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실에 착안하게 된다. 그것은 일본이 평화공작에 매달려 항복을 늦췄기에 자국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할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한때 기대했던 대로 일본이 적어도 8~9일 전에만 항복했어도 소련군의 한반도 진입을 막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됐으면 한반도의 분할은 회피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일제는 패망하면서도 우리 민족에게 또 한 차례의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일본의 항복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천황제 유지보다 한반도만큼은 계속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지도부는 일본이 식민지 없이 지탱될 수 없으며 특히 한반도만큼은 국제법상 적법대로 가진 영토이기에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대서양헌장과 카이로 선언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일찍 받았다면 국공내전의 향방인 만주에서 공산당이 실제역사보다 불리해지고 한반도 분단도 6.25전쟁도 일본의 쿠릴열도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 영미 연합군이 점령한 이탈리아에 소련은 지분을 요구하지 못했고 특히나 소련을 경계한 트루먼은 소련이 참전하지 않은 상황에선 소련을 배제하고자 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인만큼 동아시아 냉전의 양상도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권성욱(중일전쟁, 별들의 흑역사, 군벌전쟁의 저자)-  


일본제국 정부가 7월 말에 포츠담 선언을 바로 수락했더라면, 히로시마-나가사키의 20만 명이 넘는 희생자는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반도가 미소에 의해 분단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니시무라 히데키(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저자)-


일본이 바로 포츠담 선언(7월 26일)을 받아들였다면 소련의 참전(8월 8일)은 없었고 트루먼은 소련에 대해 강한 경계심(독소전쟁 발발하니깐 "독일이 이기고 있으면 소련 도와주고, 소련이 이기고 있으면 독일 도와서 양국이 피를 많이 흘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게 트루먼)때문에 소련이 절대 만주와 한반도에 못들어오게 막을 거임. 

소련이 그걸 쌩깔 능력은 당시 유일한 핵보유국 미국과 독소전 피해로 국토가 망가진 소련이니 없다고 봐도 되고, 스탈린도 대일전 참전한다 약속했는데 결국 약속을 안지킨게 되니 할 말이 딱히 없고.


한국- 미군 단독 점령으로 분단과 6.25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원자폭탄을 맞지 않고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는 지금도 일본 영토. 

미국- 한러국경, 사할린 남부를 통해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강력하게 봉쇄

중국(국민당)- 국공내전의 향방이 결정된 만주에서 소련군의 도움을 못받은 중공군 상대로 실제 역사보다 유리하게 싸울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