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당시 역명

오른쪽:현재 소재지


도쿄도[東京都]

니혼바시[日本橋]-도쿄도 주오구[東京都中央區]

시나가와[品川]-도쿄도 시나가와구[東京都品川區]


가나가와현[神柰川縣]

가와사키[川崎]-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神柰川縣川崎市]

가나가와[神柰川]-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神柰川縣橫濱市]

호도가야[保土ヶ谷]-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호도가야구[神柰川縣橫濱市保土ヶ谷區]

도츠카주쿠[戶塚宿]-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토츠카구[神柰川縣橫濱市戶塚區]

후지사와[藤澤]-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神柰川縣藤澤市]

히라츠카[平塚]-가나가와현 히라츠카시[神柰川縣平塚市]

오이소[大磯]-가나가와현 나카군 오이소정[神柰川縣中郡大磯町]

오다와라[小田原]-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神柰川縣小田原市]

하코네[籍根]-가나가와현 이시가라시모군 하코네정[神柰川縣足炳下郡籍根町]


시즈오카현[靜岡縣]

미시마[三島]-시즈오카현 미시마시[靜岡縣三島市]

누마즈[沼津]-시즈오카현 누마즈시[靜岡縣沼津市]

하라[原]-시즈오카현 누마즈시[靜岡縣沼津市]

요시와라[吉原]-시즈오카현 후지시[靜岡縣富士市]

칸바라[蒲原]-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시미즈구[靜岡縣靜岡市淸水區]

유이[由比]-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시미즈구[靜岡縣靜岡市淸水區]

오키츠[興津]-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시미즈구[靜岡縣靜岡市淸水區]

에지리[江尻]-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시미즈구[靜岡縣靜岡市淸水區]

후추/슨푸[府中/駿府]-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아오이구[靜岡縣靜岡市葵區]

마리코[鞠子]-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스루가구[靜岡縣靜岡市駿河區]

오카베[岡部]-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靜岡縣藤枝市]

후지에다[藤枝]-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靜岡縣藤枝市]

시마다[島田]-시즈오카현 시마다시[靜岡縣島田市]

가나야[金谷]-시즈오카현 시마다시[靜岡縣島田市]

닛사카[日坂]-시즈오카현 카케카와시[靜岡縣掛川市]

카케카와[掛川]-시즈오카현 카케카와시[靜岡縣掛川市]

후쿠로이[袋井]-시즈오카현 후쿠로이시[靜岡縣袋井市]

미츠케[見附]-시즈오카현 이와타시[靜岡縣磐田市]

하마마츠[濱松]-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靜岡縣濱松市]

마이사카[舞阪]-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 마이사카구[靜岡縣舞阪市]

아라이[新居]-시즈오카현 코사이시[靜岡縣湖西市]

시라스카[白須賀]-시즈오카현 코사이시[靜岡縣湖西市]]


아이치현[愛知縣]

후타가와[二川]-아이치현 토요하시시[愛知縣豊橋市]

요시다[吉田]-아이치현 토요하시시[愛知縣豊橋市]

고유[御油]-아이치현 토요카와시[愛知縣豊川市]

아카사카[赤坂]-아이치현 토요카와시[愛知縣豊川市]

후지카와[藤川]-아이치현 오카자키시[愛知縣岡崎市]

오카자키[岡崎]-아이치현 오카자키시[愛知縣岡崎市]

치류[池鯉鮒]-아이치현 치류시[愛知縣知立市]

나루미[鳴海]-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도리구[愛知縣名古屋市綠區]

미야/아츠타[宮/熱田]-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츠타구[愛知縣名古屋市熱田區]


미에현[三重縣]

구와나[桑名]-미에현 구와나시[三重縣桑名市]

욧카이치[四日市]-미에현 욧카이치시[三重縣四日市市]

이샤쿠시[石藥師]-미에현 스즈카시[三重縣鈴鹿市]

쇼노[莊野]-미에현 스즈카시[三重縣鈴鹿市]

가메야마[龜山]-미에현 가메야마시[三重縣龜山市]

세키[關]-미에현 가메야마시[三重縣龜山市]

사카시타[坂下]-미에현 가메야마시[三重縣龜山市]


시가현[滋賀縣]

츠치야마[土山]-시가현 고카시[滋賀縣甲賀市]

미나쿠치[水口]-시가현 고카시[滋賀縣甲賀市]

이시베[石部]-시가현 코난시[滋賀縣湖南市]

쿠사츠[草津]-시가현 쿠사츠시[滋賀縣草津市]

오츠[大津]-시가현 오츠시[滋賀縣大津市]


교토부[京都府]

산조오하시[三條大橋]-교토부 교토시 나카교구[京都府京都市中京區]

후시미[伏見]-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京都府京都市伏見區]

요도[淀]-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京都府京都市伏見區]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枚方]-오사카부 히라카타시[大阪府枚方市]

모리구치[守口]-오사카부 모리구치시[大阪府守口市]

고라이바시[高麗橋]-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大阪府大阪市中央區]


마지막 고라이바시 부분에서 의문점이 생긴 사람들이 몇몇 있을거다.

한자가 왜 고려교인지는 설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근처 동제[東詰] 부근에 난바 고려관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조선 국사래조, 즉 조선에서 온 통신사를 위해 설치된 가교라는 설이 있다.


일본 지명 한자까지 일일이 찾고 하다보니 1시간 가까이 걸림 물론 한자는 전부 정체자로 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