공의 787-10이 보입니다. 




안 믿기겠지만 사실 이 날이 저로서는 보잉 787을 처음 타보는 날이었습니다. 생애 첫 787을 가장 보편적인 787-9도 아니고, 드문 편에 속하는 787-10을 타다니, 이건 좀 귀하군요. 

(스포: 돌아올 때는 싱가포르항공 A350을 타는데, 이것 역시 생애 최초의 A350입니다)



보딩 직전, 이스타항공의 737-8맥스가 디아이싱을 위해 대기중입니다. 요즘 737 맥스로 인해 보잉의 QC 문제가 다시 불거졌는데, 한편으로는 보잉이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울 뿐입니다. 



싱가포르항공 787-10 뒤로 멀리 홍콩에서 날아온 캐세이퍼시픽 A350이 지나갑니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지 인천공항에서 해가 뜨고 있었습니다. 공항에서의 일출은 또 처음이라 새롭더군요. 



기다림 끝에 보잉 787-10, 지금 만나러 갑니다! 




FSC는 2019년 이후 처음이라 그런지, 이코노미석이라도 되게 좋아 보였더군요. 시트 피치도 81cm인가 되어서 꽤 넉넉했던 걸로 기억하고요. 



게이트가 꽤 가까워서였는지 짧은 택싱 후, 착륙하는 에어인천을 보낸 다음 바로 이륙합니다. 



이륙하면서 영종도 북서부에 있는, 작년 말에 가오픈한 인스파이어 리조트가 보입니다. 유리창 색부터가 범상찮은 것이 뭔가 한국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미라지"를 연상시키는군요. 저기 2만석 규모의 아레나가 작년 연말부터 뮤직 어워즈 등의 성지였다고 하죠. 



한동안 못 볼 지명 'INCHEON'을 뒤로 하고 창공을 가르러 갑니다. 



하늘에서 본 인천공항 1터미널 일대. 규모가 웅장한 것이 가히 세계적인 공항이라 생각되게 합니다. 



싱가포르항공 SQ607편은 시화호 남서쪽을 지나



군산을 지나고 (약간 파란 것은 제가 787 창문을 모르고 2단계로 세팅해서...)



새만금을 지나더니, 전남 다도해 남쪽부터는 구름이 껴서 온통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틈에 음료수는 못 참죠.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음료수/칵테일, 싱가포르 슬링 한 잔을 걸치고 바로 잠에 듭니다. 



다른 미디어 시청 없이 AVOD는 오로지 지도만 켜 놓고 잠에 들다 일어나 보니 어느덧 대만 동해안을 지나고 있더군요. 제가 오른쪽에 앉았다면 옥산, 화련 등 대만 동해안 풍경도 볼 수 있었을 텐데 거 참 아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만 동해안 전역이 이날 흐려서 아무것도 안 보이던 찰나, 헝춘 반도 근처가 잠깐 왼쪽에서도 보여서 빠르게 찍고 다시 남하합니다. 대만 너머의 남중국해를 건너는 것이죠. 



가뭄에 콩 나듯 이렇게 섬이 있는 남중국해를 지나 날아오면 섬들이 조금씩 보이는데, 말레이시아에 가까워졌단 뜻입니다. 



동시에 갑자기 배들도 보이기 시작하다니, 싱가포르와 세계를 잇는 항로들과 한결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드디어 뭔가 섬들의 연속이 아닌 본토가 보이는데,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입니다. 공사하는 구역에서 라테라이트토가 여기서도 보이는군요. 




온갖 동네들이 보이지만, 이 중에 싱가포르는 아직 없습니다. 창이공항에 남쪽에서부터 접근하니까, 우선은 싱가포르보다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거든요. 



그러던 비행기가 갑자기 턴을 하더니, 드디어 뭔가 익숙한 스카이라인과 배들의 도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싱가포르가 무엇으로 먹고사는 곳인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근경의 화물선들, 그리고 저 멀리 육지에 보이는 마리나 베이 샌즈와 싱가포르 도심의 스카이라인, 가히 감격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정말 싱가포르에 왔구나, 하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였달까요. 




드디어 싱가포르에 진입하고 왼쪽으로는 창이 일대의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창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싱가포르 MRT 차량기지도 지나가면



그제서야 스카이트랙스 선정 세계 최고의 공항 1위,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착륙합니다. 





착륙하고 게이트로 가면서 싱가포르항공 기재 여럿을 지나 게이트와 연결하고, 그제서야 싱가포르 땅을 밟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로 진입한 순간 확 느껴지는 더위와 습도는 "내가 분명 1월에 출발했는데 7월에 도착했나?" 싶은 착각을 주더군요. 



다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붙어 있는 비슷한 표지를 보고 국뽕을 느낀다는데, 저는 창이공항에 있던 이것만 보고도 우리 국격이 신장되었음을 느꼈습니다. ICN-SIN 루트라 어차피 해당 항공편 국적자들이 거기서 거기라 그런지 대부분 자동입국심사 경로로 갔지만요. 



짐을 찾고 옷을 얇게 갈아입고, 다시 2터미널 출발층으로 올라갑니다. 환승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창이공항 1터미널 뒤에 생긴 싱가포르의 새로운 상징, 쥬얼 창이를 보러 가기 위함이죠. 터미널들을 각각 이어주는 스카이트레인이 있지만 돈도 아낄 겸 걸어갔는데, 제발 여력이 있으면 스카이트레인 타세요...




쥬얼창이는 사실 쇼핑몰인데, 다들 쥬얼창이 하면 대개는 이 HSBC Rain Vortex (aka 쥬얼창이 폭포) 보러 다들 오더군요. 폭포 주변에 있는 Shisheido Forest가 그 느낌을 더하는, 진짜 인공적인 열대우림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1년 내내 더운 나라답게 이날도 기온이 30도쯤이었는데, 폭포 근처에 있으니 조금이나마 시원해졌습니다. 



원래는 MRT를 타고 숙소까지 가려고 했지만, 원체 더운데다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귀찮음을 감안하여 동료들과 그랩을 타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싱가포르 도심으로 넘어가다 (앞으로 지겹게 볼) 싱가포르의새 상징, 마리나 베이 샌즈가 저 멀리 보이는군요. 



숙소가 리틀 인디아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서울에 구로구 (대림동 방면)가 있다면 싱가포르에는 리틀 인디아가 있습니다. 다들 기념품 사기 좋다며 오는 무스타파 센터 근처인데, 순간 싱가포르행 항공편이 아니라 첸나이행을 타고 온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모습들이 펼쳐졌습니다. 



리틀 인디아에도 있는 유명한 힌두교 사원인 Sri Veeramakalimamman 사원입니다. 싱가포르 곳곳에 있는 다른 사원들도 그렇겠지만, 힌두교 사원들은 다신교라 그러지 수많은 신들이 저렇게 사원의 지붕을 장식하는 모습이죠. 



싱가포르에서의 역사적 첫 끼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생각하던 싱가포르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던 리틀 인디아를 내려갑니다.



근처 호커센터에서 생선튀김덮밥을 먹으며 싱가포르 첫 끼를 시작했는데, 처음 리틀 인디아에서 느낀 충격을 씻어내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래도 무난했던 맛이었습니다. 




동료들은 여전히 '이건 내가 상상하던 싱가포르의 모습이 아니야'라는, 일종의 부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저는 그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도를 폈다가 며칠 전 지인의 블로그에서 봤던, 싱가포르의 내셔널 갤러리가 2월 8일쯤까지 야간개장을 해서 밤 11시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그걸 보고 좋은 생각이 떠올라 동료들을 MRT 정거장으로 이끌었고, (뜬금없이) 내셔널 갤러리에 가자고 했습니다. 실망감에 빠져 있던 동료들은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클락 키에서 내셔널 갤러리까지 걸어가게 되었답니다. 



싱가포르 강변의 저 알록달록한 옛 경찰서 건물을 지나, 


 

싱가포르 국회의사당과 내셔널 갤러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마리나 베이 샌즈 방면으로 싱가포르 강을 내려갔습니다. 저 멀리 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의 존재가 제가 계획했던 것을 암시한달까요...



내셔널 갤러리 근처의 범상찮은 스카이라인을 보고 인지부조화가 조금은 해소되었습니다. 




의회 민주주의 국가인 싱가포르의 정치를 상징하는 싱가포르의 국회의사당을 지나면,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의 정부 중심지였던 Esplanade와 우리로 치면 옛 동대문운동장 포지션이던 Padang 일대가 나타납니다. 주변의 스카이라인은 제가 기대하던 결과물을 암시할 뿐이고, 이날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는 1월 28일까지 하는 축제가 하나 있더군요. 




신고전주의 양식을 팍팍 살린 내셔널 갤러리입니다. 예전 대법원 건물과 시청 건물을 절묘하게 이어 지금 싱가포르의 내셔널 갤러리가 되었죠. 이쪽은 싱가포르의 구 대법원 건물이었던 곳입니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전시실이 법정이었던 시절의 프레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모습이죠. 




말레이시아 연방 결성 선언문, 싱가포르의 말라야 연방 가입문 등 큼직한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구 대법원 구역과 구 시청구역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결했는데, 이 너머로 보이는 스카이라인에서 제 설계가 드러났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와 바다 (정확히 말하면 마리나 베이) 사이에는 다른 고층건물이 없기 때문에, 내셔널 갤러리 정상으로만 올라가면 무조건 뷰가 좋을 수밖에 없던 거죠. 



사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일대의 사기적인 공간활용도에 대해서는 진짜 별도의 글을 하나 써도 될 정도인데, 이날 최대의 성과를 위해 자리를 비킬 수밖에 없군요. 



해질녘의 마리나 베이 샌즈와 주변의 모습이 아무 막힘없이, 내셔널 갤러리 옥상에서 그대로 보입니다. 




싱가포르 도심중심에서 바라본 주변부도 뷰가 죽이죠. 



해질녘 내셔널 갤러리의 신고전주의와 그 배경의 현대적 도심의 대비가 참 인상적입니다. 



MBS와 도심 CBD가 포함되게끔 다시 찍었습니다. 뭔가 배경화면에서 보던 모습들이 나오는 것 같기도...?



내셔널 갤러리 (시청 방면) 지붕과 도심이 겹쳐지게 찍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뭔가 구도가 재미있군요. 



마지막으로 해질녘 마리나베이샌즈 한번 더 보고 내려갑니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처럼 내셔널 갤러리를 활용하니 이렇게 화려해보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곳은 멀죠. 멀라이언 파크 방면으로 갑니다. 



가는 길 나무 틈새로 보이는 싱가포르 플라이어. 





드디어 싱가포르의 전통적 상징, 멀라이언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마리나베이 샌즈가 진짜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배처럼 보이네요. 




반대쪽 도심과 풀러턴 호텔도 경이롭습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싱가포르 버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하차할 때 태그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일정을 끝내고 이날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런지 피곤해서 거의 바로 수면을 취했던 기억이 나네요. 


싱가포르 30일 중 1일차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만만찮게 화려했던 2일차와 다음 답사기로 돌아오도록 하죠. 


다음 답사기 예고: 아시아의 플래그십, 싱가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