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요약 있음)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위한 ‘italiani이탈리아인들’ 이라는 단어는 통일 이전에도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데카메론󰡕를 쓴 보카치오는 이 단어를 사용한 최초의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지리적 개념의 이탈리아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었지 이탈리아의 국민의 개념을 담은 이탈리아인이 아니었다.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사람들이 이탈리아인으로 인식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들이 있었다. 1861년 이탈리아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75%는 읽고 쓸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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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이탈리아의 중앙 정부는 통일 이전에 이탈리아의 남부 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계의 부르봉 왕가를 대체하는 외부 침략자로 이해되어 국민적 통합을 이룰 수 없었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통일은 남부의 입장에서는 지배자의 교체일 뿐 사회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불러온 것은 아니었다. 남부 사람들은 낙후된 생활 속에서도 큰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바뀌어 보아야 새로운 혼란만 가져온다는 것을 항상 체험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인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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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래로 단 한 번도 통일을 이루어 본 적이 없는 나라이다. 정치적, 지리적인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 땅에 이미 민족국가를 형성한 다른 외세가 침입하였을 때조차 이탈리아는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힘을 합쳐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함께 힘을 모으기는커녕 자신들만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주변의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내려오는 외세에게 쉽게 길을 터주는가 하면 동족을 물리치기 위해 다른 민족의 군대를 끌어들이는 일을 서슴지 않던 나라였다. 적을 때는 다섯 개, 많을 때는 백 개도 남는 자치도시 국가로 쪼개져 있던 이탈리아는 1861년에 와서야 북부의 조그만 피에몬테 왕국의 주도 아래 통일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정치적인 통일은 이루었을망정 사람들의 통일은 처음부터 순조롭지가 못했다. “이탈리아를 만들고 난 뒤에는 이탈리아인을 만들어야 한다Fatta l'Italia, bisogna fare gli italiani”라는 유명한 문구를 사용하여 수상 마시모 다젤리오Massimo d'Azeglio는 통일 직후 정부에 나타난 문제들 가운데 하나를 지적하였다.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가운데 한 명인 카부르Cavour 또한 숨을 거두기 얼마 전에 “이탈리아를 조직하는 것, 남과 북을 함께 융합시키는 것은 오스트리아에 대항해서 전쟁을 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들이 심각하였다. 많은 지역에서 농업은 여전히 낙후되어있었으며 산업의 발전이 불충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위해 빌린 것과 다른 나라로부터 상속받은 피에몬테의 부채 또한 엄청났다. 철도 교통과 특히 도로 교통수단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남부의 1800여 개 거주 지역 중에 1600여 개 지역은 그들 간에 도로라고 할 만한 연결로(連結路)가 없었으며 비만 오면 유실되어 버리는 오솔길이 전부였다. 


출처

󰡔이탈리아어문학󰡕 제54집 pp. 139~172, 이탈리아 통일 이후 이탈리아인 만들기와 교육의 역할, 윤종태


요약

이탈리아는 476년 로마 멸망 이후 1400년 넘게 분열되어 있었고 '이탈리아'라는 개념은 단지 이탈리아 땅을 가리키는 거지 대다수 사람들은 '로마인' '베네치아인' '나폴리인' 이런 인식을 했음. 신라가 당나라랑 동맹 맺고 고구려 때리듯, 이탈리아도 도시국가들이 외세 끌여들여 서로 공격하고 여기는 민족의식이 거의 없다시피 했음. 

심지어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조차 전국민의 10%에 불과했음. 특히 남북 간 경제적 격차는 매우 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