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시간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경기도 양주의 어느 폐철도로부터 시작된 공간 기행은 어느덧 오 년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계획 없이 해나간 답사들을 정리하는 시간은 갖지 못한 것 같다. 그동안의 답사 날짜와 장소들을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정리하고 나니, 그동안 해온 무수한 답사들에 비해 그것들을 글로 녹아낸 결과물은 몇 개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글부터는 답사 '기억'들을 '기록'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아마도 한 글에 한 장소씩 담아보고자 하나 그 흐름이 어찌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맞이하는 길

7번 국도, 3번 국도와 같이, 대중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국도들이 있다. '1번 국도' 통일로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이 유명한 것은 오랫동안 주요 교통로로 기능해왔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통일로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시대 한양의 서북부를 넘어 한반도의 서북부를 종관했던 교통로 '의주로'. 그 길을 따라 들어선 신작로에 박정희는 '통일로'라는 비석을 세웠다. 누군가를 맞이하는 길임은 동일하지만 그 대상은 다른 것 같다. 서울의 관문임도 변함 없지만, 아무래도 그 관문은 체제 선전의 장이 된 듯하다.


우리가 이만큼 잘 산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과 함께 남북 대화가 물꼬를 텄다. 고위 당국자들을 육로를 통해 오갔고 서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남북한의 체제 경쟁 속, 보이는 모습들은 세세하게 기록되었다. 내실이 초라할지언정 남에게 보이는 겉모습까지 초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마침 한창이었던 새마을 운동과 함께, 통일로 변에는 이른바 '선전용' 주택단지들이 지어졌다. 거주 공간임과 동시에, "우리가 이만큼 잘 산다"라고 적에게 선전하는 목적의 주택단지였다.


이러한 주택단지들은 '김명욱, 박철수. (2013). 1970년대 통일로 변에 건설된 단독주택지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 계획계, 29(4), 199-210.' 에서 자세히 조사한 바 있으며 이 글을 쓰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선전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위 논문에서는 파주의 통일촌, 고양 덕양구의 삼송리 공무원 주택, 서울 은평구의 한양주택을 그 예시로 꼽아 조사하였다. 나는 그 중 삼송리 공무원 주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무원 주택'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공무원들을 입주 대상으로 삼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삼송역에 내렸다. 1~2층짜리 양옥들만 가득하던 이곳은 어느새 높디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서 상전벽해였다. 통일로 쪽으로 걸었다. 지금은 신축 건물들에 가렸지만 가까이 가니 산자락에 지어진 주택들이 보였다. 지대가 높은 곳에 계단식으로 배치를 한 것은 전시 효과를 극대화했을 것이다. 이외에는 선전 마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다 사람 사는 곳이기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곳에 오기엔 나의 안목이 아직 부족한 것일까. 답사를 해놓고도 무언가 얻는 것이 없으니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나는 그저, 선전이 목적인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용사촌

비탈길 아래에서 만난,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참전'용사'들이 모여 이룬 마을이라는 '용사촌'. 이 주변에는 그 이름을 단 마을이 두 군데나 있다.


삼송리 공무원 주택이 그렇듯 용사촌 또한 보이는 모습이 그렇게 특이하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어리석을 뿐이다. 어떤 이들이 모였든, 어떤 연유로 생겼든, 사람 사는 곳임은 변함 없으니까. 아쉬운 점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삼송리 공무원주택보다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 그런 아쉬움만 남긴 채 고개를 돌렸다.


장국영을 기억하는 사람들


큰 길 너머 보이는 것은 '스타필드'라는 대형 쇼핑몰이었다. 거대한 미로와도 같은 그곳을 헤치니 다시 적막한 천변의 낮은 양옥들이 나타났다.

그 속 골목길의 자그마한 카페. 다시 그 속에는 '장국영'.


2003년 만우절, 거짓말같이 세상을 떠나고 만 홍콩의 배우이자 가수 장국영을 기억하는 이들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카페를 차린 사장님과 입소문을 따라 그곳으로 모인 팬들. 유독 사람이 많은 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갔을 때 그 작은 카페는 그런 이들로 가득 찬 듯했다.


"혹시 여기 앉아도 되나요?"

어쩔 수 없이 합석을 해야 했다. 그런데 한국말을 알아 듣지 못하던 그녀. 알고 보니 중국인이었다. 내가 조금 알고 있는 중국어로 다시 물었다. 흔쾌히 합석을 받아 주며 대화의 물꼬가 텄다. 나의 중국어 실력은 어설펐지만, 그녀는 어찌어찌 그 어설픈 중국어를 알아듣는 듯했다. 장국영의 팬이냐고 묻는 그녀의 질문부터, 장국영의 어떤 작품을 좋아하냐는 나의 질문까지,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짜이찌엔!"


그녀가 떠난 후, 사장님과 남은 손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국영 팬이세요? 이거 받아 가세요."

한 손님이 떠나기 전 나를 붙잡으며, 장국영 사진 한 장을 나에게 주었다. 진짜 주시는 거냐며 내가 묻자, 두 개가 있어서 하나를 나에게 준단다. 그렇게 카페에는 사장님과 나만이 남았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국영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아래, 마감 시간을 앞두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하다. 


해 넘어간 창릉천변을 걸으며

해는 저물었다. 늘 걸어 익숙한 창릉천변으로 나왔다. 이곳을 통해 우리 동네인 행신에서 삼송을 오가는 도보 여정을 매일 해오고 있으니. 그러나 답사가의 시선으로 발걸음을 걸으면, 익숙한 동네일지라도 모르는 것들이 참 많다. 삼송리 공무원 주택, 용사촌, 장국영 카페. 우리 동네니까 모두 다 알던 곳이던가.


기행에는, 탐험에는, 앎에는, 끝이 없는 것 아닐까. 늘 곱씹어보는 생각이다.



공간기록

살아가는 공간에서 가치를 찾고, 그 유산들을 기록해 나갑니다.


철사

사진 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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