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무위키 보다가 Skeb에서 공식 입장이랍시고 내놓은 말이 있다기에 링크 타고 들어갔다가 기가 차서 번역을 올려봅니다.

뒷북이면 자삭하겠습니다만, 일단 Skeb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안 나오길래 제가 작성해 봅니다.

원문 출처는 아래 트윗으로.

프사나 이름만 보면 잘 모르겠지만, 프로필로 들어가 보면 Skeb의 개발자라고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상기 트윗 및 이어지는 트윗에 대한 번역입니다.


스페이스나 Misskey에서 답변했던 사항을 여기에도 올려둡니다.


Skeb은 일러스트 업계 전반의 단가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서비스입니다.

작가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지닌 Skeb의 단가가 오르면 중간 컨펌이나 저작권 양도 등등 Skeb보다 작가에게 불리한 조건에 있는 커미션의 단가는 더 오르게 되겠죠.


Skeb의 일러스트 단가를 올리기 위한 계책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것 2가지를 일단 여기서 말씀드리죠.


1. 작가 간 가격 비교 불허

작가나 작품에 대한 검색, 비교, 정렬이 가능해지면 금액이 낮을 수록 검색 결과에 뜰 가능성이 높아져, 자신이 없는 작가부터 가격을 내리기 시작, 점점 가시화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서비스 전반적인 수준도 떨어져, 전업 내지는 유명 작가가 이건 아니다 싶어 철수,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없는" 실태에 직면한 고객들도 이탈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되죠.

즉, 검색 기능의 확충은 단기적으로는 매상을 높여줄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손해만 끼치는 구조라는 말입니다.

수많은 커미션 사이트 (원문은 "크라우드 소싱 서비스"이나 적당히 의역) 에서 발생한 가격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검색 옵션 중 "금액순 정렬" 입니다. 가격 비교를 불가능하게 해야만 가격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거죠.


2. "수수료"에 대한 과잉 반응을 활용

수수료 인하 조건을 3000엔에서 5000엔으로 올린 결과 평균 단가와 커미션 발생 건수가 모두 증가했습니다.

3000엔짜리 커미션 기준으로 수수료는 해당 패치 이전이든 이후든 변함없이 90엔이었음에도, 많은 작가들이 가격을 5000엔으로 올리는 결과가 발생했죠. 이는 실상 수수료가 실제로 얼마가 빠지는지 그렇게 면밀하게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고, 많은 작가들이 단지 "수수료 인하"라는 말에 직관적으로 반응해서 단가를 올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90엔이라는 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 작가들이 단가를 3000엔에서 5000엔으로 올린 결과, 작가들의 건당 수입은 1714엔 증가 (그리고 운영진의 수수료 수익도 건당 196엔 증가) 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Skeb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기능을 빼버리고 작가들을 시장 경쟁의 압력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단가 상승을 유도하는 블라인드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납품물이 개인 감상으로 한정되도록 하는 것도 (아마 psd 납품 권장 건을 이야기하는 걸 겁니다. psd 파일 하나로만 납품하면 바리에이션 같은 건 커미션 신청자 외엔 못 보니...) 이 사이트가 일러스트 감상을 위한 사이트로 전락하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고요.


다만 이런 전략은, 소비자의 분노의 죽창이 점점 작가에게 향해 작가를 공격하게 만들고, 이러한 상황을 성가시게 여기기 시작한 작가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막으려면, 뭐 당연히 그 죽창이 저희 운영진에게 향하게 유도하는 수밖에 없겠죠. 그 방법은 바로 작가들이 "아 이 사이트 운영 정책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하는 식으로 핑계를 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작년 인터뷰 내용입니다만,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십시오.

https://markelabo.com/n/ne3656c244994

(이 링크까지 번역하려면 너무 길어지니 일단은 생략)


이제 그러면 이런 질문이 들어올 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소비자가 보이콧 시전하는 거 아님?"

하지만, C to C (Customer to Customer, 고객 대 고객) 서비스의 특성 상 소비자는 사이트 운영진에 대한 충성심으로 사이트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매력적인 작가들이 얼마나 포진해 있는가를 기준으로 서비스 이용 여부를 선택하게 마련입니다. 네, 소비자의 분노랑 매출 감소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요.

결국 저희 운영진은 소비자가 저희를 미워하면 미워할 수록 이득으로, 이는 거꾸로 작가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클레임이 걸릴 가능성이 낮아짐으로써 사이트에 이탈하지 않고 머무르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작가들에게 노여움을 사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죠.


요 5년 간 Skeb을 운영하면서 평균 커미션 단가가 1만엔에서 1.3만엔까지 상승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이트에서도 가격 협상에 있어서 "야, Skeb보다 더 싸게 부르는 게 말이 되냐? 더 올려" 하는 식의 카드를 꺼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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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번역 내용입니다.

뭐 굳이 말을 안 해도 사실 대충 알고는 있었습니다.

Skeb이 컨펌도 불가능하고 작가에게 어떤 언질도 할 수 없이 마냥 납품 최대 기한까지 기다려야 하고 (아니면 그마저도 안 되고 사이트에 무이자 대출을 꿔준 셈이 되거나), 만약 어떤 접촉을 시도하려고 하면 특히 트위터 활동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사찰해서 차단을 먹었다는 사례도 여럿 들었고...

반대로 작가는 러프먹튀같은 걸 시전해도 어떤 페널티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 등등...

여기에 대해서 "아사나기 같은 거물도 Skeb 하잖음? 고객한테 유리하게 조건을 주면 저런 사람이 오겠음?" 하는 식의 근거는 충분히 생각할 만 하겠죠.

다만 이런 이론들을 공식으로부터 대놓고, 그것도 그보다도 더 나아가서 아예 평균 단가를 높이기 위해 Skeb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주 화딱지가 제대로 나네요.

아니 화가 나는 걸 넘어서 야 그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일본에서 저렇게까지 솔직하고 속 시원하게 의도를 내뱉다니 싶어서 차라리 웃음이 나올 지경.


아니 저기요, 지금 그 전략이랍시고 내뱉은 이야기들, 한 단어로 요약해서 담합이라고 하지 않나요?


제가 경제학을 따로 제대로 공부했다거나 한 건 아니라서 자세히는 말 못하겠지만, 마치 약육강식의 시대처럼 여겨지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나올 때도 수요와 공급에 따른 균형 가격 형성의 전제 조건은 완전 정보 시장, 즉 공급자와 수요자에게 모두 정보가 열려 있을 것이잖아요?

그게 한 쪽이 너무 압도적으로 갑의 위치가 되니까 독과점이나 그에 따른 담합 등의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고, 뭐 이래저래해서 이론에 대해서는 여러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아무튼 기업이 노동자나 소비자와 비교해서 압도적인 갑에 위치에 있음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반독점법 제정 같은 시장 외부의 개입을 통한 소비자 권익 보호 장치가 마련된 거란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커미션 시장은 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 그래서 특정 세력의 간단한 수작만으로도 시장 실패가 일어나는, 마치 전근대의 경제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적어도 일본에 한해서는 커미션 시장이 정말로 저 Skeb 운영자의 말처럼 되었습니다.

Skeb의 대안으로써 이용할 만한 Skima나 coconala 같은 사이트는 실제로 작가 풀이 그리 넓지 못하고, 그마저도 조금 잘 그린다 싶으면 국내 아트머그 기준으로는 평균적으로 비상업용으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방송용 플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견적을 뛰어넘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경우가 다반사니깐요. (인당 2~3만엔 정도는 흔하게 보입니다. 가성비 커미션을 찾으려면 진짜 열심히 돌아다녀야 가뭄에 콩 나듯이 보이는 수준)

예외적으로 아예 라투디용 파츠 분리까지 가 버리면 일본이 조금 더 싸지는 거는 같던데 아무튼 요건 제쳐두고...

이런 상황에서 혼자 불매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거고, 그 와중에 저 트윗 인용 달린 반응들 보면 이러한 입장에 옹호 일색이고...

정반대로 이용자 입장에서는 꼭 Skeb이 아니더라도 무슨 불만을 표할라치면 사이버불링을 당할 것도 각오해야 하고.

일대일로 발주자 한 명만을 위한 작품을 주문 제작하는 게 값이 싸다는 건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이렇게 주작질까지 해가면서 가격을 올리려고 발악하는 건 너무한 발상 아닌가 싶네요.

취향 마이너한 죄로 원하는 일러스트도 잘 안 나오고 특히 만족할 만한 그림체의 취향저격 일러스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보니 총 연봉의 10% 이상을 그것도 가격대 타협해 가면서 커미션에 꼴아박아 충당하는 입장으로서 더 억하심정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만, 아무튼 고객의 권익도 좀 인정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쨌거나 원래부터도 Skeb엔 정 떨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앞으로 다시는 쓸 일이 없겠네요.